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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경범이 소리내다

대통령 발언, 혼란 불렀다…변별력 집착 말고 수능 절대평가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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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김경범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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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6일 사교육비 경감 대책을 발표했다. 교육부는 이날 킬러문항 사례도 공개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6일 사교육비 경감 대책을 발표했다. 교육부는 이날 킬러문항 사례도 공개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6월 26일 교육부가 최근 3년 수능과 올해 6월 모의수능에 출제된 킬러 문항을 공개했다. 교육부 논리에 따르면 “교육과정에 있지만, 학교 수업에서 다루지 않은 내용을 출제한 문항”이 킬러 문항이다. 사람들은 킬러 문항을 교육과정 밖에서 출제된 매우 어려운 문항으로 이해한다. 그런데 교육부가 공개한 어떤 문제는 예상보다 어렵지 않았고, 어떤 문항은 통합적 사고력을 묻는 좋은 문항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킬러 문항 출제 배제를 지시했지만, 도대체 킬러 문항이 무엇인지, 어떤 문항이 수능에 나오지 않는지 궁금했던 고 3학생은 사교육에 물어보아야 한다. “변별력은 갖추되, 공교육 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내용은 출제 배제”라는 교육부의 출제 기준을 해석해 줄 사람은 공교육에 없다.

윤 대통령은 킬러 문항이라는 단어를 언급하지 않았어야 했다. 킬러 문항은 학원가에서 학생과 학부모의 불안감을 자극하려고 만든 홍보용 단어인데, 대통령이 이 단어를 거론하면서 오히려 사교육을 도와주게 되었다. 또한 윤 대통령은 사교육비 경감을 위한 수단을 잘못 설정했다. 사교육비의 원천 중 하나는 강한 변별력에서 나오는 경쟁과 불안이다. 경쟁과 불안을 줄이면 사교육비는 줄어든다.

그런데 킬러문항을 들고 나왔고, 킬러 문항 제거로는 사교육비가 줄지 않는다. 단지 두세 개의 킬러 문항이 ‘더 많은 준(準) 킬러 문항들’로 대체될 뿐이다. 킬러 문항이 없어지면 한 문항의 영향력이 커져서 실수하지 않아야 한다는 불안이 더 커진다. 이렇게 사교육비 경감 방안이 오히려 사교육비를 키우고 있다.

서울 강남구의 한 학원 앞에 수업 내용과 관련된 광고문구가 적혀있다. [연합뉴스]

서울 강남구의 한 학원 앞에 수업 내용과 관련된 광고문구가 적혀있다. [연합뉴스]

경쟁 낮추고 불안 줄여야 사교육비 해결된다

수능의 문제점은 교육과정 출제 여부가 아니라 과도한 변별력과 많은 응시 영역이다. 사교육비를 줄이고 더 좋은 학교 교육을 만들려면 ①수시모집을 폐기하고 ②수능 변별력을 획기적으로 낮추며 ③수능 응시 영역을 3개 이내로 축소해야 한다. 수능 변별력을 낮추려면 수능을 절대평가 등급제로 단일화하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바람직한 입시는 수능 성적으로 한 줄을 세워 합격·불합격을 결정하는 방식이 아니라, 수능을 전형 자료의 하나로 활용하여 학교 교육을 통해 아이들이 미래를 살아갈 힘을 기르도록 도와주는 입시이다.

우리 아이들 앞에 어떤 입시가 기다리고 있을까. 2025학년도부터 고등학교 1학년 공통 과목은 상대평가 9등급을, 2학년과 3학년 선택 교과는 성취도 평가를 한다. 이는 내신 변별력과 타당도의 급격한 저하를 의미한다. 내신의 변별력과 타당성은 낮아졌는데 수능 변별력이 강하게 유지되면, 학교 교육은 학력고사 시대로 돌아가 수능 준비기관이 된다. 학교 교육이 망가지면 학교 교육을 통해 인재를 기를 수 없고 사교육비는 증가한다. 따라서 내신 변별력 저하는 반드시 수능 변별력 저하로 이어져야 한다. 대학별고사를 우려하지만, 풍선효과는 매우 제한적이다. 달라진 내신 평가는 대학입시에도 큰 변화를 초래한다.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6월 모의평가가 실시된 1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여고에서 학생들이 교실에서 시험 시작시간을 기다리며 문제집을 풀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6월 모의평가가 실시된 1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여고에서 학생들이 교실에서 시험 시작시간을 기다리며 문제집을 풀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정시 확대, 사교육특구만 이익 

상위권 대학은 교과의 변별력과 타당성이 떨어져서 교과 전형을 시행할 수 없다. 여기에 수능 최저학력기준까지 설정하면 교과 전형이 아니라 사실상 기형적인 수능 전형이 된다. 학생부 항목이 대폭 축소된 학생부 종합전형에서는 면접과 논술이 강화된다. 그렇게 되면 수시모집은 학생부 중심이 아니라 수능과 대학별고사 중심으로 파행한다. 정시가 확대되면 사교육 특구와 N수생만 이익을 보고, 특히 고 3학생과 지방 학생들은 큰 피해를 본다. 이런 결과는 공정한가.

따라서 수시모집을 폐지하고 새로운 정시모집 전형을 설계하는 결정만이 복잡하게 뒤엉킨 대학입시를 개편하고 학교 교육으로 미래의 인재를 기를 수 있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이다. 우리는 여기서 전면적인 대입 개혁 논의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 교육부가 준비한 기존의 2028학년도 대입 개편안도 원점에서 다시 설계해야 한다. 시간도 부족하지 않다. 다른 이슈로 접근하면 여러 이슈가 꼬여서 일관된 방식의 대입 개편은 이루어지지 못한다. 수시모집을 폐지하려면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하다.

수시 폐지, 수능 영역 축소, 대학 자율권 필요 

대학입시를 고등학교 교육과정이 마무리된 이후에 시작한다는 수시 폐지의 가장 중요한 명분은 학교 교육과정 존중이다. 그래서 수시모집 폐지와 새로운 정시모집 설계는 우리 사회의 대학입시 변천사에서 처음 시도되는 학교 교육 중심의 대학입시라는 패러다임 전환을 의미한다. 새로운 정시모집 전형 요소는 ▶학생부 ▶내신 ▶수능 ▶면접이다. 완전한 자율권을 가진 대학은 전형 요소를 선택적으로 조합하여 자신만의 전형을 만들 수 있다. 학생을 모집하기 어려운 대학을 위해 교과나 면접전형의 등록 기간을 먼저 설정하거나, 지원 기회를 1회로 한정하고 반드시 등록하는 방식(Early Decision)을 도입할 수도 있다. 11월 말에 시작하는 새로운 정시모집은 대학 입장에서도 전형을 진행할 시간이 부족하지 않다. 수능으로 모든 학생을 줄 세우지 않아도 된다. 새로운 정시모집을 설계하기 위해서는 내신과 수능 체제, 지원 횟수, 모집군, 등록 기간, 추가모집 등 결정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 그래서 대학입시를 전담하여 연구하고 개선하며 운영할 국가기구가 필요하다. 이 결정도 대통령만 할 수 있다.

김경범 서울대 서어서문학과 교수

※킬러 문항 논란과 관련한 안선회 중부대 교수의 다른 시각을 중앙일보 〈소리내다〉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