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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만점돼야 가는 대학"…이런 '하버드 차별' 제동 걸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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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학들이 지난 60여년간 신입생 선발에 적용해 온 소수인종 우대 정책인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에 대한 위헌 결정이 나오면서 미국 내 한인 사회도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현지에선 "성적이 우수한 한국계 등 아시아계의 미 명문대 진학률이 올라갈 것"이란 기대와 "대학들이 입시방식을 바꿀 수 있어 장기적으론 큰 변화가 없을 것"이란 관측이 함께 나오고 있다.

2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의 연방대법원 앞에서 아시아계로 보이는 사람이 '모두에게 공정한 입학'이란 내용이 적힌 팻말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AP=연합뉴스

2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의 연방대법원 앞에서 아시아계로 보이는 사람이 '모두에게 공정한 입학'이란 내용이 적힌 팻말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번 결정은 '공정한 입학을 위한 학생들'(SFA)이란 단체가 하버드대 등이 소수인종 우대 입학 제도로 백인과 아시아계 지원자가 역차별을 겪고 있다고 낸 소송에서 비롯됐다. 이를 두고 뉴욕타임스(NYT)의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프렌치는 판결이 나온 29일(현지시간) ‘하버드가 소수인종 우대정책을 스스로 무너뜨렸다’는 제목의 칼럼을 냈다.

그는 칼럼에서 “이번 소송에서 피고인 하버드대가 적극적으로 아시아계 지원자들을 차별했다는 증거가 압도적”이라며 “(존 로버츠 대법원장이 다수 의견서에서) 학업 성적 하위 40%인 흑인 학생의 하버드대 입학 확률이 상위 10%의 아시아계보다 높다는 사실을 근거로 든 이유”라고 꼬집었다.

미국 내 소수인종 가운데서도 교육열이 높은 아시아계 학생들의 성적이 평균적으로 뛰어난 데도 불구하고, 하버드를 비롯한 명문대들이 아시아계의 입학을 가로막는 진입 장벽으로 어퍼머티브 액션을 '악용'했단 비판이다.

실제로 미국대학 입시 전문가들은 우수한 성적의 한국계 학생들이 흑인·히스패닉 등에 주어지는 인종우대 점수에 밀려 진학에 어려움을 겪은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로스앤젤레스(LA)에 있는 입시컨설팅회사 '어드미션 매스터즈'의 김지나 대표는 "미 명문대 입시에선 실제로 흑인과 히스패닉계 학생이 소수 인종이란 이유로 백인, 아시아계보다 성적이 낮아도 추가점을 얻어 입학하는 게 가능했다"고 전했다.

김 대표는 통상 흑인, 히스패닉·라틴계 학생은 아시아계보다 SAT가 100점 정도 낮아도 합격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런 '장벽' 때문에 한인 사회에선 "한국계는 SAT(미국대학입학자격시험)에서 만점을 받지 못하면 아이비리그에 도전하기 어렵다"는 얘기까지 돌고 있었다.

때문에 앞으로 학업 성적이 우수한 한국계 학생들의 명문대 입학률이 올라갈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김 대표는 "때문에 수험생 자녀를 둔 한인 학부모들은 (이번 위헌결정으로) '이제 우리 애가 차별받지 않겠다'며 기뻐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캘리포니아주(州)가 소수인종 우대정책을 금지한 이후 아시아계의 지역 내 명문대 진학률이 상승했던 경험이 있다. 일례로 미 서부 명문대인 UCLA의 경우, 현재 학부생 중 29%가 아시아계로 흑인(3%), 히스패닉ㆍ라틴계(22%) 등은 물론 백인(26%)보다도 더 많다.

29일(현지시간) 미국 연방대법원이 '어퍼머티브 액션'에 대한 위헌 결정을 내렸다. 사진은 이날 미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 있는 하버드대 교정 풍경. AP=연합뉴스

29일(현지시간) 미국 연방대법원이 '어퍼머티브 액션'에 대한 위헌 결정을 내렸다. 사진은 이날 미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 있는 하버드대 교정 풍경. AP=연합뉴스

반면 일각에선 이번 판결이 장기적으론 한국계 학생 등 아시아계 지원자의 합격률을 크게 올리지는 못할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미 대학들이 학교 측이 원하는 인종 구성 등을 위해 입시 정책과 관행을 바꿀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계 학생들의 아이비리그(미 동부 8개 명문대) 진학률이 높아지면 대학들이 성적이 아닌 다른 영역의 평가 비중을 올리는 방식으로 아시아계에 대한 새로운 입시 장벽을 만들 수 있다는 지적이다. 지원자의 경험과 특성 등까지 포괄하는 일종의 다면 평가인 ‘홀리스틱 리뷰(Holistic Review)’ 등을 활용하면 각 대학이 선호하는 학생을 선발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날 미주 최대 여성 커뮤니티 미시유에스에이(Missy USA)의 한 이용자는 게시글에 "위헌 결정은 났어도 어차피 홀리스틱 리뷰를 내세울 것이고, 시험 성적 하나로 줄 세우는 게 아니니 결국 대학들은 하고 싶은 대로 할 것"이라고 적었다.

실제로 소송 당사자인 하버드대는 대법원 결정 후 발표한 성명에서 "대법원의 결정을 확실히 따를 것"이라고 밝히면서도 다양성이라는 가치를 계속 추구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하버드 측은 "대학은 소외된 사람들에게 열려있는 기회의 장소가 돼야 한다고 믿는다"며 "향후 구성원들의 지혜와 전문성을 바탕으로 대법원의 결정과 하버드의 가치를 공존시키는 방법을 찾을 것"이라고 밝혔다.

연방대법원의 위헌결정으로 수혜를 입는 이들은 아시아계 학생이 아니라 백인이 될 것이란 주장도 나온다. 하버드대 아시아계 미국인연합은 위헌 결정 직후 성명을 통해 "오늘 결정은 유색인종 학생들의 교육 기회를 제한한 것"이라면서 "앞으로 흑인, 라틴계, 미국 원주민, 태평양계 출신 학생의 거의 절반이 줄어들겠지만, 그 대부분의 자리는 아시아계가 아닌 백인이 대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NYT 칼럼니스트 프렌치는 “아시아계 미국인은 역사적으로 이민 제한과 분리 정책 등으로 차별받아왔다”며 “대학들은 새로운 인종적 가해를 저지르지 않고서도 차별의 유산과 현실에 대응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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