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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희한한 복부초음파…동네의원이 대학병원보다 비싸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지난 3월 23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38회 국제의료기기·병원설비전시회(KIMES 2023)에서 참관객들이 초음파 의료기기를 시연하고 있다.뉴스1

지난 3월 23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38회 국제의료기기·병원설비전시회(KIMES 2023)에서 참관객들이 초음파 의료기기를 시연하고 있다.뉴스1

상급종합병원 10만 4130원, 외과의원 10만 5970원.
복부 초음파 검사비용(2022년 기준)이다. 동네의원이 상급종합병원(대형 대학병원)보다 1840원 높다. 복부 컴퓨터단층촬영(CT)도 동네의원이 1310원 높다. 이런 검사비만 그런 게 아니다. 담낭절제 같은 큰 수술도 동네의원은 121만 4380원, 상급종합병원은 119만3200원이다. 동네의원이 2만1180원 더 많다.

신현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과 서울대 간호학과 김진현 교수는 6일 보건복지부가 개최한 ‘지역·필수의료 강화 등을 위한 건강보험 지불제도 혁신방향’ 토론회에서 이 같은 수가제도의 문제점을 공개했다. 정부는 이번 토론회 논의 내용을 토대로 올해 안에 '건강보험 종합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신 위원과 김 교수의 발제를 종합하면 왜 이런 수가 역전 현상이 발생하는지 드러난다. 초음파·CT 등만 역전된 게 아니다. 수술·검사 등 9184개의 진료 행위가 다 그렇다. 진찰료만 상급종합병원이 의원급보다 높다. 유방·대장 등의 일부 암 수술을 동네의원이 하는데, 이런 수술 수가도 동네의원이 높다. 진료 행위마다 가산료(의원은 15%, 상급종합병원은 30%)가 붙는데, 이런 가산료를 포함한 수가가 역전돼 있다는 뜻이다.

'의원〉상급종합병원' 역전은 2021년 시작돼 3년 지났다. '의원〉종합병원' 역전은 2017년, '의원〉중소병원' 역전은 2014년 시작됐다. 이런 역전 현상이 수년째 계속되는데도 정부가 방치하고 있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독특한 수가 결정 방식 때문이다. 의료기관이 진료를 하면 건강보험에서 비용을 지불하는데, 이 때 기준이 되는 게 수가이다. 수가는 2008년 이후 매년 병원,의원, 치과, 한방, 약국 등으로 나눠서 건강보험공단과 관련단체가 개별적으로 지수를 계약해서 인상률을 결정한다. 그 전에는 정부가 정하는 고시(告示)제였다. 여기서 병원은 중소병원·종합병원·상급종합병원을 말하며 규모와 관계없이 동일하다.

이 지수가 역전을 가져왔다. 올해 동네의원의 지수는 92.1(가산율 포함 105.9), 상급종합병원은 79.7(103.6)이다. 2008~2023년 동네의원 지수는 48.3% 증가했다. 같은 기간 상급종합병원은 28.3%만 올랐다. 처음에는 같은 지수(62.1)로 출발했으나 거의 매년 의원급 지수 인상률이 높았고, 그게 누적되면서 수가가 역전돼 같은 초음파 검사를 해도 동네의원이 높아진 것이다. 다만 환자 부담금은 이런 역전에도 불구하고 의원급(외래진료 30%, 상급병원 60%)이 낮다.

보건복지부는 6일 오후 서울 연세대 세브란스빌딩에서 제3차 의료보장혁신포럼을 열고 '지역·필수의료 강화 등을 위한 건강보험 지불제도 혁신 방향'에 대해 논의했다.

보건복지부는 6일 오후 서울 연세대 세브란스빌딩에서 제3차 의료보장혁신포럼을 열고 '지역·필수의료 강화 등을 위한 건강보험 지불제도 혁신 방향'에 대해 논의했다.

신현웅 위원은 "원칙적으로 동네의원이든, 상급종합병원이든 같은 의료행위의 가격은 같은 게 맞다. 다만 "한정된 자원이 동네의원으로 쏠리면 큰 병원의 필수의료에 차질이 생겨 환자 피해로 돌아오게 된다"고 말했다.상급종합병원의 인건비, 장비가격, 개원비용 등이 더 비싸기 때문에 가산율에 차이를 뒀는데, 2021년부터 이게 소용이 없게 됐다"며 "이런 수가의 불균형 구조가 더 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신 위원은 "수가 역전으로 인해 한정된 자원이 동네의원으로 쏠리면 큰 병원의 필수의료에 차질이 생겨 환자 피해로 돌아오고 의료의 질이 하락하게 된다"고 말했다.

신 위원은 "현행 의원·병원 수가 구분을 없애고, 수가 인상률을 모든 행위에 일률적으로 적용하지 말고 응급실·소아질환·심장병 등의 필수 의료와 지역의료에 집중해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김진현 교수는 "수가를 산정할 때 의사의 업무량이 아니라 인건비를 기준으로 삼다보니 같은 시간을 진료해도 안과 같은 데가 외과보다 수가가 더 높게 나온다"며 "이같은 잘못된 수가제도가 결과적으로 필수진료 약화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지금의 수가계약 방식 대신 진료비 총액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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