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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발등 찍혀 불황의 늪…석유화학업계 살길 찾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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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전남 여수국가산업단지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선원동 무선지구. 여수산단에서 일하는 직장인들이 주로 찾는 이 일대 상가 곳곳에는 ‘임대 문의’ 현수막이 붙어 있다. 3일 인근 부동산 관계자는 “어떤 곳은 권리금도 없이 내놨지만, 반년째 찾는 사람이 없다”고 전했다. 빽빽하게 들어선 원룸 단지도 공실률이 치솟고 있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국내 석유화학 업계에 혹독한 겨울이 찾아왔다. 한때 반도체와 정유에 이어 ‘수출 3대 효자’로 불렸지만, 지난해부터 불황의 그늘이 드리우면서 기업들도 제 살길 찾기에 나서는 모양새다. LG화학과 롯데케미칼, 한화솔루션 등 주요 업체들은 지난해 모두 석유화학 사업에서 손실을 냈다. 올해 2분기 역시 대부분 부진한 실적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가 타격을 받은 건 수요 위축과 공급 과잉이 겹치면서다. 석유화학 업종은 국제 유가, 글로벌 경기와 연동돼 호황과 불황 사이클이 반복되는 게 특징이다. 업계에서는 업황 사이클이 통상 3~4년 주기로 반복된다고 본다. 지난 2021년에는 사상 최대 실적을 맛봤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번 위기를 단순 침체가 아닌, 산업 전체의 격변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무엇보다 최대 고객이었던 중국이 코로나19를 거치며 잠재적 경쟁 상대로 돌변했다. 대규모 증설을 통해 자국 내 석유화학 자급률을 크게 끌어올리면서다. 업계 관계자는 “현 추세대로라면 중국의 에틸렌 등 기초 유분과 중간원료 자급률이 2025년께 100%를 넘어설 것”이라고 말했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급기야 연기가 사라진 공장도 나왔다. 지난 4월 정비 목적으로 가동을 중단했던 LG화학 여수산단의 나프타분해설비(NCC) 제2공장은 여전히 재가동에 들어가지 않고 있다. NCC는 ‘석유화학의 쌀’로 불리는 에틸렌 등 기초 유분을 제조하는 핵심 시설이다. LG화학 관계자는 “이미 공급량이 충분한 데다 시황이 너무 안 좋아 돌릴수록 손실이 더 커진다”고 말했다. 석유화학 업황을 가늠하는 대표적 지표인 에틸렌 스프레드(에틸렌-나프타 가격 차이)는 15개월 넘게 손익분기점인 300달러를 밑돌고 있다. 현재 이 공장은 매각하는 방안까지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기업들은 NCC 과정에서 얻은 원료를 재가공해 만드는 ‘스페셜티’(고부가가치 제품) 소재에 주목하고 있다. 주로 반도체, 자동차, 의료기기에 들어가는 제품이다. 향후 중국발 가격 공세가 시작되면 폴리프로필렌(PP)과 폴리에틸렌(PE) 등 범용 석유화학 제품은 수익 내기가 더 어려울 것이란 판단에서다.

LG화학은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석유화학 사업에 대한 구조조정에 착수한 상태다. 대신 2차전지 소재와 친환경 소재, 글로벌 신약 등 3대 성장 분야를 중심으로 개편하겠다는 전략이다.

롯데케미칼 역시 고부가가치·친환경 제품 생산에 주력하는 한편 생산 거점을 해외로 전환하는 중이다. 이 회사는 총 39억 달러(약 5조1000억원)를 투자해 인도네시아에 초대형 석유화학단지를 조성하는 ‘라인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한화솔루션·금호석유화학·DL케미칼 등도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 확대, 전기차 소재 등 신사업 진출에 적극적이다.

석유화학 업계 관계자는 “중국의 저가 물량 공세에 맞서 게임의 룰 자체가 바뀌고 있다”면서 “국내 기업 대부분이 10년 안에 주력 제품이 바뀔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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