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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바위 케이블카 빼고 대형 사찰 들어가고…그렇게 23번째 국립공원 됐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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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5호 19면

팔공산 국립공원 승격 막전막후

팔공산 갓바위 석조여래좌상은 한 가지 소원만 들어준다고 전해진다. 김홍준 기자

팔공산 갓바위 석조여래좌상은 한 가지 소원만 들어준다고 전해진다. 김홍준 기자

백스텝이라고 불러야 할까. 74세 김모(경기도 시흥)씨는 계단을 만나면 연거푸 몸을 돌려 내려갔다. “무릎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여기’ 오느라고 시간이 안 나네”라고 노인이 말했다. 무릎 통증을 최소화하기 위한 백스텝이 능숙하고도 현란한 이유로 노인은 “매달 여길 오갔으니까”라고 답했다. 김씨는 경북 경산시 와촌면 방면으로 내려갔다. 자그마치 847계단(기자가 세기로는), 왕복 1694계단이다.

권모(72·서울 양천구)씨도 백스텝을 밟으며 김씨와는 다른 방향인 대구 동구 쪽으로 내려서고 있었다. 이쪽 방향은 계단이 무려 1365개(왕복 2730개)다.

지난 20일, 숨을 헐떡이며 수 백, 수 천의 계단을 오르내리는 수 백 명이 있었다. ‘여기’는 석조여래좌상이 있는 팔공산(1193m) 갓바위. 평소의 절반이라는 서른 명 남짓이 절을 올리고 있었다. 경북 울진에서 온 강연정(52)씨는 “국립공원이 된다니, 절할 공간도 없어지겠네”라며 걱정하기도 했다.

경북 경산시 와촌면 관음휴게소(주차장)에서 팔공산 갓바위로 올라가는 길은 계단의 연속이다. 지난 6월 20일 갓바위 약사여래불에게 치성을 드린 노인이 ″무릎이 아파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여기 오느라 미루고 있다″며 850여 개의 계단을 뒤로 돌며 내려서고 있다. 김홍준 기자

경북 경산시 와촌면 관음휴게소(주차장)에서 팔공산 갓바위로 올라가는 길은 계단의 연속이다. 지난 6월 20일 갓바위 약사여래불에게 치성을 드린 노인이 ″무릎이 아파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여기 오느라 미루고 있다″며 850여 개의 계단을 뒤로 돌며 내려서고 있다. 김홍준 기자

지난 6월 20일 경북 경산시 와촌면 팔공산 갓바위로 향하는 오르막에 팔공산 국립공원 승격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김홍준 기자

지난 6월 20일 경북 경산시 와촌면 팔공산 갓바위로 향하는 오르막에 팔공산 국립공원 승격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김홍준 기자

도립공원 팔공산이 국립공원으로 격을 높인다. 지난달 23일 환경부는 대구시와 경북도가 2021년 5월부터 공동으로 추진한 국립공원 지정안을 심의 의결했다. 1980년 5월 도립공원에 지정된 지 43년 만이요, 2013년 부결된 뒤 재수 끝에 10년 만에 합격한 것이다. 환경부는 올해 안에 국립공원 지정을 고시한다.

그러니까 2023년은 팔공산 도립공원 44년차이자 팔공산 국립공원 1년차 되는 해다. 중앙SUNDAY는 환경부의 ‘팔공산국립공원 지정 및 공원계획 결정안’을 입수했다. 팔공산은 어떻게 국립공원이 됐을까.

도립공원 때보다 면적 0.826㎢ 증가, 태백산은 52.7㎢ 늘어

팔공산 은해사 극락보전. 기존 도립공원 밖에 있던 은해사는 이번에 국립공원에 편입된다. 김홍준 기자

팔공산 은해사 극락보전. 기존 도립공원 밖에 있던 은해사는 이번에 국립공원에 편입된다. 김홍준 기자

팔공산에는 한해 358만 명이 찾는다. 육지 국립공원으로 치면 북한산(지난해 670만명), 지리산(370만명)에 이어 3위다. 팔공산의 시그니처는 관봉(冠峰·850m)의 갓바위다. 갓바위는 선덕여왕 7년(638년)에 원광법사의 수제자인 의현대사가 죽은 모친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세웠다고 한다. 석불의 지물(持物·불상의 손에 있는 물건)이 약호(藥壺·약그릇)인 것으로 보건대, 약사불로 짐작된다. 갓바위를 찾았을 때도 갓바위 대웅전에서는 ‘약사여래, 약사여래’를 반복하는 불경이 울리고 있었다.

