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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사정관-명문고 교사도 학원행…입시컨설팅, 또다른 카르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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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서울 시내 학원가 모습. 연합뉴스

서울 시내 학원가 모습. 연합뉴스

서울 대치동의 A학원은 지난 26일 수도권 한 대학의 입학처 관계자를 초빙해 입학 설명회를 열려다 취소했다. 10여 년간 매년 서너 차례 열어온 행사였지만, 최근 ‘사교육 카르텔’ 논란이 부담스러워진 것이다. 학원 측은 “대학에서 학부모에게 홍보 차원에서 나오는 것이라 문제 될 일은 없다”면서도 “해당 대학에 피해를 줄까봐 설명회는 당분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신청 학부모들에게 설명했다.

서울 서초구 B학원은 학생부 컨설팅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비교과와 수행평가 컨설팅으로 나뉘어 진행되는데, 학원 측은 “1200여개의 주요 과목별 다양한 수행평가 자료를 보유하고 있다” “현장형 수행평가에 대비한 전문 선생님의 컨설팅이 이뤄진다”고 홍보한다. 수행평가와 비교과 컨설팅의 경우 6개월에 240만원이라는 안내가 이어진다. 지난해 문을 연 C업체는 학생들이 학생부 데이터를 온라인에 올리면 전국 125개 대학의 195개 전형 서류평가 방법을 반영해 합격 여부를 알려준다. 이른바 AI(인공지능)를 활용한 학생부 컨설팅 서비스다.

대입 필수가 된 입시컨설팅…또다른 사교육

이처럼 다양한 종류의 입시 컨설팅은 어느덧 대입 수험생과 학부모의 필수 코스가 됐다. 고교에서는 명문대 진학을 위한 갖가지 루트나 노하우를 얻기 힘드니 학원을 찾는 게 당연한 일이 되고 있다.

입시학원들은 그 수요에 맞춰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명문고의 진로진학 담당 교사나 전·현직 대학 입학사정관을 영입하고 대입 정책 변화에 맞춰 수십만원짜리 입시컨설팅을 준비했다. ‘킬러 문항’을 매개로 학원에서 고액의 수업을 받아야 하는 사교육 카르텔과 별도로, 입시 정보를 얻는 과정에서도 ‘입시컨설팅 카르텔’이 형성된 것이다.

지난 26일 사교육 경감 대책 발표에서 교육부가 “학생 누구나 학원의 도움 없이 입시를 준비할 수 있게 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미 사교육 몫으로 자리 잡은 입시컨설팅 카르텔을 끊겠다는 취지다.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난 뒤 첫 일요일인 21일 강원 춘천시청에서 열린 대학입시설명회에서 학생과 학부모가 대입 컨설팅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난 뒤 첫 일요일인 21일 강원 춘천시청에서 열린 대학입시설명회에서 학생과 학부모가 대입 컨설팅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수시 확대 이후 자소서 컨설팅 유행

입시 컨설팅 학원은 수시모집 정원이 대폭 확대된 2010년 전후 우후죽순처럼 늘었다. 지금은 ‘컨설팅’이 들어간 이름으로 등록된 학원이 서울에만 45곳이고 이 중 33곳이 강남구에 있다. 상호에 컨설팅을 쓰지 않는 경우를 감안하면 그 숫자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2010년 전후엔 자기소개서 작성을 ‘상담’해준다며 대필을 해주는 컨설팅 학원도 많았다. 당시 학원을 운영했던 한 컨설턴트는 “수험생 본인은 물론 아빠, 엄마, 할머니 버전까지 자소서를 받아서 학원에서 완성본을 만들어줬다”고 말했다.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에 들어갈 특기사항을 채우기 위해 학원이 소논문을 대신 써주고 독서 목록을 짜주기도 했다.

이런 문제가 지적되자 정부는 2019년 자소서를 필수 제출 목록에서 없애고 소논문 등 세부특기사항에 적힐 비교과 활동의 제한을 대폭 늘렸다. 학원들은 고 1~3학년 전 활동을 ‘토털 케어’하는 방식으로 커리큘럼을 바꿨다.

