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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TV 20대, 수신료 5만원인데…KBS 500만원 징수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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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한국방송공사(KBS) 수신료 분리 징수를 위한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한 7월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앞에 근조화환들이 놓여져 있다. 뉴스1

한국방송공사(KBS) 수신료 분리 징수를 위한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한 7월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앞에 근조화환들이 놓여져 있다. 뉴스1

“저는 매달 34대의 KBS TV수신료를 내고 있습니다.”

지난달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한 헬스장 운영자의 글이다. 이 운영자는 자신의 5월분 TV수신료 납부액 8만5000원(대당 월 2500원, 34대분)이 기재된 전기요금 고지서를 공개하며 “러닝머신을 전체 교체하면서 기존에 34대 유산소 기기를 20여 대로 줄였는데, TV수신료는 계속 34대분을 내고 있었다”고 적었다.

이어 “뒤늦게 KBS에 전화했더니 ‘이미 낸 요금은 돌려받을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며 “징수할 때는 알아서 몰래 남의 업장까지 들어와 (TV를) 찾아서 부과해놓고선, 줄어든 건 모른다고 한다”고 덧붙였다.

이런 사례처럼 영업용 사업장의 TV수신료 징수가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14일 김영식 국민의힘 의원이 KBS가 제출한 ‘수신료 징수 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 KBS가 6월 한 달간 초과 징수한 수신료는 12억원가량이었다. 1년으로 환산하면 144억원을 추가로 거둬들이는 셈이다.

수신료는 부과 시점의 실제 TV 보유 대수와 상관없이 ‘수상기 등록 대장’에 기재된 TV 보유 숫자에 따라 대당 월 2500원을 곱하는 방식으로 부과되는데, 이마저도 엉터리로 징수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분석은 KBS에 등록된 사업장의 TV 수상기 보유 대수와 실제 6월 징수금액을 비교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TV 20대를 보유한 H업체는 수신료로 5만원을 납부해야 하지만, 6월 실제 징수 수신료는 499만7500원이었다. 내야 할 돈보다 494만7500원을 더 부과한 것이다. 경기도 성남시에 위치한 B의료기관은 TV 36대를 보유해 9만원만 내면 됐지만, 실제론 384만원을 납부했다. 375만원 초과 징수다. 이런 식으로 KBS가 초과 징수한 금액은 6월 한 달간 12억957만1180원이었다. 가정용을 제외한 영업용 사업장의 초과징수만 살펴본 결과다.

86곳 면제 영업장에도 수신료 부과

KBS는 일부 면제 대상 영업장도 수신료를 받았다고 한다. 방송법 시행령에 따르면 전력사용량이 0㎾인 경우, 해당 월의 TV 수신료는 면제다. 전력사용량이 없는 영업장은 사실상 휴업 내지 폐업상태이기 때문이다. KBS는 수신료 면제 기준으로 사용하기 위해 한전으로부터 전력사용량 정보를 매달 제공받고 있다.

도시철도운송업체 J사는 지난 4~5월 두 달간 전력사용량 ‘0’이었지만, KBS는 74만5000원의 수신료를 부과했다. S숙박업소와 D유흥주점 역시 두 달간 전기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각각 10만2500원, 8만5000원의 수신료를 납부했다.

KBS는 “전력사용량이 법령상 면제기준에 해당할 경우 사용자의 신청 없이도 자동으로 면제가 적용되어 수신료가 부과되지 않는다”고 설명했지만, 전기를 사용하지 않아 면제 대상이 된 영업장 중 86곳에 6월 수신료를 부과했다. 면제 대상을 통해 부당하게 거둬들인 수신료는 6월 한 달간 597만8120원이었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與 "감사 청구 검토"…KBS "부당 징수 없었다"

여권에선 영업용 사업장에 대한 수신료 부과가 이처럼 주먹구구식인 이유로 ‘통합징수’를 꼽는다. 업체 관리비나 전기요금에 수신료가 합산돼 나오기 때문에 사업주가 매번 일일이 수신료 부과 금액을 확인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반면 KBS는 전력 검침원이나 KBS가 고용한 현장실사 요원이 한번 확인한 TV 대수를 수상기 등록 대장에 기재하면, 당사자의 이의 제기가 없는 이상 이를 수정하지 않는다고 한다.

김영식 국민의힘 의원. 뉴스1

김영식 국민의힘 의원. 뉴스1

김영식 의원은 “영업장의 경우 수신료가 빌딩 관리비 또는 전기요금에 합산돼 사업주가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고 납부하는 경우가 다반사”라며 “그런데도 KBS는 이를 모른척하며 사실상 초과징수를 방치해 왔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 수신료 분리징수를 통해 ‘깜깜이’ 징수방식이 근절되고 국민의 선택과 자유가 보장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민의힘은 KBS 수신료 초과징수와 관련해 감사원 감사 청구를 검토하고 있다.