작성 주체에 따라 38만~600만명으로 통계가 들쭉날쭉하지만, 관광지식정보시스템의 ‘주요관광지점별입장객’에 따르면 경산 와촌 방면에서 찾는 이만 연간 190만명이다. 접근로 수에 비해 계측기가 적어 통계가 부정확한 대구 동구 방면을 제외하더라도, 팔공산 한 해 방문객 중 최소 60%가 갓바위를 찾는 것이다.

김선경(39·대구 동구)씨처럼 “등산 반, 기도 반”으로 오르는 이들도 꽤 있다. 국립공원공단 자료에 따르면, 김씨처럼 신체적·정신적 건강 증진을 위해 팔공산을 방문한다는 이들이 57%(중복 응답)로 가장 많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갓바위는 선본사가 관리하고 있다. 선본사는 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의 말사다. 은해사(銀海寺)는 대찰(大刹·큰 절)이다. 신라 헌덕왕 1년(809)에 창건했다고 한다. 일주문을 거쳐 극락보전까지 걸어가려면 20분은 걸린다. 금강송 2160그루를 지나면 은빛 바다가 춤출듯하다.

경북 영천시 청통면에 있는 은해사(조계종 제10교구 본사)는 대구 동구의 동화사(조계종 제9교구 본사)와 함께 팔공산에 자리 잡은 큰 절이다. 은해사의 말사인 선본사가 갓바위 석조여래좌상을 관리하고 있기도 하다. 원래 팔공산 도립공원에 속하지 않았던 은해사는 국립공원에 편입되기를 희망했고, 지난 5월 승격 확정 때 국립공원에 편입된 드문 역사를 추가하게 됐다. 사진은 은해사 극락보전에서 기도를 하는 불자. 김홍준 기자

경북 영천시 청통면에 있는 은해사(조계종 제10교구 본사)는 대구 동구의 동화사(조계종 제9교구 본사)와 함께 팔공산에 자리 잡은 큰 절이다. 은해사의 말사인 선본사가 갓바위 석조여래좌상을 관리하고 있기도 하다. 원래 팔공산 도립공원에 속하지 않았던 은해사는 국립공원에 편입되기를 희망했고, 지난 5월 승격 확정 때 국립공원에 편입된 드문 역사를 추가하게 됐다. 사진은 은해사 극락보전에서 기도를 하는 불자. 김홍준 기자

한데, 국립공원 계획 결정안에서는 ‘은해사 요청에 따라 도립공원구역 외 사찰지(0.427㎢)를 국립공원으로 포함하고, 은해사 및 산내암자를 공원문화유산지구로 신규 지정 및 확대’한다고 적시돼 있다.

팔공산 국립공원 타당성 조사 용역을 수행한 조우 상지대 관광학부 교수는 “드문 경우”라고 밝혔다. 통상 사찰같은 사유지가 국립공원에 편입되면 재산권 행사가 어려워진다. 1967년 지리산을 처음으로 국립공원이 속속 지정되자, 사찰들이 불만을 드러낸 이유다. 이는 문화재관람료 징수(1962년)의 배경이기도 하다. 문화재관람료는 정부가 지원하도록 관련법이 개정되면서, 지난달부터 조계종 산하 등 전국 65개 사찰에 무료로 입장할 수 있게 됐다.

동화사는 갓바위와 함께 팔공산의 명소로 꼽힌다. [중앙 포토]

동화사는 갓바위와 함께 팔공산의 명소로 꼽힌다. [중앙 포토]

‘국립공원 팔공산’은 126.058㎢가 된다. 도립공원 때(125.232㎢)보다 0.826㎢ 넓어진다. 7년 전 22번째 국립공원이 된 태백산의 경우, 기존 도립공원 면적(17.4㎢)의 4배에 이르는 70.1㎢로 커졌다. 팔공산 사유지 비율은 67%에 이른다. 사찰 부지까지 합하면 71%다. 지난 3월 기준 국립공원 토지 면적(3973㎢) 중 사유지는 전체의 24.4%(970㎢)를 차지하고 종교용지 포함 시 31.4%(1250㎢)에 달한다. ‘팔공산 국립공원’의 사유지 비율은 전국 국립공원(해상 제외)의 두 배를 훨씬 웃도는 것이다.

