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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르르" 소리뒤 숨진 16명…'산사태 취약지'인줄 모르고 당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산사태가 발생한 경북 예천군 벌방1리에서 지난 16일 소방당국이 굴삭기 등 장비를 동원해 토사를 치우고 있다. 김홍범 기자

산사태가 발생한 경북 예천군 벌방1리에서 지난 16일 소방당국이 굴삭기 등 장비를 동원해 토사를 치우고 있다. 김홍범 기자

“산사태 취약지역이 뭐죠?”

17일 오전 경북 영주시 풍기읍 삼가리에서 만난 한 주민은 “마을이 산사태 취약지역으로 지정돼 있었던 걸 알고 있었느냐”는 질문에 이같이 되물었다. 풍기읍 삼가리는 지난 15일 오전 60대 남성과 20대 딸이 밀려든 토사에 묻혀 목숨을 잃은 곳이다.

송요삼 삼가리 이장은 “이 지역은 산세가 험하고 급경사이기 때문에 산사태가 쉽게 날 수밖에 없다”라면서도 “지자체에서 삼가리를 산사태 취약지역으로 지정했다는 사실은 주민이 잘 몰랐다”고 말했다. 산사태 취약지역을 위한 대피소도 삼가리마을회관을 비롯해 인근 3곳으로 지정돼 있었지만, 이 역시 상당수 주민은 알지 못했다고 한다.

경북 인명피해 상당수 ‘산사태’가 원인

17일 경북도 재난안전대책본부가 집계한 이 날 오전 9시 기준 인명피해 현황에 따르면 경북 지역 사망자 19명 가운데 16명은 산사태가 사고 원인이었다. 나머지는 급류에 휩쓸리거나 집이 물에 잠기는 바람에 변을 당했다. 이와함께 전국 곳곳에서 산사태로 많은 주민이 목숨을 잃거나 삶의 터전을 잃었다.

이번에 경북에서 사고가 난 곳 가운데 영주시 풍기읍 삼가리 한 곳만 ‘산사태 취약지역’이었다. 하지만 나머지 지역도 산사태 취약지역으로 둘러싸인 곳으로 나타났다. 4명이 숨지고 1명이 실종돼 경북에는 가장 피해가 큰 예천군 효자면도 산사태 취약지역 4곳에 둘러싸였다.

17일 경북 예천군 감천면 진평리에서 소방당국이 호우 피해로 발생한 실종자 수색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 경북소방본부

17일 경북 예천군 감천면 진평리에서 소방당국이 호우 피해로 발생한 실종자 수색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 경북소방본부

‘산사태 취약지역'은 2011년 서울 우면산 산사태 이후 집중 호우와 태풍으로 인한 산사태로부터 국민 생명과 재산, 산림을 보호하고자 산림보호법에 따라 정하고 있다. 산림청 기초조사와 지자체 현장 실태조사, 전문가 검증 등을 토대로 위험도를 4개 등급으로 분류한 뒤 산사태 위험이 높다고 판단한 상위 1∼2등급에 해당한 곳을 지자체장이 취약지역으로 지정·고시하고 집중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국민의힘 정희용 의원실이 산림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으로 전국 산사태 취약지역은 2만7948곳(7만2231명)에 이른다.

취약지 아닌데 잇단 산사태…“대응책 바꿔야”  

순식간에 인명피해가 날 수 있는 산사태 특성상 취약지역 인근 주민에게 사전에 이 같은 사실을 고지하고, 관련 교육 등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전문가 의견이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산사태 취약지역은 곳곳에 취약지역임을 알리는 안내가 있긴 하지만 주민이 눈여겨보지 않을 수 있으니 평소 대피 요령이나 대피소 위치 등을 교육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꼭 산사태 취약지역이 아니더라도 산사태가 일어날 만한 요소가 있는 곳이라면 주민이 경각심을 가질 수 있도록 대비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일각에서는 산사태 취약지역으로 지정되지 않은 곳에서 호우 피해가 다수 발생한 것을 두고 대응 체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지난 16일 피해 현장을 방문한 국민의힘 원내대표단에 “위험지역으로 관리되고 있지 않은 곳에서 피해가 많이 발생했다. 기후변화에 따른 새로운 대응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북 예천군 백석리 산사태 현장 드론 촬영 사진. 예천=백경서 기자

경북 예천군 백석리 산사태 현장 드론 촬영 사진. 예천=백경서 기자

산사태 예보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산림청에 따르면 산사태 예보는 지자체가 산림청으로부터 정보를 받아 주민에게 문자메시지 등으로 전달한다. 이를 위해 산림과학원은 해당 지역에 내린 강수량과 토양의 수분 함유 정도를 나타내는 토양함수지수를 분석한다. 권역별 기준 토양함수량에 80% 도달 시 산사태 주의보, 100% 도달 시 산사태 경보를 각각 발령한다. 주민대피 명령과 대피 조치는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에 따라 위기 상황 때 시행한다. 이에 따르지 않으면 과태료(200만원)도 부과할 수 있다.

산림청은 또 스마트산림재해 애플리케이션도 운용한다. 이 앱에서는 산사태 경보와 위험지역 정보를 실시간으로 알 수 있다.

“산사태 경각심 높이고 보다 적극적 조치 필요”

하지만 반복되는 대피 방송에도 주민이 소극적인 점도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예천군 주민은 집중 호우가 내리던 지난 15일 새벽 계속해서 대피 방송과 안내 문자를 받았지만, 유례없는 산사태가 일어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고 한다.

예천군 효자면 백석리 주민 이근섭(64)씨는 “산사태를 TV로만 봤지 내가 겪을지는 상상도 못 했다. ‘우르르’ 소리가 날 때도 산사태는 아예 생각도 안 했다”고 했다.

지난 16일 집중호우로 인해 산사태가 발생한 경북 예천군 은풍면 금곡2리 지경터 마을이 폐허로 변해 있다. 뉴스1

지난 16일 집중호우로 인해 산사태가 발생한 경북 예천군 은풍면 금곡2리 지경터 마을이 폐허로 변해 있다. 뉴스1

이와 관련해 경북도는 지난 15일 오후 인명 피해가 속출하자 더는 피해가 없도록 위험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강제대피 행정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산림청 관계자는 "우리나라 국토의 63%는 산악지역에 있어 산사태 위험이 늘 있다"라며 "대피명령을 내리면 신속히 따라야 인명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은 주민이 있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산사태 경보가 내려지면 취약지역 주민은 대피장소나 안전지대로 반드시 대피하고 주변에도 위험 상황을 알려줘야 한다”며 “산사태 취약지역에 살지 않더라도 위험한 곳에는 가까이 가지 않고 산림 주변의 야외 활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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