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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자 참여 없는 압수수색은 무효, 잇단 판결...법원-검찰 신경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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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올라가 심리 중인 최강욱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건의 쟁점 중 하나는 압수수색 과정의 적법성이다. 최 의원은 조국 전 법무부장관 아들에게 허위 인턴 증명서를 써준 혐의로 1·2심에서 유죄가 선고됐는데, 유죄의 증거가 된 인턴 증명서는 정경심씨가 집에서 쓰던 PC 하드디스크에서 발견됐다. 정씨는 이 하드디스크를 자산관리인 김경록씨에게 부탁해 숨겨놨고, 검찰은 이를 김씨에게서 임의제출 받는 방식으로 확보했다.

최강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10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채널A 기자 명예훼손 혐의' 1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법정을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최강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10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채널A 기자 명예훼손 혐의' 1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법정을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그러자 최 의원은 “김경록씨가 하드디스크를 검찰에 임의제출 하는 과정에서 ‘실질적 피압수자’인 정경심씨와 조 전 장관의 참여권이 보장되지 않았다”며 증거능력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드디스크의 실제 사용자는 정경심씨인데, 압수수색(임의제출) 때 정씨가 참여하지 않았으니 위법한 증거 수집이라는 것이다. 1·2심 재판부는 “정경심씨를 실질적 피압수자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지만, 대법원 소부(小部)에서 증거능력을 두고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사건이 전원합의체로 넘어갔다.

남의 휴대전화, 내가 수사기관에 제출했다면…증거능력은?

 최근 법원에서 증거 수집 과정의 위법성을 이유로 증거능력을 부인하는 판례가 잇따르면서 압수수색의 적법성을 둘러싼 법원과 검찰 사이 물밑 신경전이 고조되고 있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대법원이 예규로 도입하려는 압수수색 영장 대면 심리제도(압수수색 영장 발부에 앞서 판사가 필요에 따라 검사나 수사관 등을 불러 청구 경위를 따져물을 수 있게 하는 제도)가 검찰과 큰 갈등을 빚는 것도 최근 판례에 대한 불만이 배경으로 깔려 있기 때문”이라며 “판례만으로도 압수수색의 효용성이 충분히 압박받고 있다는 게 검사들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정당한 압수수색’의 범위를 좁히는 데 최근 자주 활용되는 건 ‘실질적 피압수자’ 개념이다. 이 개념은 2021년 11월 대법원 판례에 처음 등장했다. 성추행 피해자가 경찰에 임의제출한 피의자의 휴대전화에서 다른 성추행 범죄의 동영상 증거가 나왔지만, 법원은 임의제출 때 피의자에게 참여권을 보장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휴대전화를 제출한 피해자가 아니라, 휴대전화의 실소유주로서 실질적 피압수자인 피의자의 참여권을 보장했어야 한다는 판결이었다.

이후 실질적 피압수자의 범위는 사건에 따라 조금씩 달라졌다. 지난해 6월 대법원은 검찰이 카카오톡 서버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의 대화 내역에 대해, 용 의원의 참여가 없었기 때문에 압수수색은 취소하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 용 의원은 대학생이던 2014년 5월 세월호 관련 불법 시위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검·경의 카카오톡 서버 압수수색과 이후 증거 선별 과정에서 수사기관은 용 의원에게 절차를 통보하거나 참여권을 보장하지 않았다. 압수수색 대상은 인터넷 서비스 업체지만 서비스 가입자의 통신 내용이 압수수색의 목적이라면 그 가입자에게도 압수수색에 참여할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피의자의 참여권이 문제가 되지 않는 건 ‘몰래카메라’ 범죄 같은 예외적 상황에서다. 대법원은 2021년 11월 모텔 주인이 임의제출한 객실 내 몰래카메라에 대해 “몰래카메라는 오직 불법촬영의 목적으로 은밀히 설치돼 (실질적 피압수자의) 보호 가치가 있는 전자정보가 섞여 있을 가능성을 상정하기 어렵다”며 증거능력을 인정했다. 몰카는 어떻게 봐도 불법인데, 그것을 모텔 주인이 임의제출했다고 해서 몰카를 설치한 피의자의 참여권을 보장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정웅석 한국형사소송법학회장은 “최근 법원이 참여권 보장을 강조하면서 ‘위법수집증거’ 배제 원칙을 더욱 폭넓게 적용하고 있다”며 “다만 실질적 피압수자의 개념이 형사소송법에 명문화된 게 아니라 법원이 사건 유형과 수집된 증거의 특성에 따라 달리 판단하고 있어 기준과 한계에 대해선 학계에서도 논쟁 거리”라고 말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PC 압수수색으로 e-메일 확보…적법?

 한편 디지털 증거 확보를 위한 압수수색의 경계가 최근 엄밀해지고 있는 것도 수사기관을 긴장시키는 요인이다. 휴대전화와 PC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았더라도 자동 로그인 된 e메일 계정, 클라우드 서버, 소셜미디어 계정 등에 담긴 전자정보까지 압수수색할 수는 없다는 판례가 최근 형성됐다. PC나 휴대전화 압수수색 과정에서 클라우드 서버에 도달했더라도 그 안에 저장된 정보를 들여다보려면 해당 서버를 구체적으로 명시한 영장을 따로 발부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2017년만 해도 대법원은 검찰이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PC에 자동 로그인 돼 있던 피의자의 e메일 계정에서 확보한 증거에 대해 “전자정보가 PC에 있지 않고 원격지 서버에 있더라도 적법하게 취득한 아이디·비밀번호로 접근하면 필요한 처분”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지난해 6월 대법원은 “PC 자체가 아닌, 원격지 서버에 저장된 전자정보를 압수수색하려면 영장에 적힌 ‘압수할 물건’에 별도로 원격지 서버 전자정보가 특정돼 있어야 한다”며 이같은 절차 없이 클라우드에서 압수한 불법 촬영물의 증거능력을 부인했다. 클라우드와 e메일은 사건과 무관한 사생활 내용도 다수 담겨 있어 압수수색 영장 발부 단계부터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취지다.

 검찰에서는 법원의 최근 판례 변화에 대해 “법률 해석의 범위를 넘는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한 부장검사는 “원격지 압수수색 판례 변화로, 압수수색 대상을 e메일 계정이나 클라우드라고 명시하면 영장전담 판사가 과도한 압수수색이라고 제동을 거는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한 평검사는 “피압수자 참여권을 두고 판례가 새롭게 나오다 보니 일선에서는 임의제출 받은 증거에 대해 어디까지 참관을 통보해야 할지 사건마다 혼선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형사소송법 개정을 통한 재정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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