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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법 대가 "70년 전의 법 바꿔야, 전세 보증금이란 말도 없다" [박성우의 사이드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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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민법은 한 나라에서 국민이 생활하는 데 기본이 되는 법이다. 물건을 사고팔고, 재산을 쌓고, 결혼하고, 아이가 성년이 되고 죽는 것까지 인간사의 모든 것을 규율한다. 그런데 우리 민법은 1950년대 말에 만들어져 1960년 1월 시행된 후 한번도 전면 개정된 적이 없다. 2020년대를 사는 국민 개개인의 법적 지위가 20세기 중반의 인프라에 기반을 두다 보니 여기저기서 삐걱댈 수밖에 없다. 같은 대륙법 국가로서 우리 민법에 많은 영향을 미친 독일이 2002년, 프랑스와 일본이 2017년 민법 대(大)개정을 한 것과도 비교된다.

그동안 정부가 몇 차례 전면 개정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법무부는 이번에는 꼭 개정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지난달 민법개정위원회를 출범했다. 위원장에는 양창수(71·사법연수원 6기) 전 대법관을 위촉했다. 국가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그의 책을 읽어봤을 정도로 양 위원장은 민법의 대가다. 판사, 서울법대 교수, 대법관을 거쳐 현재 정부공직자윤리위원장도 맡고 있다.

법무부는 최근 민법개정위원회를 출범하고 위원장에 양창수 전 대법관을 위촉했다. 양 위원장이 서울 역삼동 법률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법무부는 최근 민법개정위원회를 출범하고 위원장에 양창수 전 대법관을 위촉했다. 양 위원장이 서울 역삼동 법률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양 위원장은 “우리 민법엔 등기하지 않는 전세 제도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없다. 전체적으로 일본 민법을 따랐는데, 일본에는 이런 거래 유형이 없어서 그런 것”이라며 “민법의 공백을 판례나 특별법으로 메우는 방식은 이제 한계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방대한 민법을 몇 가지 분야로 나눠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서울 역삼동의 법률사무소에서 양 위원장을 만났다.

민법 전면 개정을 과거에도 시도했는데 국회에서 폐기됐습니다.
1999년 개정안 때 제가 ‘총괄 간사’를 했고, 2009년엔 대법원에 있어서 관여를 못했습니다. 제가 경험해 보니까 이게 넓은 의미에서 상당히 정치적인 작업이에요. 첫째, 민법이 기본법이다 보니 국회의원들이 개정에 큰 관심이 없어요. 둘째, 민법 개정은 법학자·판사·변호사들, 나아가 관련 업계의 동의와 공감을 얻어내야 합니다. 1999년에는 위원장을 맡았던 이시윤 전 감사원장이 민법 전공이 아니라 민사소송법 전공이셨고, 학계의 뒷받침이 약해 개정 작업의 동력이 확 떨어졌죠.
민법이 정말 방대한데, 전면 개정을 하려면 곳곳에서 반대에 부딪히지 않을까요.
그렇죠. 전처럼 한꺼번에 개정하겠다고 밀고 나가면 길목마다 반대가 생기겠죠. 독일이나 일본·프랑스에서는 우선 계약법을 손댔고, 분야를 크게 나눠 순차적으로 개정했거든요. 저희도 이렇게 분야별로 나눠서 추진하려고 합니다. 사실 1999년에 우리가 민법 개정한다고 했을 때 일본이 놀라워했는데, 거긴 이미 개정 작업이 어느 정도 진행됐으니 우리가 시작은 먼저 하고도 뒤처진 셈입니다.

현재 여소야대 국회에서 한동훈 장관의 법무부가 추진하는 민법 개정안 통과가 회의적이라는 시각도 있다. 내년 4월 총선 결과가 민법 개정안의 성패를 가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민법 제정 논의가 이뤄진 1958년 국회 속기록 사본을 양창수 위원장이 보여주고 있다. 이병준 기자

