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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승중의 아메리카 편지

서구 고등교육의 산실 플라톤의 ‘아카데미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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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승중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

김승중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

서양 고등교육의 시초라 하면 보통 11세기에 창시된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이나 영국 옥스퍼드 대학을 언급하지만, 그 근원은 훨씬 더 오래전인 고대 그리스에서 찾아볼 수 있다. BC 387년 플라톤이 창설한 학교 ‘아카데미아’가 바로 서구 최초의 대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학계를 총칭하는 용어인 ‘아카데미’도 플라톤의 학교 이름에서 유래한다. 여기서 그의 가장 유명한 제자 아리스토텔레스가 17세 때부터 플라톤이 사망할 때까지 근 20년을 공부했다.

아메리카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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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5세기 말까지 고대 그리스의 교육은 사춘기 이전 신체와 지능을 복합적으로 훈련하는 프로그램이었다. 한편으로는 군사적 기량이 뛰어난 인물을 배출하고, 한편으로는 시·음악·문학에 조예가 있는 지적인 바탕을 키우는 목적을 지니고 있었다. 신체 단련을 마음 단련만큼 중요시하는 것이 그리스 전통 교육 사상의 특징이다. 그런데 기원전 420년께부터 소크라테스를 비롯한 소피스트 철학자들이 활동하면서 사춘기 이후에도 계속되는 고등교육이 유행했다. 이때부터 지적인 교육이 신체적 교육보다 중요시되었고 수학과 천문학, 그리고 논리와 윤리를 포함한 철학이 주된 관심거리가 되었다.

특히 소피스트라고 불리는 철학자들은 비싼 교육비를 받아가며 정치가에게 필수인 레토릭, 혹은 웅변술과 같은 현실적·실용적인 기술을 즐겨 가르쳤다. 그 이유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등 순수철학을 고집하는 사상가들에게서 미움을 사고 ‘궤변가’라는 악명을 얻었다.

소크라테스 사망 이후 정치에 회의를 느끼고 아테네를 떠난 플라톤이 10년 후에 돌아와 세운 아카데미아는 이와 달리 교육비를 받지 않았고 수학·천문학·기하학, 그리고 다양한 주제의 철학 교육을 실행해 이상적인 지식인을 양성했다. 플라톤의 고등 교육이념은 그 사회를 이끌어 갈 지도자를 기르는 엘리트주의의 산물이었다.

김승중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