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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얼린다" 솔비는 마지노선?…서울시 '난자냉동' 지원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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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이달 7일 MBC '라디오스타'에 나와 난자 냉동술을 받았음을 밝히는 가수 겸 작가 솔비. 사진 MBC 유튜브 캡처

이달 7일 MBC '라디오스타'에 나와 난자 냉동술을 받았음을 밝히는 가수 겸 작가 솔비. 사진 MBC 유튜브 캡처

직장인 이연정(37·여·가명)씨는 지난해 서울 한 난임 전문 병원에서 난자 동결 시술을 받았다. 그는 "보험 들어 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결혼이 늦어지면서 임신·출산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자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라서다. 이씨는 1번 시술로 난자 14개를 얼렸는데, 550만원을 썼다고 한다. 첫 해 동결 보관 비용은 50만원이고, 계속 맡기려면 매년 20만원씩 추가로 내야 한다. 이씨는 “당장 임신과 출산할 생각은 없지만 나중에 아이를 낳고 싶어질 지 모른다. 나이 든 뒤에는 임신을 원해도 어려워질 수 있다. 원할 때 임신할 수 있는 선택권을 돈 주고 산다는 마음으로 시술을 결정했다”라고 말했다.

만혼 추세 타고 난자 보관 2배 급증 

최근 난자 동결 시술은 임신·출산을 미루려는 미혼 여성의 주목을 받고 있다. 과거 항암·방사선 치료나 자궁·난소 수술을 앞둔 여성 환자들이 난소 기능 상실에 대비해 제한적으로 시행하던 것과 그 목적이 달라져 의료계에선 ‘사회적 난자 냉동(Social egg freezing)’이라고도 불린다.

김현정씨가 난자 채취 시술 때 찍은 사진. 사진 본인 제공

김현정씨가 난자 채취 시술 때 찍은 사진. 사진 본인 제공

27일 차병원에 따르면 2021년 미혼 여성의 난자 동결보관 시술 건수는 1194건으로 집계됐다. 2020년(574건)의 2.1배에 달하고, 10년 전인 2011년(9건)과 비교했을 때에는 132배 뛰었다. 2년 전 대구 차병원 난임센터에서 난자 동결 시술을 받은 미혼 여성 김현정(36)씨는 “좋은 사람을 만났을 때 난임 걱정을 하고 싶지 않아 보험처럼 난자를 미리 얼려뒀다”라고 말했다. 그는 시술 당시 사흘 만에 체중 13㎏이 찌는 등 복수가 차는 부작용을 겪기도 했다. 그럼에도 김씨는 “시술 후 마음의 여유가 생겼고, 주변에도 권한다”라고 말했다. 이달 방송한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가수 겸 작가 솔비(38·본명 권지안)가 “아이를 낳고 싶지만 언제 낳을지 몰라 꾸준히 난자를 얼리고 있다”라고 밝히는 등 연예인들의 고백도 줄 잇고 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관심이 쏠리면서 일부 지자체는 미혼 여성에 대한 난자 동결 시술비 지원을 저출산 대책으로 내놨다. 서울시는 오는 9월부터 전국 최초로 난자 동결 시술 비용을 지원하기로 했다. 예산 3억원을 들여 20~49세 여성에게 1인당 최대 200만원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보건복지부는 동결 시술 자체보다는 가임력 보존 목적으로 냉동한 난자를 향후 임신·출산을 위해 사용할 때 관련 시술에 드는 비용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40대는 지원 대상에서 원래 빠져있었으나 ‘우리도 해달라’는 민원이 쏟아지면서 이들을 포함했다”라며 “출산 의지가 있는 사람을 직접 도와주는 것이 가장 경제적인 저출산 정책이라고 판단했다”라고 말했다.

40대까지 지원? 의료계에선 ‘글쎄’

15일 오전 대구 북구 엑스코에서 열린 '대구 베이비&키즈 페어'에서 부모들이 유아용 옷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15일 오전 대구 북구 엑스코에서 열린 '대구 베이비&키즈 페어'에서 부모들이 유아용 옷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의료계에서는 40대까지 시술비 지원을 넓힌다해서 실제 출산으로 이어지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주창우 서울 마리아병원 부원장은 “난자의 노화를 고려하면 37~38세가 시술 마지노선이며, 난자의 상태를 고려하면 35세까지 시술을 권장한다. 40대에 난자를 동결 보관하면 임신 가능성이 떨어진다"라고 말했다.

다태아(다둥이) 분만 국내 최고 권위자인 전종관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지난 5일 오세훈 서울시장을 만났을 때 “난자 동결이 예산을 들여 지원할 문제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라는 우려를 전했다. 서울시가 파악한 냉동 난자의 사용률은 10% 정도다. 전 교수는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채취한 난자를 10%만 쓴다는 건 난자 냉동이 실제 출산과 연결이 잘 안 된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시술 때 과배란 과정에서 여성 몸에 위험이 있고, 44세 임신율은 2%에 불과하다”라며 “과거에는 그 나이를 넘으면 (병원 측이) 시술을 안 해줬다. 아무리 저출산이 심각하다고 해도 세금을 들이는데, 사업 타당성을 고려하고 신중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유정현 분당제생병원 산부인과 과장은 “정책적으로 40세 넘어서 하는 건 의미가 없다”라며 “난소 수술이나 항암·방사선 치료 이전에 건강한 난자를 냉동하는 걸 고려한다면 막연한 걱정으로 주사를 맞고 난자를 채취하는 건 지양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최안나 국립중앙의료원 산부인과 난임센터장이 지난 5월 19일 국회에서 열린 '난임 및 임신 스트레스 없는 사회를 위하여' 정책 심포지엄에서 밝힌 자료 중 일부. 사진 국립중앙의료원

최안나 국립중앙의료원 산부인과 난임센터장이 지난 5월 19일 국회에서 열린 '난임 및 임신 스트레스 없는 사회를 위하여' 정책 심포지엄에서 밝힌 자료 중 일부. 사진 국립중앙의료원

시술 자체가 저출산의 근본 대책이 될 수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최안나 국립중앙의료원 산부인과 난임센터장은 “미리 냉동한 난자를 체외수정으로 쓰는 경우는 적게는 5%에서 많게는 10%도 안 되는데 이를 국가가 도와준다고 하면 여성이 건강하게 임신할 시기에 임신·출산하지말고 일하라고 재촉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사업은 이제 겨우 시작 단계”라며 “과학적인 타당성이나 당장 있을 가시적인 효과를 생각한 것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투자 개념으로 봐달라”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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