민법 제정 논의가 이뤄진 1958년 국회 속기록 사본을 양창수 위원장이 보여주고 있다. 이병준 기자

유류분 같은 상속, 친족 분야도 사람들이 관심이 많은데요.
그 부분은 따로 떼어냈습니다. 민법이 앞에 총칙이 있고, 물권·채권 그다음에 친족·상속 이렇게 있는데, 친족·상속 분야는 위원회를 따로 만들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그쪽도 손댈 데가 있지만, 그동안 민주화의 성과로 남편·아버지 중심의 이른바 봉건적인 요소가 많이 없어지고 호주제도 폐지되면서 이미 많은 개정이 이뤄졌습니다.
그동안 부동산등기법이라든지 별도의 법을 만들어서 민법의 부족한 부분을 우회해 왔는데, 전면 개정이 필요한 이유는 뭔가요.
우리 사회가 아주 많이 변했습니다. 70년 전에 만든 민법을 바탕으로 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매우 무리한 일입니다. 민법은 우리 사회의 인프라 중 인프라입니다. 다시 한번 바탕부터 생각해 볼 때가 되지 않았을까요?
예를 들어 취득시효라는 게 있어요. 소유자로 등기된 사람한테서 집을 샀는데 그 사람이 실제 소유주가 아니다, 이러면 10년이 지나야 이른바 ‘등기부 취득시효’라고 해서 소유권이 인정됩니다. 그런데 이 10년이란 기간은 남북 분단과 6⋅25 전쟁으로 등기부가 뒤죽박죽된 때 민법을 만들다 보니 나온 겁니다. ‘야, 이거 권리관계가 제대로 자리 잡으려면 10년은 있어야겠다’고 했겠지요. 지금은 학계에서 ‘등기부 믿고 샀으면 바로 소유권을 줘야 한다’ 이런 주장도 있어요. 물론 잘 생각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과거 민법 개정안에 보면 유치권 폐지 얘기도 나오던데요.
저는 개인적으로는 부동산 유치권은 제한적으로 인정하는 게 옳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부동산에 대한 권리는 등기부에 올려서 취득하고 이전하고 이러는 게 정상이예요. 요새 유치권이 여러 도시개발 과정에서 문제되는 걸 보면 남용 내지는 잘못 이용되는 경우가 많죠. 우월적인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서 미리 점거를 한다든지. 부동산 등기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에서 유치권 인정하는 나라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제 개인적인 의견이고 더 검토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부동산 거래는 국민이 참 민감하게 생각하는 부분인데 문제가 있어 보이네요.
그런 예가 많이 있습니다. 또 예를 들자면 우리 민법에는 ‘보증금’이라는 말이 딱 한 번 나옵니다. 그런데 그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임대차 관련이 아니고 일반 계약에서 매매 계약금으로 주는 것과 관련해서 보증금이라고 나오는 거예요. 우리 국민이 그때도 부동산을 빌릴 때는 대체로 보증금 또는 전세금을 내는 거래를 많이들 했죠. 그런데도 민법의 임대차에 관한 규정 중에 보증금 얘기가 전혀 없습니다. 물론 당시에 등기를 해야 성립하는 전세권이라는 제도를 마련하기는 했습니다. 그렇지만 전세 등기라는 걸 거의 하지도 않죠. 법과 실제 국민 생활에 너무 큰 괴리가 있는 겁니다.
왜 이렇게 된 건가요.
광복이 되고 보니 우리나라에 민법 학자 또는 전문가가 별로 없었습니다. 민법과 같이 국민 생활의 기초가 되는 방대한 법률을 만들려면 학자가 꼭 필요합니다. 외국의 예를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일본 식민지 정책이 법학을 포함해서 사회과학 쪽으로는 조선인 교수를 양성하지 않는 거였죠. 흔히 유진오 박사 얘기를 하는데 그분도 소설을 쓰는 데 힘을 많이 쓰셨고, 학문으로서는 법철학 아니면 형법 쪽입니다. 그래서 민법 제정 당시에 보면 ‘전세를 어떻게 할 것인가’가 논의되기는 했는데, ‘아, 만주국 민법에 전세와 유사한 전권이라는 게 있는데 그걸 차용하자’ 뭐 이런 식으로 일이 진행됐습니다. 그런데 그건 등기를 해야 적용되는 제도이니 우리 실정과는 거리가 크죠.
양창수 위원장은 민법의 대가로 불린다. 양 위원장이 자신의 저서 '민법입문'을 들고 있다. 김종호 기자

양창수 위원장은 민법의 대가로 불린다. 양 위원장이 자신의 저서 '민법입문'을 들고 있다. 김종호 기자

현행 민법에 비문이나 일본식 한자어가 많다는 지적에 대해 양 위원장은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어려운 한자는 고쳐야 한다. 그러나 법률은 어느 정도 전문적인 용어를 써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1979년 판사로 임관해 1985년 서울법대 교수로 갔다가 2008년부터 6년 간 대법관을 지낸 양 위원장에게 현재 법원에 대해서도 물어봤다.

새 대법원장은 어떤 인물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다른 기관이나 기업도 다 마찬가지인데 그 집단 내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평판’이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저는 판사도 그렇고 검찰도 마찬가지인데 이런 전문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평판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판사 사회에서 ‘저 사람은 정말 대법원장 할 만하다’하고 인정받는 사람이 대법원장이 돼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기존 시스템을 깨려고만 들지 법원의 정상적인 발전에 헌신할 수가 없어요.
대법원에 사건이 너무 많은데, 상고제도를 개선하려던 노력은 번번이 좌절됐죠.
제가 대법원에 갔을 때 민·형사, 행정 다 합쳐서 사건이 1년에 2만9000건이더라고요. 12명의 대법관이었으니까 1인당 대체로 2500건이고 1년에 300일 일한다 치고 하루에 8~9건을 봐야 돼요. 대법원을 나오던 2014년에는 그게 4만 건에 육박합니다. 상고제도 개선은 정말 시급합니다. 하급심에선 사건 떼는 데 바쁠 수 있을지 몰라도 한 나라의 대법원이 법리를 온전하게 전개하는 것보다 사건 떼느라 허덕이면 되겠어요?
민법의 대가로 불리는데 위원장님이 생각하는 최대 업적은 뭔가요.
프랑스 격언에 ‘사람은 사랑하고 일하기 위해서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랑 측면에선 애 키우고 손자 셋을 본 것, 일 측면에선 논문집 ‘민법 연구’ 도합 10권을 쓴 것이라고나 해 둘까요? 

※사이드바(sidebar)는 미국 법정에서 판사가 재판 진행 상황에 대해 할 말이 있을 때, 또는 검사나 변호인이 배심원들을 피해 판사에게 직접 얘기하고 싶을 때, 법대 앞에 모여 논의하는 것을 말합니다. 신문업계 용어로는 메인 기사 옆에 붙는 ‘해설 박스’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화제의 법조인들을 열심히 만나고, 열심히 해설하겠습니다. 2주 뒤 목요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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