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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마리 저어새 물고기 먹는 모습에 충격…갯벌 지킴이 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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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온 황윤 감독이 새만금의 마지막 남은 갯벌 '수라'를 7년간 기록한 영화 '수라'가 개봉 당일 1만 관객을 돌파했다. 미처 몰랐던 갯벌의 아름다움을 일깨우는 화면과 함께 끝나지 않는 새만금 갯벌 개벌의 이유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사진 스튜디오 두마

생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온 황윤 감독이 새만금의 마지막 남은 갯벌 '수라'를 7년간 기록한 영화 '수라'가 개봉 당일 1만 관객을 돌파했다. 미처 몰랐던 갯벌의 아름다움을 일깨우는 화면과 함께 끝나지 않는 새만금 갯벌 개벌의 이유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사진 스튜디오 두마

“군산에 무슨 갯벌이요?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다 없어지지 않았나요?”
2014년 전북 군산에 이사 간 황윤 감독은 한 목수에게 이끌려 간 갯벌에서 멸종위기 1급인 저어새 150여마리가 무리 지어 물고기를 먹는 모습을 봤다. 새만금 간척사업은 1991년 시작돼 전북 군산부터 부안·변산까지 33.9㎞ 방조제를 세워 바다를 막고 갯벌을 매립해 간척지로 바꾼 사업이다.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2006년 바다를 막았고, 군산~김제~부안에 이르는 지구 최대 규모의 갯벌이 파괴됐다. 그런 가운데 기적처럼 살아남은 마지막 갯벌이 군산의 수라 갯벌이었다. 수라 갯벌을 보고 황 감독은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고 했다. 갯벌과 쇠제비갈매기, 저어새, 흰발농게 같은 수많은 법정 보호종이 사라졌다고 포기하고 살아온 세월이 야속했다. 그래서 다시 카메라를 멨다. 21일 개봉 하루 만에 독립영화론 고무적인 1만 관객을 동원한 다큐멘터리 ‘수라’의 시작이었다.
그는 2006년에도 마지막일지 모를 갯벌을 기록하려 새만금 간척지역 어민들과 투쟁하듯 카메라를 들었다. 하지만 간척사업을 하던 농어촌 공사가 예고 없이 방조제 수문을 열면서 갯벌에 있던 어민이 익사하자, 충격과 절망 속에 갯벌을 떠났었다.

21일 개봉 다큐멘터리 '수라' 감독 #새만금간척지 마지막 갯벌 담아 #멸종위기 1급 저어새 등 공존 #갯벌 생태계가 하나의 우주

"아름다움을 본 죄, 갯벌 지킴이 돼"

다큐멘터리 '수라'는 황윤 감독이 새만금의 마지막 갯벌 ‘수라’의 시간과 사람, 생명을 7년 동안 기록하여, 우리가 미처 몰랐던 갯벌의 아름다움을 담아낸 작품이다. 사진은 한겨울 눈을 맞으며 촬영중인 황윤 감독의 모습이다. 사진 스튜디오 두마

다큐멘터리 '수라'는 황윤 감독이 새만금의 마지막 갯벌 ‘수라’의 시간과 사람, 생명을 7년 동안 기록하여, 우리가 미처 몰랐던 갯벌의 아름다움을 담아낸 작품이다. 사진은 한겨울 눈을 맞으며 촬영중인 황윤 감독의 모습이다. 사진 스튜디오 두마

27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황윤 감독은 “과거의 저는 죽음의 현장에서 쉽게 물러섰다. 많은 새들과 조개의 처참한 떼죽음이 트라우마였기에 물러설 수 밖에 없었다”면서 “그런데 동필 씨는 달랐다”고 했다.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오동필 단장, 황 감독을 살아남은 갯벌로 이끈 사람이다. 평소 아파트‧인테리어 공사일을 하지만, 2003년 정부의 밀어붙이기식 간척 사업에 저항해 생태조사단을 결성한 뒤 20년 간 매월 첫째 월요일 시민들과 군산 갯벌에 모여 수많은 갯벌의 생명을 조사, 영상과 인터뷰로 기록해왔다.
“동필씨는 머리 위로 수만 마리의 도요새가 날아오른 순간, 경이로운 생명에 압도 당하는 경험을 했기에 (갯벌의 생명들을) 포기할 수 없다더라”고 전한 황 감독은 “아름다움을 본 죄, 그것이 무엇이기에 여기까지 왔을까”라는 오 단장의 입버릇 같은 말을 가만히 되뇌었다. 그가 갯벌의 경이로움으로 '수라'를 가득 채운 이유다.
“(간척 사업이 진행중인) 갯벌에는 여전히 파괴의 현장이 있지만, 기적처럼 생을 이어가는 생명의 엄청난 대립이 공존하고 있다는 걸 최대한 아름답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군산 갯벌이 황무지? 멸종위기 1급 저어새 산다

