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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오피스 자산 부실화, 금융 시스템 붕괴 부를 수도 [상업용부동산발 금융위기 경고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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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7호 08면

SPECIAL REPORT

“이 도시는 생기를 잃었다.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대변을 보고 마약을 하고, 크랙 코카인을 피우는 모습을 목격했다.”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가 지난달 트위터에 남긴 글이다. 이 도시는 미국 빅테크의 상징인 실리콘밸리가 있는 샌프란시스코다. 빈 사무실이 넘쳐나고 상가들이 문을 닫으면서 도심이 범죄와 노숙자가 들끓는 ‘유령 도시’로 변해가고 있다는 목격담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온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도 최근 트위터를 통해 “샌프란시스코 시내에 있던 너무나 많은 매장이 문을 닫고 있다”고 우려했다.

“고통 이제 시작, 광범위한 타격 줄 것”

캐나다 브룩필드자산운용은 지난 2월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 있는 57층짜리 ‘777사우스피게로아’ 등 업무용 빌딩 2개를 담보로 빌린 대출금 7억8400만 달러(약 1조원)을 갚지 못해 채무불이행을 선언했다. 이 회사는 전 세계에서 부동산 등에 8000억 달러(약 1070조원)를 투자하는 세계적인 대체투자 자산운용사다. 4월에는 워싱턴 D.C. 사무실 12곳을 담보로 한 대출(1억6140만 달러) 상환에도 실패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텅 빈 도시’로의 추락은 샌프란시스코만의 악몽이 아니다. 미국 맨해튼, 런던, 일본 도쿄와 프랑스 파리의 라데팡스 등 세계 비즈니스 중심지가 ‘오피스(사무실) 엑소더스’로 신음하고 있다. 공실(空室)이 늘면서 임대료가 떨어지고, 자산가치가 하락하고 있다. 침체에 빠진 상업용부동산이 또 다른 금융위기를 불러올 ‘뇌관’이 될 수 있다는 공포마저 고개를 든다. 스테인 반 니우에뷔르흐 컬럼비아 경영대학원 부동산 및 재정학 교수는 4일 리얼비전과의 인터뷰에서 “미국 상업용부동산의 고통은 이제 시작됐으며, 광범위하게 경제에 타격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구체적으로는 “실리콘밸리은행(SVB)나 시그니처은행을 쓰러뜨렸던 것과 같은 종류의 어려움에 부닥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상업용부동산 침체가 금융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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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세계 주요 도시의 오피스 공실률은 이미 글로벌 금융위기 때 만큼 심각한 수준이다. 미국 부동산서비스업체인 CBRE그룹의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기준 전 세계 오피스 공실률은 12.9%로 집계됐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이 가장 컸던 2009년 공실률 수준인 13.1%에 육박하는 수치다. 신용평가사 무디스가 집계한 미국 공실률은 19%로, 저축은행 수백여 곳이 파산했던 1980년대 저축대부조합(S&L) 사태 직후인 1991년(19.3%)과 비슷한 수준이다.

특히 LA와 시카고 등 미국 주요 도시의 공실률은 20%를 넘어섰다. 베이징과 상하이 등 중국 주요 도시의 공실률도 20%에 육박한다. 프랑스 등 유럽도 마찬가지다. 글로벌 부동산자문사 세빌스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프랑스 라데팡스의 상업용부동산 공실률은 16.7%에 이른다. 이 지역은 특히 국내 증권사 등 금융기관이 앞다퉈 투자했던 지역이다.

