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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하이엔드] 여행을 향수로 만드는 사람

중앙일보

입력

좋은 브랜드의 조건을 이야기할 때 흔히 내러티브, 즉 서사가 있어야 한다고 한다. 자기만의 독창적이면서도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일만한 이야기가 담겨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지난달 국내에 방한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르노 샐먼은 이 말을 그대로 적용해 브랜드와 제품을 만드는 사람이다.

오만 왕실의 향수 '아무아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르노 샐먼 인터뷰 

오만의 왕실 향수 '아무아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르노 샐먼. [사진 아무아쥬]

오만의 왕실 향수 '아무아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르노 샐먼. [사진 아무아쥬]

르노 샐먼은 중동 오만의 왕실 향수로 알려진 ‘아무아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다. 벨기에인인 그는 벨기에 가방 브랜드 ‘델보’와 ‘루이 비통’ '알렉산더 맥퀸'을 거쳤다. 브랜드 '마크 제이콥스'에선 향수 담당 부사장을 역임하는 등 샐먼은 10년 넘게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와 함께 일하며 향수와 화장품을 만들었다. 아무아쥬엔 2019년 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CCO)로 임명됐고, 그 뒤 오만에서 살며 향수를 만들고 있다. 아무아쥬는 오만 왕실이 국빈들에게 기억에 남는 선물을 하기 위해 시작된 니치 퍼퓸 브랜드다. 희귀하고 독특한 최상급 원료를 사용할 뿐 아니라, 고급 에센셜 오일을 24%나 넣어 오랜 시간 향이 지속된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향수를 만드는 독특한 방법이다. 뉴욕·런던·제네바·밀라노 등에서 주로 머물며 일해온 그에게 오만은 낯선 땅이었다. 샐먼은 오만 곳곳을 여행하며 느낀 감정을 향수로 만들기로 했다. 여행길에서 만난 공간과 그 느낌을 표현해줄 만한 이미지를 먼저 모은 뒤, 이를 결합하고 정리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향에 대한 단서를 찾아낸다. 감정을 이미지로 표현하고 이를 다시 기승전결이 있는 이야기로 구성해 향수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재미있다.

이스케이프 컬렉션의 리니지. 탈출이라는 여정의 첫 단계로 자기 자신의 혈통, 근본을 의미하는 이름을 붙였다. 향수를 감싸고 있는 조각은 이 향수에 담았던 감성을 조각가와 함께 만들어낸 작품이다. [사진 아무아쥬]

이스케이프 컬렉션의 리니지. 탈출이라는 여정의 첫 단계로 자기 자신의 혈통, 근본을 의미하는 이름을 붙였다. 향수를 감싸고 있는 조각은 이 향수에 담았던 감성을 조각가와 함께 만들어낸 작품이다. [사진 아무아쥬]

지난 6월 15일 방한해 자신이 향수를 만드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는 르노 샐먼. 그는 모든 감정을 이미지로 먼저 표현한 뒤, 이를 이야기로 구성해 향을 만드는 독특한 조향 방식을 사용한다. 사진 아무아쥬]

지난 6월 15일 방한해 자신이 향수를 만드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는 르노 샐먼. 그는 모든 감정을 이미지로 먼저 표현한 뒤, 이를 이야기로 구성해 향을 만드는 독특한 조향 방식을 사용한다. 사진 아무아쥬]

“조향할 때 따라가는 나만의 크리에이티브 프로세스가 있다. 오만을 여행하며 촬영한 사진이나 기억에 남아 있거나 역사적 공간이나 유물 등 어디에선가 봤던 이미지들을 모아 놓는다. 그리고 이 이미지들을 마치 콜라주처럼 이어 붙여간다. 이렇게 하면 음악, 예술, 책 등 내가 접하는 모든 것이 이미지가 될 수 있다. 하나의 패턴처럼 콜라주를 하다 보면 뭔가 흥미로운 지점이 생기게 되는데, 이를 향으로 표현한다.”

샐먼이 감정을 이미지로 표현하는 것은 사진작가로 활동했던 그의 커리어와 관련 있다. 그는 "나의 모든 예술 세계는 비주얼로 이루어져 있다. 향은 이를 연결해주는 좋은 수단"이라면서 "그래서 나에게 향수는 그냥 '냄새'가 아니라 이야기이자 시이고, 책이다"라고 말했다.

그가 이번 방한에 들고 온 새로운 향수 컬렉션 '아무아쥬 이스케이프' 역시 한 편의 이야기 같은 향수다. 인생이란 긴 여정에서 새로운 에너지를 발산할 기회의 의미로 '탈출'을 컬렉션 테마로 잡고, 4개의 향수로 이야기를 만들었다. 일상과 동떨어진 외딴 섬에 도착했을 때의 감정을 컬렉션의 첫 번째 향수 '리지니(Lineage·혈통)'로, 섬을 살펴보기 위해 안으로 걸어 들어갔을 때 만난 광경과 감정은 두 번째 향수인 '서치(Search·탐색)', 섬에서 발견하게 된 아름다운 자연은 향수 '가이던스(Guidance·안내)', 탈출의 여정을 마무리 짓는 향은 '퍼포즈(Purpose·목적)'라 이름 붙였다. 네 향수 모두 주원료로는 오만에서 생산되는 희귀 향료인 유향을 사용했다.

오만에서 생산되는 유향(프랑킨센스). [사진 아무아쥬]

오만에서 생산되는 유향(프랑킨센스). [사진 아무아쥬]

아무아쥬 이스케이프 퍼포즈. 새로 나아갈 '나의 목적'을 찾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사진 아무아쥬]

아무아쥬 이스케이프 퍼포즈. 새로 나아갈 '나의 목적'을 찾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사진 아무아쥬]

향수엔 샐먼의 철학과 고민이 담겨 있다. 이스케이프의 마지막 향에 ‘목적’이란 이름을 붙인 것에서 이를 가장 잘 느낄 수 있었다. 직접 맡아보니 코를 톡 쏘는 듯 강렬한 향이 났다.
"마지막 향수를 퍼포즈라 이름 지은 이유는 일상 혹은 '나'로부터의 탈출을 통해 마지막으로 얻게 되는 것은 '나의 목적'이란 의미를 담고 싶어서입니다. 새로운 인생을 찾을 수 있는 원동력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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