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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 대선 열렸다”…국회 ‘숨은 실세’ 국보협·민보협 회장 선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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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사당 전경. 중앙포토

국회의사당 전경. 중앙포토

내년 4·10 총선을 9개월여 앞두고 여의도에서 ‘작은 대선’이 치러진다. 각각 700여명과 1400여명의 회원을 보유한 국민의힘 보좌진협의회(국보협)와 더불어민주당 보좌진협의회(민보협)를 이끌 회장 선거가 동시에 시작되기 때문이다.

제33대 국보·민보협 회장 선거는 각각 다음달 6일과 5일 실시된다. 보좌진협의회는 보좌진의 권리 향상을 위한 협의체로 근로 조건과 처우, 복지 문제에 관해 목소리를 내와 사실상의 직장 노동조합과 같은 역할을 해왔다. 최근에는 정치 현안에 입장을 밝히거나 성명서를 내는 등 정치 조직으로서의 위상도 높아졌다. 특히 이번 선거에서 당선된 회장은 21대 국회 마지막 임기 1년을 책임진다. 민보협·국보협 회장은 무급 봉사직이지만 여의도의 숨은 실세인 보좌진을 대표한다는 점에서 큰 명예직으로 꼽힌다. 게다가 22대 국회가 출범하면 초선·비례대표 의원실에 보좌진을 추천할 수도 있어 실질 권한도 상당하다. 보좌진을 넘어 직접 정치에 뛰어드려는 사람에게는 정치 등용문으로 통하기도 한다.

국보협 회장에 역대 최다 5명 입후보…“일자리 안정” 한목소리

지난 27일 후보 등록을 마감한 국보협 회장엔 지욱현(김웅 의원실)·김영육(지성호 의원실)·오정석(백종헌 의원실)·이영수(장동혁 의원실)·김민정(김병욱 의원실) 보좌관(기호 순) 등 총 5명이 도전장을 냈다. 후보 숫자만 보면 역대 최대 규모로 32대 선거 당시 제방훈 회장(서일준 의원실)이 단독 입후보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국보협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로 보좌진 간 교류가 장기간 단절됐다가 제32대 국보협이 들어서며 소통 채널이 다시 열린 측면이 있다”며 “그 흐름을 이어가고자 하는 열망이 분출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민정 보좌관은 두 정당 통틀어 유일한 여성 후보다. 그동안 국보협 회장 선거엔 여성 도전자 자체가 드물었다. 여성이 입후보한 건 31대 회장 선거 당시 이현진 보좌관(양금희 의원실)에 이어 두 번째다. 민보협에선 5년 전인 2018년 조혜진 보좌관이 첫 여성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또 다른 국보협 관계자는 “첫 여성 국보협 회장이 탄생하는지도 관전 포인트”라고 말했다. 김민정 보좌관은 연가 제도 현실화, 휴식 시간 카톡 업무 지시 금지, 퇴근송 도입 등 일명 ‘워라밸 3종 패키지’를 내세우는 등 보좌진 복지 증진을 주요 공약으로 들고 나왔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국보협 회장 후보들은 공통적으로 ‘일자리 안정’을 강조하고 나왔다. 국회의원이 직을 상실하면 자동적으로 일자리를 잃게 되는 직업적 특성 때문이다. 지욱현 보좌관은 총선을 앞두고 보좌하는 의원이 직을 상실하게 될 경우 해당 의원실 보좌진을 내년 2~3월 총선 캠프 및 비례대표 의원실에 우선 추천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 대통령실 고용복지수석실 행정관을 지낸 이영수 보좌관은 ‘채용징검다리 위원회’ 설치를 약속했다. 이력 데이터 베이스를 구축해 이직 희망자를 위한 채용 정보를 제공하고, 낙선 의원실 보좌진을 당선 의원실로 연계하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게 핵심이다.

김영육 보좌관은 선거 포스터에 본인 사진 대신 “회장 만들어 부려 주이소”라는 사투리를 적어 화제를 모았다. 부산 토박이 출신인 그는 보좌진-의원실 간 맞춤형 취업 시스템 구축과 퇴직·사직 수행 보좌진 대상 정부기관 및 공공기관 연계 재취업 활동 지원을 공약했다. ROTC 출신으로 육군 중대장(대위) 경험이 있는 오정석 보좌관은 황토벽돌 제조 공장을 창업한 경력을 강조하며 예측 가능한 여름휴가 보장과 최소 월 1회 이상의 연가 보장 시스템 확립을 대표 공약으로 꺼내 들었다.

2명 후보 각축전 민보협 선거…‘보좌진 처우개선’에는 한 목소리

다음달 4일 온라인 투표를 거쳐 5일 본투표를 실시하는 민보협 회장엔 박철민(정필모 의원실)·이정환(최인호 의원실) 보좌관(기호순)이 후보 등록을 마쳐 양자 대결 구도로 치러진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박철민 보좌관은 2011년 주승용 의원실 인턴부터 시작해 국회에서 13년 동안 일했다. 국회 생활을 시작하기 전 보건의료 전문지에서 기자 생활을 해 보건복지위원회와 인연이 깊다. 그는 2012년 중증외상센터 건립 재원 마련을 위해 만들어진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이른바 ‘이국종법’의 입법 과정을 다룬 『치료받지 못한 죽음』이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이정환 보좌관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 10년간 근무했다. 노조 활동을 하며 한국노총과 인연을 맺었고, 노동조합에서 정책실장 업무를 하다 여의도 생활을 시작했다. 2016년부터 최인호 의원실에서 8년째 근무 중이고, 제31대 민보협 부회장을 지냈다.

두 후보 모두 “처우 개선이 우선”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하지만 접근법은 조금 다르다. 박 보좌관은 ▶연가보상비 추가 확보 ▶겸임수당 신설 추진 등 보좌진의 금전적 권익을 찾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공약했다. 반면 이 보좌관은 ▶비례대표 명단 작성 시 보좌진 공천 보장 ▶공천 가점 중복 적용 추진 등 보좌진의 정치 참여 확대 방안을 대표 공약으로 내세웠다.

국회의원들도 이번 선거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국민의힘 한 재선 의원은 “유능한 보좌관을 두는 것은 의원의 최대 행운”이라며 “보좌관이 협의회 회장에 당선되면 당내 상황에 대한 정보 입수가 빨라 내년 총선 준비에 도움을 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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