조우 교수는 “주지 스님(덕조 스님)을 비롯한 은해사 관계자들이 국립공원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다”며 “국가가 은해사 주변을 관리하고, 은해사는 전통사찰과 관광자원을 국민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윈윈’이 작용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정인철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국시모) 사무국장은 결이 다른 분석을 했다. 그는 “통상 도립공원이 국립공원이 되면 태백산의 경우처럼 주변 생태지역을 흡수하면서 자연보존지구가 늘어나고 전체 면적도 대폭 커진다”며 “그런데 팔공산은 기존의 자연보존지구 일부를 재산권 행사가 훨씬 용이한 자연환경지구로 내리고, 문화유산지구(은해사 등 사찰 부지)를 늘리면서 전체 면적은 커지게 됐는데, 그게 고작 0.826㎢라는, 그야말로 드문 경우”라고 주장했다.

 팔공산 국립공원 승격안이 지난 5월 23일 국립공원위원회 심의를 통과해 대구·경북의 명산인 팔공산은 국내 23번째 국립공원으로 승격이 확정됐다. 사진은 이날 오후 경북 경산시 와촌면 갓바위 상공에서 바라본 팔공산 전경. [뉴스1]

팔공산 국립공원 승격안이 지난 5월 23일 국립공원위원회 심의를 통과해 대구·경북의 명산인 팔공산은 국내 23번째 국립공원으로 승격이 확정됐다. 사진은 이날 오후 경북 경산시 와촌면 갓바위 상공에서 바라본 팔공산 전경. [뉴스1]

실제 공권 계획 결정안을 보면, 자연보존지구는 5.54㎢ 해제한 대신 자연환경지구는 5.296㎢, 공원문화유산지구는 1.134㎢ 늘렸다. 이에 대해 조우 교수는 “땅 소유자들에게 (농업, 임업 등의) 1차 산업 활동을 허용해주는 등 (도립공원) 43년간 재산권 행사 제한에 대한 보상을 해줘야 마땅했다”며 “58회 설명회, 3차례 공청회를 거쳐 사유지 문제 등 국립공원 승격의 실마리를 풀 수 있었다”고 밝혔다.

특히 공원 접경지역의 사유지 중 풀린 곳이 많은데, 문제와 논란이 될만한 사안은 신속하게 해결하면서 국립공원 승격을 빨리 진행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주민 의견 456건 중 354건이 반영(77.6%)됐고, 지자체 의견 49건 중 45건 반영(91.8%)됐다.

 팔공산 국립공원 승격안이 지난 5월 23일 국립공원위원회 심의를 통과해 대구·경북의 명산인 팔공산은 국내 23번째 국립공원으로 승격이 확정됐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29일 오전 경북 경산시 하양읍 경산시립도서관 시청각실에서 열린 '팔공산국립공원 승격을 위한 주민설명회 및 공청회'에서 배연진 환경부 자연공원과장이 '국립공원의 이해와 가치'에 대한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뉴스1]

팔공산 국립공원 승격안이 지난 5월 23일 국립공원위원회 심의를 통과해 대구·경북의 명산인 팔공산은 국내 23번째 국립공원으로 승격이 확정됐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29일 오전 경북 경산시 하양읍 경산시립도서관 시청각실에서 열린 '팔공산국립공원 승격을 위한 주민설명회 및 공청회'에서 배연진 환경부 자연공원과장이 '국립공원의 이해와 가치'에 대한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뉴스1]

갓바위·동화사에 탐방객 몰려…시그니처이자 아킬레스건

사유지 문제와 함께 큰 논란은 ‘갓바위케이블카’였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지난 1월 동화사 회주 의현스님을 예방한 자리에서 케이블카 설치를 철회한다고 밝혔다. 지난 지방선거 때 홍 시장의 핵심 공약이었지만 불교계의 반발이 큰데다, 환경부의 심의도 통과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미 동화사 근처에 팔공산케이블카가 운행 중인 것도 부담이 됐다고 한다.