이에 대해 KBS는 “자료 표기상의 혼란으로 일어난 일”이라며 초과징수 등 부당하게 수신료를 부과한 사례는 없다는 입장이다. KBS는 “수신료는 전기를 사용하는 고객 번호 단위로 부과된다”며 “1개의 고객 번호를 여러 고객이 사용하는 경우 수상기 등록 대수는 각각의 고객별로 집계되나, 수신료는 고객 번호 1개에 합산해 고지 부과돼 발생한 오해”라고 반박했다. 또 “전력사용량이 0인 경우는 시스템에서 자동 반영되어 수신료가 부과되지 않는다”며 “자료에 표기된 수신료는 최종 부과 시점으로, 전력사용량이 없어진 이후엔 수신료를 부과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단독] 분리 징수 요구 2003년부터인데…20년간 손놓은 KBS

TV 수신료를 전기요금과 분리 징수하는 방송법 시행령이 지난 12일 전격 시행되기까지 KBS가 그동안 사실상 무대책으로 일관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13일 김영식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김 의원이 수신료 통합 징수가 시작된 1994년부터 2021년까지 ‘수신료 분리 징수 관련 직접 작성 혹은 외부 용역 등을 통해 작성된 문건, 용역 결과 등 보고서’의 존재 유무를 질의한 결과 KBS는 ‘해당 사항 없음’이라고 답했다. 수신료 분리 징수 움직임이 시작되던 지난해 이전엔 사실상 분리 징수 문제에 대해 고민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서 분리 징수 문제가 처음 제기된 건 2003년이었다. 노무현 정부 첫 해였던 당시 한나라당(현 국민의힘)은 KBS의 공정성을 문제 삼으며 분리 징수 법안(방송법 개정안)을 처음 발의했다. 이후 여야는 정권 교체를 통해 공수가 바뀔 때마다 분리 징수에 대한 입장을 바꿔가며 공방을 벌여왔다. 예컨대 현 정부의 분리 징수 정책을 “언론 장악 시도”라고 맹비난 중인 더불어민주당도 박근혜 정부 땐 노웅래 의원 등이 분리 징수 법안을 앞장서 발의했다.

이처럼 정치권에서 지속적으로 논란이 되는 사이 20년 가까이 손을 놓고 있던 KBS가 처음으로 분리 징수 문제 대응에 나선 건 지난해 윤석열 정부가 시작된 직후부터다. 통상 야당이 분리 징수를 주장하면 정부·여당이 이를 반대해오던 익숙한 전례와 달리 윤석열 정부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부터 분리 징수에 관심을 드러내며 드라이브를 걸었다.

김영식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6월 KBS는 내부적으로 ‘유럽 공영방송 4개국 수신료 조정절차 보고서’를 작성했다. 분리 징수를 다룬 첫 문건이다. 이후 방송학회에 용역을 맡겨 ‘공영방송 공적재원의 근거와 확대방안 세미나’를 열었고, 언론정보학회와 함께 ‘공영방송 재원으로서 수신료 징수의 효율성 및 제도적 개선방안’ 등 2건의 보고서를 작성했다.

KBS 뉴스를 통한 관련 보도도 부랴부랴 많아졌다. 지난 1월 1일부터 지난달 27일까지 반년 동안 KBS는 분리 징수 관련 뉴스 보도를 31건(단신 제외) 내보냈다. 분리 징수 시행이 막바지 단계로 접어든 지난달에는 ‘특별기획 수신료와 공영방송의 가치’라는 이름으로 3부작 프로그램을 내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분리 징수 찬성 여론은 사그라들지 않았고, 결국 윤 대통령의 국무회의 재가 등을 거쳐 분리 징수는 현실화됐다.

윤 대통령이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을 재가하기 전날인 지난 10일에서야 부랴부랴 비상경영을 선포하며 사내 게시판에 “미증유(未曾有)의 위기”라고 올린 김의철 KBS 사장을 향해선 내부 비판이 나오고 있다. KBS 기자협회는 지난달 26일 “대통령실이 분리 징수 추진 의지를 드러냈음에도 사장과 경영진은 시일을 허비하며 엄중한 상황에 필요한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익명을 원한 KBS 관계자도 “올해 초 이사 중 한 명이 김 사장에게 분리 징수 대비책을 물었는데 ‘반대’란 말밖에 못 들었다고 한다”고 전했다. 김영식 의원은 “분리 징수 문제가 20년이나 이어졌음에도 KBS는 뭘 믿고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지 의아하다”며 “지금이라도 반대만 외치지말고 대응책 마련에 집중하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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