빈 사무실이 느는 건 코로나19 팬데믹의 여파가 아직 남은 데다 경기 악화 우려가 맞물린 영향이다. 우선 코로나19가 사실상 막을 내렸는 데도 재택근무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보안 트래킹업체 캐슬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3월 미국 10대 도시의 평균 사무실 점유율은 46.3%에 그쳤다. 사무실 점유율은 직원들의 출입증 데이터를 통해 사무실 출근을 집계하는 방식으로, 팬데믹 이전엔 95%에 육박했다. 여전히 재택근무가 이어지면서 사무실 수요가 감소하고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 경기 침체 우려로 인한 기업들의 몸집 줄이기는 오피스 빌딩 공실의 ‘트리거’(방아쇠)가 됐다. 페이스북 모회사 메타는 지난해 말 매출 감소 실적이 공개된 후 사무실 통합을 통한 비용 절감 조치를 발표했다. 맨해튼 일부 사무실 계약 연장을 포기하고, 사무실 확장 계획도 철회했다. 기업용 소프트웨어 업체인 세일즈포스도 지난 2월 전체 직원의 10%를 해고하면서 사무실 축소에 나섰다. 이 회사의 마크 베니오프 CEO는 “코로나19 팬데믹 이전과 같은 수준의 사무공간이 필요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빈 사무실이 늘어나자 임대료 하락에 이어 자산가치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부동산 분석회사인 그린스트리트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미국 오피스 빌딩의 가치는 지난해 동기 대비 25%나 하락했다. 임대용 아파트, 쇼핑몰의 가치도 15% 넘게 곤두박질쳤다. 유럽도 마찬가지다. 부동산 서비스 회사 세빌스는 유럽 주요 도시 3곳(프랑스 파리, 독일 베를린,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등)의 대형 빌딩인 프라임 오피스의 가치가 1년 사이 30% 넘게 떨어졌다고 발표했다.

“상업용부동산 값 40%까지 폭락할 수도”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잡기 위해 주요국의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끌어 올리면서 대출금리마저 치솟고 있다. 2021년 말 연 3% 안팎이던 미국의 상업용부동산 대출 금리는 지난해 1년 여 만에 2배 수준인 6% 수준으로 급등했다. SVB·시그니처은행·퍼스트리퍼블릭은행이 연쇄적으로 파산하면서 금융기관들이 대출을 축소하고 있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 총신 JP모건 애널리스트는 “중소은행의 상업용부동산 대출 축소는 전체 대출 규모를 줄게 해 제2·제3의 신용 경색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공실로 인해 상업용부동산의 미래가치가 하락한 데다 금리 인상, 대출 축소 등 외부적 요인이 더해지면서 오피스 빌딩 투자 수요마저 꽁꽁 얼어붙은 것이다.

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문제는 이 같은 상업용부동산의 임대료 하락이나 자산가치 하락이 금융시스템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상업용부동산은 니우에뷔르흐 교수의 우려처럼 시중은행은 물론 투자은행·증권사·보험사 등 금융기관의 대출(투자)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적정 수준의 임대료가 유지되고, 적정 미래가치가 보장되지 않으면 곧바로 금융시스템의 부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가 최근 보고서에서 “상업용부동산 가격이 40%까지 폭락할 경우 금융시스템은 물론이고 신용경제까지 초토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우려는 이미 현실화하고 있다. 캐나다 브룩필드자산운용에 이어 세계 최대 채권 펀드인 핌코의 ‘컬럼비아부동산신탁’도 뉴욕과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오피스 빌딩 7개를 담보로 빌린 17억 달러(약 2조2000억원)의 대출 상환에 실패했다. 이경자 삼성증권 수석연구위원은 “미국 상업용부동산 대출의 약 67%는 지역 중소은행이 맡아왔다”며 “지역은행이 대출을 회수할 경우 부동산의 강제 매각으로 가격이 하락하고, 이는 다시 지역은행의 건전성을 훼손하는 악순환을 야기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미국의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재무부 등도 긴급 점검에 나섰다. 연준은 지난달 미국의 23개 대형은행이 상업용부동산 가격 40% 하락과 실업률 10% 등 극심한 경기침체에서도 대출이 가능한 최소 자본 기준을 통과했다고 발표했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은 “은행 위기의 새로운 뇌관으로 꼽히는 상업용부동산 문제 탓에 무너지는 은행이 더 나올 수 있다”면서도 “최소 자본 기준 확대 등으로 시스템 위기로는 번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당분간 상업용부동산발(發) 금융위기 우려는 계속될 전망이다. 지난 3월 기준 미국 상업용부동산 대출 시장 규모는 5조6000억 달러다. 이 중 2024년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상업용부동산 대출은 1조1000억 달러다. 무디스에 따르면 2024년 만기가 도래하는 상업용부동산 저당증권(CMBS) 사무실 대출의 50%가 연체 위험에 처해 있다는 것으로 추산된다. 모건스탠리는 “상업용부동산 가격은 고점 대비 40%까지 폭락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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