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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엘리엇 배상안’ 취소 소송 고심…전문가 “다퉈볼 여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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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한국 정부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에 배상금과 이자·법률비용 등 약 1300억원을 지급해야 한다’는 지난 20일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결정에 대한 취소 소송을 낼지를 놓고 주무 부처인 법무부가 고심 중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26일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론스타 국제투자 분쟁 사건 당시 판정문 정정을 끌어냈던 법무법인 피터앤킴과 미국 로펌 아놀드&포터도 법무부 자문단에 합류해 소송의 실익 등을 검토하고 있다.

엘리엇 사건을 두고 법무부가 고심하는 건 론스타 사건 때와 온도 차가 있어서다. 세계은행 국제투자 분쟁 해결센터(ICSID) 중재재판부는 지난해 8월 “외환은행을 하나금융에 매각할 때 한국 정부가 승인을 지연해 손해를 입었다”는 론스타 주장을 일부 인용해, 우리 정부에 약 2930억원을 배상하라고 판정했다. 당시는 법무부가 즉각 “판정 결과를 수용하기 어렵다. 취소 및 집행 정지 신청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우선 취소 신청 기한이 120일 이내였던 론스타 사건 때와 달리, 엘리엇 사건은 28일 이내로 촉박하다. 또 정부가 사전에 엘리엇과 합의한 대로 취소 소송 시 영국 고등법원의 판단을 받아야 하는데, 영국 법원이 PCA 결정에 대개 우호적이라는 점도 부담이다. 대우일렉트로닉스 인수합병을 놓고 이란 다야니 가문과 벌인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에서 정부는 “패소 판정을 취소해달라”고 영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지만, 2019년 12월 패소했다.

중재판정부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국민연금의 역할에 대해 엘리엇 주장을 인용한 점도 걸림돌이다. 엘리엇은 ▶국민연금이 사실상 정부 기관이고 ▶한국 정부가 국민연금에 압력을 행사했으며 ▶따라서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대해 한·미 FTA 상 최소 기준 대우 의무를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 의견은 기금운영본부 의결을 거친 개별 판단”이라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엘리엇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 및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영본부장의 유죄 판결과 사건 기록을 증거로 제시했다.

오현석 계명대 경제통상학부 교수는 “취소 소송은 인용률이 높지 않지만 그나마 인정되는 경우는 중재판정부가 명백하게 준거법을 잘못 적용하거나 관할권을 오인한 경우”라며 “국민연금에 대한 압력 행사 부분보다는 국민연금이 사실상 정부 기관인지 여부는 다퉈볼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취소 신청 시 부담해야 할 이자(이자율 5%)와 소송 비용을 고려할 때 실익이 작다는 의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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