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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협상 당사자 아냐"...19년만 보건의료노조 총파업 쟁점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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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가 예고한 대로 13일 총파업을 강행했다. 2년 전 총파업 위기때와 달리 노-정 간 극적 타결은 없었고, 양측은 강대강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노조는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무기한 파업에 나서겠다는 입장이고, 정부는 “파업이 정당하지 않으며 국민을 겁박하는 것”이라면서 업무복귀명령까지 꺼내 드는 등 강경 대응하고 있다.

이날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민의힘과 현안 점검 회의 직후 브리핑에서 “민주노총 파업 시기에 맞춰 정부 정책 수립과 발표를 요구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라고 비판했다. “보건의료노조의 합법적인 권리 행사는 보장한다”라면서도 “정당한 쟁의 행위를 벗어나 국민 생명과 건강에 막대한 위해를 끼칠 경우 법과 원칙에 따라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인근 도로에서 열린 ‘간병비 해결, 간호사 대 환자수 1:5 직종별 인력기준 마련, 의사인력 확충, 불법의료 근절, 공공의료 확충, 노동개악 저지, 9.2 노정합의 이행' 2023 보건의료노조 산별 총파업대회에서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인근 도로에서 열린 ‘간병비 해결, 간호사 대 환자수 1:5 직종별 인력기준 마련, 의사인력 확충, 불법의료 근절, 공공의료 확충, 노동개악 저지, 9.2 노정합의 이행' 2023 보건의료노조 산별 총파업대회에서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도 방송에 출연해 “필요하다면 업무복귀명령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업무개시명령은 특정 직군 종사자의 휴업, 파업 등으로 국민 생활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하거나 그럴 우려가 있다고 인정하는 경우 강제로 업무 복귀할 수 있게 정부가 내리는 명령이다. 이 명령을 송달받으면 다음날 자정까지 업무에 복귀해야 한다. 업무개시명령에 응하지 않으면 의료법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내야 할 수 있다.

2020년 전공의 파업 때 복지부가 집단휴진에 참여했던 전공의를 상대로 업무 복귀 명령을 내린 적 있다. 정부는 당시 이행 여부를 확인해 업무에 복귀하지 않은 전공의를 고발하기도 했다.

19년 만의 보건의료노조 총파업이 현실화한 것을 두고 2년 전인 2021년 상황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시에도 보건의료노조는 공공의료 강화, 보건의료인력 문제 등 22개 세부 과제를 내세우며 총파업을 예고했다. 그러나 당일 5시간여 앞두고 극적으로 철회했다. 정부와의 마지막 마라톤협상에서 어느정도 합의가 이뤄져서다. 당시 정부는 노조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해 신속히 대책을 내놓겠다고 약속했고, 핵심 쟁점에 대해 구체적인 시행 시점이 제시되는 등 노조 측 요구가 상당수 반영되며 극적 타결을 이뤘다.

코로나19 유행이 이어지는 와중에 파업을 강행하면 정부로선 책임론을 피하기 어렵고 노조 역시 국민 비판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인 만큼 양측이 협상에 전향적으로 임한 것이다. 정부는 연일 “대승적 결단을 요청한다”고 했고, 노조 역시 “환자를 두고 나갈 수 없도록 안을 제시해달라”고 나섰다. 당시 김부겸 국무총리가 협상장을 직접 방문해 “제도 개선과 예산이 필요한 사항들은 국회와 협의를 통해 해결해 나가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에 정부는 “환자들의 생명과 건강에 중대한 위해를 끼칠 수 있는 파업은 정당하지 못하다”라며 연일 강경 발언을 내놓고 있다. 정부는 당시와는 달리 노조 파업의 명분이 부족하다고 본다. 복지부 관계자는 “2년 전엔 간호사 처우 개선과 관련한 정책이 없었지만, 9·2 노정 합의 이후 정부가 다양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라며 “지난 4월 간호인력지원종합대책을 내놓는 등 합의 사항을 이행해나가고 있다”고 했다. 2년 전엔 코로나19 대응의 차질을 우려해야 했지만, 그런 부담도 상대적으로 덜한 상태다.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파업을 앞두고 복지부는 대화와 협상을 중단했다. 대화를 끊은 복지부가 파업을 유도한 것”이라고 했지만, 정부는 협상 당사자가 아니란 입장을 명확히 하고 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1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보건의료관련 현안점검회의' 결과 브리핑에서 발언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1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보건의료관련 현안점검회의' 결과 브리핑에서 발언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은 방송에 출연해 “노조법에서 허용하는 파업은 근로조건 개선 협상이고 그 당사자는 정부가 아닌 사용자 측”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장 하라는 식으로 스케줄을 제시하고 정부가 하는 것에 따라 파업을 중단할 수 있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정부를 파업 대상으로 보는 것”이라며 “국민을 겁박하는 것”이라고까지 언급했다. 노정 대화는 멈추지 않겠지만, 노동법상 노동쟁의 협상 대상은 정부가 아니란 것이다.

노조 측은 간병비 문제 해결, 부족 인력 확충, 코로나19 전담병원 회복기 지원 등 주요 요구 사항에 대해 “정부가 2021년 9월 합의한 이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라며 구체적 로드맵을 내놓으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과제를 당장 실현하기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전면 확대, 간호사 대 환자 비율 축소 등 노조 요구 대부분이 건강보험 재정을 투입해야 하고 장기간에 걸쳐 인력 배출을 늘려가야 하는 문제라 당장 해결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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