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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취업 하라더니 돌연 제적…한체대 역도특기생에 벌어진 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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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송파구 한국체육대학교. 사진은 2019년 당시 모습이다. [뉴스1]

서울 송파구 한국체육대학교. 사진은 2019년 당시 모습이다. [뉴스1]

“저희는 아무것도 모르고, ‘조기 취업 제도가 있으니 팀을 알아봐라’ 해서 해도 되는 줄 알고 한 거였는데….”

 역도학과 특기부생으로 한국체육대학교에 입학한 김모씨(24)는 졸업을 두 달 앞둔 지난달 학교로부터 제적처리 통보를 받았다. ‘본교 규정에 따른 선수등록 위반으로 제적되었음을 안내하여 드립니다. 안타까운 말씀 드리게 되어 유감입니다.’ 아직 졸업하지 않았고, 4학년 2학기인 상태에서 취업해 해당 팀 선수로 등록한 것이 학칙 위반이라는 이유다.

동기 황모씨(24)도 같은 이유로 학교에서 이름이 지워졌다고 한다. 황씨는 “교수님이 마지막 학기는 취업이 가능하다고 해 여기저기 팀을 알아봐 취업했다”며 “조기 취업을 이유로 한 출석 인정을 안 해주는 교수님도 계셨는데, 그런 경우 연차 내고 가서 수업을 들었고 시험도 봤는데 제적처리 후 전산상으로 이름이 없어져 성적부여도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학교 명성을 드높이기 위해 시청·군청에서 활동해오고 있으며 다음 달 졸업하면 되는데, 학교 측이 학생들의 이름까지 지워버려 성적도 부여받지 못해 졸업을 못 하게 되면 고교 졸업 신분으로 남게 되는 긴급한 상황입니다.”

11일 서울행정법원 행정 8부(부장 이정희)는 김씨와 황씨가 한국체대를 상대로 낸 집행정지신청 심문기일을 열었다. 학생들 측을 대리하는 이지은 변호사는 “지난달 30일 본안 사건 소장을 냈고, 처분 집행시 학생들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할 것이 예상돼 가처분 신청도 냈다”고 말했다. 본안 소송의 결과가 나올 때까지 일단 제적처분 집행을 멈춰달라는 취지다.

서울 행정법원. 연합뉴스TV

서울 행정법원. 연합뉴스TV

 김씨와 황씨는 통상 2월에 졸업하는 다른 학생들과 달리 오는 8월 졸업 예정이었다. 군대 제대 후 복학하는 과정에서 학기가 꼬였다. 문제는 대부분의 팀이 연초에 계약한단 점이었다. 김씨는 “8월 졸업을 하게 되는 경우가 별로 없었는데, 교수님이 조기 취업이란 제도가 있다고 해서 하게 됐다”며 “학교에 내라는 서류를 냈고 팀에서는 선수 등록을 하라고 해서 했을 뿐”이라고 했다. 학생들은 지난 3월 학교에 조기취업승인신청을 냈고 학과장이 승인했다고 한다.

 국립대학인 한국체대는 ‘체육특기자로서 본교 소속 선수로 등록하지 않고 다른 기관 등의 소속 선수로 등록한 자’는 제적한다는 학칙을 두고 있다. 동시에 ‘조기 취업자 수업관리지침’도 있는데, ‘졸업예정 학기 중 실제 취업한 기간에 한하여 조기 취업자 출석으로 인정한다’는 규정이 있다. 이 변호사는 “신법 우선 원칙에 따라 2019년 제정된 수업관리지침이 1977년 제정된 학칙보다 우선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문기일은 신청인(학생들)과 피신청인(학교 측) 양쪽의 얘기를 듣는 자리지만, 이날 한국체대 쪽에선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한국체대는 이날로 변호인을 선임했다는 서류를 냈다. 학교 측의 한 관계자는 “조기취업 제도는 학점 인정에 도움을 주려고 하는 것이지, 선수 등록을 허락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며 “한국체대는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립대학이고 학생들에게 4년간 장학금을 준다. 마지막 학기라는 이유로 선수 등록을 바꿔버려도 된다고 하면 4학년 학생들이 다 취업팀으로 빠져나갈 것이다. 학칙을 따르지 않으면 학교 운영이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이날로 심문기일을 종결했고 가처분 신청에 대한 결과는 이르면 수일 내로 나올 수 있다. 재판부가 신청을 받아들이면 본 소송이 끝날 때까지 학생들은 일단 학교로 돌아가 졸업 등 절차를 거칠 수 있게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학생들은 제적 상태에서 소송을 계속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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