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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준 18억'이 키운 논란..."로스쿨 교수 고액의견서, 법에 맞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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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로스쿨 교수가 대형 로펌의 의뢰로 법률 의견서를 써 주는 관행이 도마 위에 올랐다. 권영준(53·사법연수원 25기) 대법관 후보자가 2018~2022년 국제중재와 국내 소송 등 총 38건의 사건에서 의견서 63건을 작성하고 약 18억원(필요경비 공제 후 약 7억원)을 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다. 현직 교수가 평균 한 달에 한 번꼴로 의견서를 써 주고 건당 수천만원씩 대가를 받은 건 변호사법 위반에 해당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회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1일 권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서울대 교수로서 돈을 받고 법률 관계 문서를 작성한 건 변호사법 109조에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권 후보자는 “학술적 소신에 따라 제 학자적 의견을 개진해 온 것”이라며 “의견서 형태가 아니라도 법대 교수들이 연구용역 등 법률 관계 문서를 많이 작성하고 그 대가를 받는 경우는 국내에서 매우 널리 알려져 있다”고 반박했다. 13일 민형배 민주당 의원에 대한 서면답변서에서도 “전문가 의견서 제출이 변호사가 변호사의 지위에서 수행해야 할 법률 업무의 영역을 침해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해명했다.

권영준 대법관 후보자가 지난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대법관 임명동의에 관한 인사청문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권영준 대법관 후보자가 지난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대법관 임명동의에 관한 인사청문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변호사법 109조는 변호사가 아니면서 이익을 받거나 약속하고 법률 관계 문서를 작성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이를 어기면 7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될 수 있다. 대법원은 지난해 2월 공인노무사가 6년간 75회에 걸쳐 산업안전보건법 관련 의견서를 작성해 주고 약 22억원을 받은 사건에 대해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의정부지법도 2021년 변호사가 아닌 사람이 주택 전세보증금 반환 소송에서 법률 관계 문서를 작성해 주고 그 대가를 받은 데 대해 징역 6월을 선고했다.

로스쿨 교수의 의견서 작성 행위는 아직 처벌된 전례가 없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중요한 건 돈을 누구한테서 받느냐는 것”이라며 “전문가 의견이라면 전 국민에게 알려서 계몽을 해야지, 한쪽 당사자로부터 돈을 받아 그 당사자에 유리한 견해를 쓴 건 영리 목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무리 의견이 독특한 것이라고 해도 수천만원씩 받는다는 건 의견서의 결론 자체를 의심해 봐야 한다. 뻔한 내용밖에 없다고 한다면 100% 로비용”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양홍석 변호사(법무법인 이공)는 “아무리 건수가 많다고 해도 법리적인 설명에 불과하다면 변호사법 위반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권 후보자가 언급한 연구용역은 재판 과정의 의견서와 단순 비교가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한규 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은 “교수가 연구용역을 받아 논문을 쓰는 건 장려해야 할 일이고, 변호인이든 판사든 그 연구 결과를 재판에서 활용하는 건 전혀 문제 될 게 아니다”라며 “권 후보자의 경우 특정 재판에서 한쪽 편을 드는 의견서를 쓴 것이기 때문에 차원이 다르다”고 말했다. 김 전 회장은 “차라리 대형 로펌의 용역으로 만든 논리를 변호사들이 가져다가 직접 서면으로 제출할 수도 있는데, 권 후보자의 이름·소속·신분으로 제출된 건 그 이름값을 활용하려는 의도도 없지 않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권영준 대법관 후보자가 2018년 7월 한 민사소송의 피고 대리인인 대형 법무법인의 의뢰로 작성한 의견서에는 ″1심 법원의 판단은 타당하지 않다″ 등의 견해가 담겨 있다. 권 후보자는 이 의견서를 써 주고 3150만원을 받았다. 그는 지난 13일 ″해당 의견서는 기존의 학문적 견해를 심화해 표명했을 뿐, 일방 당사자를 유리하게 할 목적으로 학문적 견해를 부당하게 왜곡한 사실이 없다″고 해명했다. 자료 민형배 의원실

권영준 대법관 후보자가 2018년 7월 한 민사소송의 피고 대리인인 대형 법무법인의 의뢰로 작성한 의견서에는 ″1심 법원의 판단은 타당하지 않다″ 등의 견해가 담겨 있다. 권 후보자는 이 의견서를 써 주고 3150만원을 받았다. 그는 지난 13일 ″해당 의견서는 기존의 학문적 견해를 심화해 표명했을 뿐, 일방 당사자를 유리하게 할 목적으로 학문적 견해를 부당하게 왜곡한 사실이 없다″고 해명했다. 자료 민형배 의원실

변호사법 109조의 ‘변호사가 아니면서’라는 표현을 ‘변호사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해석해 권 후보자에게 면죄부를 줘도 문제는 남는다. 권 후보자는 사법시험에 합격해 변호사 자격을 갖췄다. 하지만 판사를 그만두고 서울대 교수로 가면서, 변호사 개업 신고는 물론 대한변호사협회에 변호사 등록도 하지 않았다.

변호사법 112조는 변협에 등록하지 않고 변호사의 직무를 수행한 변호사에 대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변호사법 주석』 저자인 정형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핵심은 어쩌다 한 건 한 것이 아니라 일상적·계속적으로 의견서를 작성하는 등 개업 중인 변호사가 고객의 자문에 응하는 것과 같이 했다는 점”이라며 “변호사 등록을 하지 않고 사실상 변호사의 직무를 수행한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형사소송법·민사소송법에는 ‘전문심리위원’이라는 제도가 있다. 재판장이 필요에 따라 전문심리위원을 지정하면, 전문심리위원은 재판에 참여해 전문 지식에 관한 설명이나 의견을 진술할 수 있고 의견서도 제출할 수 있다. 그러나 대형 로펌을 선임한 소송 당사자는 이 제도를 이용하기보다 전관 법조인이나 로스쿨 교수의 의견서를 참고자료로 첨부해 제출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해 김한규 전 회장은 “일반인 중 의견서 한 건에 수천만원씩 소송 비용을 부담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며 “소위 ‘그들만의 리그’가 실제 사법 영역에서 통용될 수 있는 것인지 법적인 판단을 받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회는 17일 권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 경과보고서 채택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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