“동화사, 동화사 하길래 찾와 왔더니 절이 으리으리하고 음식점도 많네요.”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20대 세 명이 동화사 근처의 식당에서 나왔다. 팔공산에는 세 권역이 있다. 서쪽의 파계사 권역, 동쪽의 은해사 권역, 그리고 그 가운데 동화사 권역이다. 동화사는 조계종 제9교구 본사다. 은해사가 제10교구 본사이니, 산 하나에 교구 본사가 두 곳이나 된다. 그만큼 팔공산은 불교의 성지다. 동시에 대구·경북(TK)의 상징이라는 평가도 있다. 정치인이 동화사를 자주 찾아서가 아니다. 국립공원공단 자료는  팔공산 방문객의 83%가 대구·경북 지역 주민이라고 밝히고 있다.

경북 영천시 청통면에 있는 은해사(조계종 제10교구 본사)는 대구 동구의 동화사(조계종 제9교구 본사)와 함께 팔공산에 자리 잡은 큰 절이다. 은해사의 말사인 선본사가 갓바위 석조여래좌상을 관리하고 있기도 하다. 원래 팔공산 도립공원에 속하지 않았던 은해사는 국립공원에 편입되기를 희망했고, 지난 5월 승격 확정 때 국립공원에 편입된 드문 역사를 추가하게 됐다. 사진은 은해사 극락보전에서 기도를 하는 불자. 김홍준 기자

경북 영천시 청통면에 있는 은해사(조계종 제10교구 본사)는 대구 동구의 동화사(조계종 제9교구 본사)와 함께 팔공산에 자리 잡은 큰 절이다. 은해사의 말사인 선본사가 갓바위 석조여래좌상을 관리하고 있기도 하다. 원래 팔공산 도립공원에 속하지 않았던 은해사는 국립공원에 편입되기를 희망했고, 지난 5월 승격 확정 때 국립공원에 편입된 드문 역사를 추가하게 됐다. 사진은 은해사 극락보전에서 기도를 하는 불자. 김홍준 기자

이훈 한양대 국제관광대학원장은 “그 지역만의 국립공원이 안 되도록 차별화가 필요한데, 보존과 이용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이 필요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갓바위와 동화사에 대부분의 탐방객이 몰리는 건, 시그니처이자 아킬레스건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탐방객이 더 많은 갓바위에는 머무르는 사람이 적어 관광자원화가 절실하다는 지적이 계속 제기됐다.

팔공산은 문화재 관람료를 받지 않으면서 지난달 탐방객이 1년 전에 비해 2.7배나 늘었다. 정부는 이번 국립공원 승격으로 팔공산의 경제적 가치가 2754억원에서 5233억원으로 2배 가까이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앞서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무등산·태백산 사례를 비춰 보면 탐방객은 28% 증가한다는 것이다. 동화사 근처의 한 상인은 “기대된다”며 들뜬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경북 영천시 청통면에 있는 은해사(조계종 제10교구 본사)는 대구 동구의 동화사(조계종 제9교구 본사)와 함께 팔공산에 자리 잡은 큰 절이다. 은해사의 말사인 선본사가 갓바위 석조여래좌상을 관리하고 있기도 하다. 원래 팔공산 도립공원에 속하지 않았던 은해사는 국립공원에 편입되기를 희망했고, 지난 5월 승격 확정 때 국립공원에 편입된 드문 역사를 추가하게 됐다. 사진은 지난 6월 20일 은해사 일주문을 지나 극락보전으로 향하는 탐방객들. 김홍준 기자

경북 영천시 청통면에 있는 은해사(조계종 제10교구 본사)는 대구 동구의 동화사(조계종 제9교구 본사)와 함께 팔공산에 자리 잡은 큰 절이다. 은해사의 말사인 선본사가 갓바위 석조여래좌상을 관리하고 있기도 하다. 원래 팔공산 도립공원에 속하지 않았던 은해사는 국립공원에 편입되기를 희망했고, 지난 5월 승격 확정 때 국립공원에 편입된 드문 역사를 추가하게 됐다. 사진은 지난 6월 20일 은해사 일주문을 지나 극락보전으로 향하는 탐방객들. 김홍준 기자

하지만 조우 교수는 “국립공원이 됐다는 이벤트 효과로 20% 정도 탐방객이 늘 것”이라면서도 “2년 뒤에는 원래 탐방객 수로 되돌아 올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동화사에서 염불암까지 가는 짧은 산길, 충만한 햇살을 받은 돌탑이 눈부시다. 어쨌든 팔공산 국립공원은 공든 탑이 됐다. 갓바위 여래좌불을 찾은 김노인의 말이 떠오른다. “기도도 기도지만, 어쨋든 여기까지 온 것 자체가 정성”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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