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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상언의 시시각각

‘공정 입시’가 가능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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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상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상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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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시절이 제일 나았어.” 대입 공정성이 사회적 관심사가 될 때마다 듣는 소리다. 대개 화자는 그 시절 대학에 간 사람들이다. 법으로 과외를 금지해 ‘공평하게’ 사교육을 받을 수 없었던 그때는 대입에 부모 경제력과 거주 지역 영향이 적었다는 주장이다. “지금 같았으면 난 서울에 있는 대학 꿈도 못 꿨을 거야.” 지방 흙수저 출신이라며 이렇게 덧붙이기도 한다. 정말 공정한 입시의 세상이었을까?

전두환 시절 향수는 편향된 기억
수능 손질이 사교육 줄일지 의문
교육 내용·방법 고민이 필요한 때

과외를 금지하면 부모가 공부를 도와줄 수 없는 아이가 경쟁에서 불리해진다. 부모 양쪽이 온종일 생업에 매달려야 해서일 수도 있고, 배운 게 변변치 않아서일 수도 있다. 공부 좀 하는 형이나 누나가 없으면 상황은 더 나쁘다. 과외 금지가 과외비를 댈 형편은 아니지만 부모 교육 수준이 평균 이상인 가정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었다. 입시 경쟁에서 특정 집단의 유리함은 다른 집단의 불리함을 의미한다.

1980년대 그 시절에 ‘입시 명문고’로 불리는 학교들이 있었다. 인기 대학에 학생들을 많이 보내는 학교라는 뜻이었다. 고교가 평준화됐다고 나랏님이 주장했지만 결코 평평하지 않았다. 교사가 수업을 잘해서, 늦은 밤까지 학생을 붙잡아 놓고 공부시켜서, 머리를 빡빡 밀게 하고 매타작을 해서…. 학력고사 점수 높이는 비결은 다양했다. 과외를 못하니 학교가 입시의 핵심 변수였다. 그 신흥 명문고로 자녀를 보내기 위한 이사 또는 주소지 이전(위장 전입)이 활발했다. 교육열 높은 맹모 자식들이 몰리는 학교의 면학 분위기가 좋았다. 평준화는 허상이었다.

지방 중소도시에는 비평준화 고교들이 있었다. 시험으로 학생을 선발했고, 서울 상위권 대학에 학생들을 대거 보냈다. 성적 우수 학생들이 경쟁하니 결과가 좋을 수밖에 없었다. 그 시절 소시민은 언감생심 군부 정권이 발동한 긴급조치를 어길 생각을 못 했지만 고관대작과 큰 부자 자식들은 몰래 과외수업을 받았다는 게 여러 후일담으로 드러났다. 권력과 금력에 의한 부정입학 의혹이 심심찮게 제기됐고, 일부는 사실로 확인됐다. ‘라테’ 아재들이 공정 입시 황금기로 추억하는 시절의 실상이다.

학력고사가 수능으로 대체된 것에도 ‘공정’이 한몫했다. 1980년대 말 과외 금지가 사실상 사문화됐다. 고도성장과 맞물려 사교육 시장도 번창했다. 학원생들의 ‘밑줄 쫙’ ‘별표 셋’ 추임새가 상징하는 주입식 수업이 판쳤다. 수능에는 대학 공부에 필요한 이해력·사고력 측정으로 시험 방식을 바꿔 학생들을 과외 의존과 암기에서 해방시키자는 뜻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수능 역시 곧바로 사교육이 보장하는 연습 효과의 표적이 됐다. 부모 경제력이 좌우하는 불평등 입시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그 뒤 입시 혁신을 외치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평소 실력이나 잠재력을 평가해 대학 신입생을 뽑자고 주장했다. 과외 효과를 막자는 것이었다. 내신성적, 학생부 기록, 특기가 중요해졌다. 내신 대비 사교육과 입시 컨설팅 시장이 급팽창했다. 드라마 ‘스카이 캐슬’의 배경이다. 조민씨 사례에서 보듯 ‘부모 찬스’가 입시를 농락했다.

대통령이 ‘공정 입시’를 주문했다. 사교육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학생이 열심히만 하면 원하는 곳에 진학하는 세상을 말했다. 정말 그런 나라가 되면 좋겠다. 그런데 수능 문항 구성이 다소 바뀐다고 해서 그렇게 될 것 같지는 않다. 사고력을 평가하는 융합형 문제가 없는 수능은 학력고사와 다를 것이 없다. 과거로 가는 길이다. 이 틈을 비집고 입시 자율론자들이 목소리를 낸다. 대학이 알아서 뽑게 하자고 한다. 사교육 영향을 덜 받는 공정한 입시가 될 것이라고 한다. 과연 그리 될까? 한국 과외는 대학별 고사(본고사)에서 발원했다.

모두가 공정을 말한다. 개념과 방향은 제각각이다. 그사이 무서운 속도로 변하는 세상에서 학생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뒷전으로 밀린다. 구호만 난무하는 정치판을 똑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