“쇠제비갈매기가 새끼를 품는 모습 등은 고배율 망원렌즈를 통해 오랫동안 힘들게 찍었어요. 새끼 손톱보다 작은 염랑게가 모래 구슬로 만드는 기하학적 패턴, 서해비단고둥이 뱅글뱅글 움직이는 곡선 무늬 등을 찍기 위해 접사렌즈‧타임랩스도 많이 썼죠.”
갯벌을 드론으로 찍은 건 하늘 위 도요새 시점으로 바라보고 싶어서다. 겨울의 갯벌은 지난해 부산 국제영화제에서 영화를 처음 공개한 후 추가 촬영했다. “마지막 갯벌이 지켜질 수 있도록 그 아름다움을 많이 찍어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황 감독은 말했다.
말라붙은 갯벌에서 바닷물이 돌아오길 10년 째 기다리는 흰발논게, 공사 차량이 오가는 갯벌에서 갓 부화한 새끼를 돌보는 어미새들의 모습은 같은 세월 갯벌을 드나든 부모를 따라다니며 부쩍 자란 아이들의 모습과도 연결된다. 아버지 오 단장을 따라 탐조 여행을 다닌 승준 군은 생물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이 됐다.
‘수라’에 담긴 짙푸른 하늘과 분홍빛 해의 새벽 풍경은 황 감독이 새소리를 녹음하려는 그를 따라 갯벌에 갔다가 담아낸 장면이다. 도요새가 여린 배를 뒤집은 채 모래톱에 죽어있는 모습 또한 포크레인이 쉬지 않는 간척지의 현재라고 그는 말했다.

"만성적자 군산공항, 신공항 혈세 낭비" 

다큐멘터리 '수라' 속 갯벌 생명들. 사진 스튜디오 두마

다큐멘터리 '수라' 속 갯벌 생명들. 사진 스튜디오 두마

 다큐멘터리 '수라' 속 갯벌 생명들.  사진 스튜디오 두마

다큐멘터리 '수라' 속 갯벌 생명들. 사진 스튜디오 두마

간신히 살아남은 갯벌은 군산 신공항 개발로 인해 또다시 위기에 처했다. 만성 적자에 시달리는 지역 공항을 왜 또 지어 혈세를 낭비하려 하는지 모르겠다고 황 감독은 말했다. “호남 민심을 잡기 위해 노태우 정부가 시작한 사업이 새만금 간척사업이죠. 애초의 농지 목적이 사라졌는데도 단군 이래 최대의 생태 파괴가 사업 목적을 바꿔가며 이어지고 있어요.”
그는 "지자체가 법정보호종 40여종이 사는 터전에 공항을 지으려고 한다"며 "1308명의 사람들이 정부를 상대로 지난해부터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큐멘터리 '수라' 속 갯벌 생명들.  사진 스튜디오 두마

다큐멘터리 '수라' 속 갯벌 생명들. 사진 스튜디오 두마

국민도 정착 못하게 만드는 나라, 철새들도 떠나게 해

황 감독은 2016년 총선 때 녹색당 비례대표로 출마한 바 있다. 그는 “한사코 거절하다 제 의지와 상관없이 출마했다. (정치 경험은) 한 번으로 충분하다”면서 “그때 정치인으로 직접 주장하고 외치는 것보다 영화를 통해 예술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게 제 몫이란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정 붙이고 좋은 친구, 같이 살고 싶은 이웃이 생기는 게 삶의 터전이죠. 공항 건설을 위해 시민이 살 권리를 빼앗겨야 한다는 게 억울하죠. 사람들을 한 곳에 정주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이 나라가 철새들도 떠나갈 수밖에 없게 만들 듯이요. 도요새들이 수라 갯벌에서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요. 그저 안타깝습니다.”

다큐멘터리 '수라' 속 바다 모습.  사진 스튜디오 두마

다큐멘터리 '수라' 속 바다 모습. 사진 스튜디오 두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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