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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들을 아무도 몰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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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성지원 기자 중앙일보 기자
성지원 정치부 기자

성지원 정치부 기자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아무도 모른다’는 출생신고 없이 버려진 아이들의 이야기다. 4남매를 키우던 엄마가 어느 날 집을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다. 아이들은 친부에게 돈을 빌리고, 그러다 구걸하고, 그러다 훔치면서 살아간다. 어느 날 막내가 죽자 아이들은 시신을 가방에 담아 공항 근처에 묻는다. 영화는 1988년 일본에서 있었던 ‘스가모 아동 방치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실제 사건에선 2살 막내가 덤불 숲에 묻혔다.

장남 역을 맡은 야기라 유야는 2004년 칸영화제에서 최연소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심사위원을 맡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칸영화제의 수많은 영화를 봤지만, 결국 기억에 남은 것은 ‘아무도 모른다’의 주인공 소년의 표정뿐”이라고 했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엔 기훈(송새벽)이 이 영화를 언급하며 “5분 보다 꺼버렸다. 못 보겠더라. 나 TV 부숴버린다. 내가 TV 속에 들어가 저 애들 끄집고 나와 내가 키워준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기훈 말대로 끝까지 참고 보기 힘든 영화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아무도 모른다’의 포스터. 출생 신고 없이 버려진 아이들을 다뤘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아무도 모른다’의 포스터. 출생 신고 없이 버려진 아이들을 다뤘다.

‘임시번호 22xxxx-4, 생후 76일경 영양결핍으로 사망, 그간 병원진료나 복지혜택에서 소외.’

‘임시번호 15xxxx-4, 출생 직후 보호자가 베이비박스에 아동을 유기.’

영화보다 더 아픈 현실이다. 이름 대신 임시번호가 붙은 영아들이 대전에서, 사천에서, 냉장고에서, 텃밭에서 뒤늦게 시신으로 발견되고 있다. 감사원이 올해 보건복지부 감사를 통해 출생신고가 안 돼 임시신생아번호로만 기록된 아동 2236명을 추적조사한 결과다. 2015년에 숨진 아이도 있다. 국수본은 7일 미신고 영아 사건 780건을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국회는 지난달 30일 의료기관이 신생아 출생 정보를 지자체에 통보하도록 하는 출생통보제를 법제화했다. 다행이지만, 근본적 해법이긴 어렵다. 병원 밖 출산이 늘어날 수도 있고, 현행 제도·인력으론 아동 방치를 꾸준히 파악하기도 어렵다.

아이를 죽인 엄마만 엄벌한다고 영아 살해가 없어질지도 의문이다. 스가모 사건에선 방치된 아이들의 아빠가 서로 달랐는데, 경찰서를 직접 찾아간 엄마만 처벌받았다. 한국에선 친부가 “낙태한 줄 알았다”라거나 행방이 묘연한 경우도 있다. “낙태 비용이 너무 비쌌다”는 진술엔 2019년 낙태죄가 헌법 불합치 판결을 받고도 4년째 입법 공백으로 제도적인 지원이 전무한 임신중절 문제가 안타깝게 느껴진다.

지난 2월 이 칼럼란에 산모의 익명 출산을 돕는 보호출산제 도입을 호소해 야당의 호응을 받은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을 소개한 적 있다. 얼마 전 국회에서 김 의원을 마주쳤다. 둘 다 “이제라도 논의돼서 다행이다”라고 했다가 “다행이라고 해도 될지…”라고 말을 흐렸다. 그 아이들을 아무도 몰랐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