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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이 장 담근다?…분·초 단위 쪼개 메주 쑤는 법 배우는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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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곤 세븐트레져스 대표. 사진 애플

김동곤 세븐트레져스 대표. 사진 애플

“그동안 만들어왔던 대로 만들면 문제 없을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뒤집혔죠. 이제는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 ‘이런 것도 있구나’ 하고 열린 마음으로 듣게 됐어요.”

아이폰, 아이패드, 애플워치를 만들어낸 애플의 첨단 공정 노하우가 메주를 만났다. 메주와 장류 등 발효식품을 만드는 가업을 잇는 중소기업 대표와 애플의 제조기술이 손을 맞잡으면서 전에 없던 ‘스마트 메주 공정’이 탄생했다. 애플 제조업 R&D 지원센터의 스마트 데이터 랩 과정을 이수한 김동곤 세븐트레져스 대표는 25일 “온도와 습도, 발효 산소와 이산화탄소 농도도 모두 하나의 데이터라는 것을 이번 기회에 배우게 됐다”고 말했다.

경북 포항에 위치한 애플 제조업 R&D 지원센터는 중소기업 지원을 위한 상생방안의 일환으로 지난해 포항공대(포스텍) 캠퍼스 내에 설립됐다. 애플은 중소기업과 자사 엔지니어·장비를 연결해 기술과 공정, 제품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기회를 무상으로 제공한다. 꼭 애플의 협력업체가 아니어도 지원과 상담을 요청할 수 있다.

애플 제조업 R&D 지원센터는 애플이 세계 최초로 한국에 설립한 제조업 특화 R&D 지원센터로 스마트 공정 관련 장비를 구축, 중소 제조기업들을 대상으로 교육과 계측 장비 대여, 일대일 컨설팅 등을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다. 경상북도 포항에 위치한 애플 제조업 R&D 지원센터 내부 모습. 애플

애플 제조업 R&D 지원센터는 애플이 세계 최초로 한국에 설립한 제조업 특화 R&D 지원센터로 스마트 공정 관련 장비를 구축, 중소 제조기업들을 대상으로 교육과 계측 장비 대여, 일대일 컨설팅 등을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다. 경상북도 포항에 위치한 애플 제조업 R&D 지원센터 내부 모습. 애플

애플이 특정 국가의 중소기업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건 한국이 전 세계 최초이자 유일하다. 애플의 글로벌 공급망 중 상당부분을 한국 업체들이 차지하고 있는 만큼 애플 본사 차원에서도 한국 제조업 생태계에 대한 관심이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움을 청하는 기업이 하나둘씩 늘어나면서 재미있는 사례도 생겨났다. 식품기업이 기술 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한국의 전통 발효식품 제조 방법과 애플의 첨단 데이터 기술이 만난 것이다.

이번 프로그램에 참여한 애플의 엔지니어들은 고민 끝에 제품 생산 과정에서 불필요한 과정을 모두 걸러내 효율성을 높이는 ‘린(Lean) 공정’과 무선 송신 기술 ‘로라(LoRa) 통신’을 활용해 온·습도, 광도, 산소·이산화탄소 농도를 실시간 측정하는 기술을 발효식품 제조 공정에 새로 도입했다.

특히 메주가 만들어지는 방법을 처음부터 끝까지 촬영한 뒤 각각의 공정에 소요되는 평균시간을 측정하고, 이를 분·초 단위로 쪼개 필요 없는 동작이나 과정을 모두 걷어냈다. 공정 효율화를 위해 애플 측은 실제 메주가 만들어지는 계절인 겨울에 2차례 현장을 방문하기까지 했다. 김 대표는 “수십 년 동안 메주를 만들면서 공정 분석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한 것 자체가 처음이었다"며 “앞으로 우리 전통 장류를 만드는 방법을 데이터베이스화해야겠다는 목표가 생겼다”고 말했다.

소방점검업체도 보다 스마트해지고 있다. 화재 검사 서비스를 통해 화재·재난 사고를 예방하는 업체인 금강방재도 애플의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방재용 소프트웨어 기반 구축을 시작했다.

정진이 금강방재 대표. 애플

정진이 금강방재 대표. 애플

현재 대부분의 소방점검 업체들은 건물 주소와 관리자 인적사항, 불량체크 등을 수기로 관리하고 있다. 방재 업무를 감독하는 소방당국조차 대부분의 관련 데이터를 일일이 서면으로 관리하다보니 현장에서 오차가 빈번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의 고민이다.

이에 정진이 금강방재 대표는 애플 엔지니어들과 함께 방재 데이터를 관리하는 소방 관련 앱 개발을 추진 중이다. 정 대표가 설계한 모델에 적용된 코드를 애플의 전문가들이 함께 점검하고 기술적으로 부족한 부분에 대한 도움을 받는 식이다.

정 대표는 “대부분 현업 출신 엔지니어들이라 중소기업에 적용되는 조언들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됐다”면서 “앞으로 수십 년의 데이터를 모아 화재 예방에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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