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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권석천의 컷 cut

생명이 찾아낸 어떤 생존의 방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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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Beef)’은 감정의 롤러코스터다. 예측불허의 상황이 쉴 새 없이 전개된다. “망할… 왜 내가 이런 짓까지 하게 만들어?” 미국 LA에 사는 한국계 남성 대니(스티븐 연)와 중국·베트남계 여성 에이미(앨리 웡)가 로드 레이지(보복 운전)로 맞붙은 뒤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난타전을 벌인다.

둘 다 ‘알고 보면’ 괜찮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상대를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은 채 으르렁거리기 바쁘다. 아니, 오히려 모르는 사람이기에 마음 놓고 공격적이 된다. 갈등의 한 축인 에이미는 인테리어 원예업체 ‘고요 하우스’를 운영하는 사업가다. 잘생긴 남편에 귀여운 딸도 있다. 그런데 왜 도로에 나서면 폭주를 하고 욕설을 뱉는 것일까.

컷 c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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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삶을 보자. 겉으론 잘나가는 듯 보이지만 내면은 불안과 우울, 짜증에 찌들어 있다. 비즈니스 세계의 갑(甲)들에게 웃는 얼굴로 자괴감을 숨긴 채 아양을 떠는 게 이젠 신물이 난다. “나도 보살핌 좀 받고 싶은데”, 가족들은 보채기만 한다. 가슴 속 울화는 적립식 예금처럼 차곡차곡 쌓여 간다.

“문제는 그 사람이 아닌 거 같아.” 꼬일 대로 꼬인 상황에서 에이미는 남편에게 고백한다. “난 평생 이런 식이었어. 문제는 나인 것 같아.” 그녀는 “내가 나쁜 사람이란 걸 어떻게든 숨기고 싶었다”며 고개를 떨군다. 깨달음도 잠시뿐. 대니와 다시 부딪히자 조건반사적으로 달려든다.

하지만 그렇게 뒤죽박죽이 돼버리는 두 사람이 밉지만은 않다. 가식과 위선에 가로막힌 현실에서 숨구멍을 찾으려는, 절박한 몸짓이기 때문이다. “생명은 방법을 찾아냅니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영화 ‘쥬라기 공원’의 대사다. 그들의 진흙탕 싸움 역시 살아남으려는 생존의 방법 아닐까. 서울 도심에서 클랙슨을 울려대고, 틈만 나면 끼어들고, 못 끼어들게 막아서는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