‘내부자’의 학원 진출…“홍보 효과 톡톡”

대입 컨설팅을 주요 사례로 다룬 JTBC 드라마 'SKY캐슬'. 드라마가 화제가 되며 입시 컨설팅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중앙포토

대입 컨설팅을 주요 사례로 다룬 JTBC 드라마 'SKY캐슬'. 드라마가 화제가 되며 입시 컨설팅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중앙포토

컨설팅 전문가의 스펙도 진화했다. 수시모집 평가 업무를 담당했던 입학사정관, 대학과 긴밀하게 소통했던 명문고 진학담당 교사 등 ‘내부자’가 학원가로 이직하는 일이 잦아진 것이다. 대치동의 D학원은 “학생부 관리, 비교과 관리, 면접까지 프리미엄 컨설팅 프로그램을 제공한다”며 EBS 입시상담팀장과 입학사정관 출신 3명의 컨설턴트를 홈페이지에 앞세워 홍보하고 있다. 이 학원은 고교생 상담 한 시간당 18만원을 내야 하는데 5시간 단위로 결제가 가능하다며 최소 90만원 결제를 유도했다. 대치동과 목동 등에 본원과 분원을 둔 E 학원은 서울대 입학사정관 출신 컨설턴트를 앞세웠다. 한 컨설턴트는 “그 컨설턴트가 일했던 대학에 지망하는 학생에겐 놓치기 싫은 기회”라고 말했다.

지난 2021년 교육부는 취업 제한 기간(3년) 위반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입학사정관의 사교육계 이직이 물밑에서 이뤄지고 있다. 한 입시업체 관계자는 “최근에도 갓 퇴직한 입학사정관이 학원을 차렸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지난 2020년에도 현직 사정관이 모 대학 의대 선임사정관을 초빙해 설명회를 열었던 사실을 포착한 바 있다”며 “대학이 나서서 사교육 참여를 부추길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고교 진로진학 교사들의 학원행도 공공연한 비밀이다. 서울 모 대학의 입학사정관은 “진로진학 교사들은 입학처 관계자들과 긴밀히 소통해왔다는 점에서 메리트가 있다”고 말했다. F학원의 경우 부설로 운영하는 컨설팅단에 주요 외고·과학고 진학부장 출신을 영입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전북의 한 진학교사는 “서울대 입학생을 수십명 배출한 서울의 자율형사립고 진학부장이 학원가로 진출했다는 얘기가 전북까지 들릴 정도”라고 말했다.

정시도 컨설팅 불가피…공교육은 역부족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사교육비 경감 대책과 사교육 카르텔 근절을 위한 대책을 발표했다. 연합뉴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사교육비 경감 대책과 사교육 카르텔 근절을 위한 대책을 발표했다. 연합뉴스

수시뿐 아니라 정시모집 상담은 컨설팅 학원 상담이 필수 코스로 통한다. 서울 강남에서 활동 중인 한 컨설턴트는 “상담 1회에 30만~60만원의 가격대가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진학사 등 원서 접수 대행업체에서는 회원인 수험생들이 적어 낸 수능 성적 데이터를 바탕으로 10만원 내외를 받고 합격 여부를 예측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정부는 컨설팅 사교육을 줄이기 위해 현장 교사 중심의 무료 대입 상담을 실시하고 현재 운영 중인 대입상담교사단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또 대입정보포털 ‘어디가’를 통해 대입 전형 평가 기준과 평균 합격선을 공개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공교육 현장에서는 “입시만 전담할 수 없는 현실 때문에 컨설팅 역량을 키우기엔 역부족”이라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서울의 한 진학담당 교사는 “학부모들을 상담해보면 사설 컨설팅을 다녀온 후 오신 분들이 대부분이다. 사실 공교육 기관에서 모인 데이터가 훨씬 양질인데도 학부모들이 학원 찾는 건 본질적인 공교육에 대한 신뢰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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