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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도 전투기 엔진 공동 생산…바이든, 모디에게 ‘선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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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5호 07면

모디 인도 총리 광폭 외교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지난 2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국빈 만찬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건배를 제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지난 2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국빈 만찬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건배를 제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최근 미국과 중국·러시아를 넘나드는 ‘광폭 외교’를 통해 글로벌 외교 무대에서의 존재감을 한껏 끌어올리고 있다. 지난 21일(이하 현지시간) 미국을 국빈 방문한 모디 총리는 지난 22일 백악관에서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양국 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 돈독함을 국제사회에 과시했다. 바이든 행정부에서 외국 정상을 국빈 초청한 건 에마뉘엘 프랑스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에 이어 모디 총리가 세 번째다. 그만큼 미국이 인도를 비중 있게 챙기고 있다는 증표다.

이날 정상회담과 양국 정상의 공동 기자회견도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바이든 대통령이 “인도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파트너 중 하나로, 양국 관계는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고 긴밀하며 역동적”이라고 평가하자 모디 총리도 “양국이 글로벌 차원의 포괄적 전략 파트너십에서 새로운 협력의 장을 열었다”고 화답했다. 모디 총리는 더 나아가 “양국은 신뢰할 수 있고 안전하며 회복력 있는 글로벌 공급망과 가치망을 구축하기로 했다”며 미국이 주도하는 중국 압박 노선에 인도가 더욱 적극적으로 동참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모디 총리의 분명한 입장 표명에 바이든 대통령도 두둑한 선물 보따리를 안겼다. 당장 인도가 그토록 바라던 전투기 엔진 공동 생산과 관련 기술 이전에 합의했다. 이에 따라 오랫동안 옛 소련과 러시아로부터 무기를 구매해온 인도는 이번 방미를 계기로 국방력과 방위산업을 획기적으로 강화할 수 있게 됐다. 인도는 현재 미그-29 61대, 미그-21 150대, Su-30 263대 등 옛 소련 기종이 공군 주력기다. 반면 숙적인 파키스탄은 미국으로부터 받은 76대의 F-16 전투기를 보유하고 있고 최근엔 중국과의 방위 협력도 강화하고 나서 인도 입장에선 바짝 경계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모디 총리는 이에 더해 첨단 드론인 MQ-9B 시가디언도 구매하기로 했다. 현재 국경 분쟁 중인 중국에 대한 대응 능력을 한층 강화할 수 있는 무기 체계다. 미국은 인도와의 우주 협력도 강화해 유인 달 탐사 프로젝트인 ‘아르테미스’에 인도를 참여시키고 2024년까지 국제우주정거장(ISS)에 인도 우주인을 보내기로 했다. 미 해군도 함정 수리를 인도 조선소에 맡기기로 했다.

두 정상이 이날 첨단기술 분야 협력 강화에 합의한 것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양자컴퓨터와 인공지능(AI), 반도체, 오픈랜 통신망 등 핵심 기술뿐 아니라 주요 광물과 원자력에너지 협력도 확대하기로 한 게 대표적이다. 특히 반도체와 관련해 마이크론은 인도의 반도체 제조 시설에 8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고 미국의 반도체 장비 업체인 램리서치도 인도 엔지니어 6만 명을 교육하기로 했다. 이에 인도 기업들도 태양광·철강·광섬유 산업 분야에서 미국에 2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분위기를 반영하듯 모디 총리는 미 상하원 합동 의회 연설과 국빈 만찬 등에서 큰 환대를 받았다.

모디 총리는 구자라트주지사 시절이던 2005년 소수 이슬람 신자에 대한 급진적 힌두교도들의 폭동에 충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조지 W 부시 행정부로부터 미국 비자가 거부된 전력이 있다. 그런데 인권 문제로 미국 입국이 거절됐던 그가 18년 만에 ‘국빈’ 자격으로 백악관을 찾게 된 셈이다. 미국 입장에선 중국을 정치·경제적으로 견제하려면 인도·태평양 지역의 대국이자 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해온 인도와의 결속을 강화하는 게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판단한 것이다.

모디는 우파 힌두민족주의 정당인 인도국민당(BJP) 소속이지만 외교에선 좌우를 가리지 않는 행보를 지속해 왔다. 지난 1월엔 125개 개발도상국과 신흥국 정상들을 초청해 ‘글로벌 사우스 화상 정상회의’를 열며 존재감을 과시하기도 했다. 모디 총리는 이 자리에서 “에너지·식량 가격 급등과 기후변화 등 지구촌 현안 대부분은 글로벌 사우스 탓이 아니다”며 서방 선진국에 직격탄을 날려 큰 호응을 얻었다.

이에 대해 외교가에서는 인도가 올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의장국을 맡은 걸 계기로 글로벌 사우스의 맹주를 자처하고 나선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모디 총리는 코로나19 대유행 당시 100여 개국에 자국산 의약품과 백신을 공급하는 등 인도적 지원을 통해 인도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국제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데 앞장서기도 했다. 모디 총리는 이 같은 광폭 외교 성과를 앞세워 내년 4~5월로 예상되는 차기 총선 승리와 총리 3연임도 노리고 있다. 지난달 26일 총리 취임 9주년을 맞은 모디 총리는 내년 총선에서 승리할 경우 15년 집권이 가능해진다.

모디 총리는 지난달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도 초청국 정상 자격으로 참석했다. 그렇다고 마냥 친미·친서방 노선에 기운 것도 아니었다. 중국·러시아·브라질·남아프리카공화국 등과 브릭스(BRICS)를 결성해 활발히 활동하고 있고 중국·러시아가 주도하는 유라시아 국가 모임인 상하이협력기구(SCO)에도 정회원국으로 가입한 상태다. 그러면서도 안보 분야에선 미국·일본·호주 등의 아·태 안보 협의체인 쿼드(Quad)에 참여하며 중국과 대립각을 세워 왔다.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진영, 선진국과 개도국·신흥국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모양새다.

인도가 우크라이나 전쟁 와중에도 러시아와의 경제 교류를 지속하고 있는 것도 미국이 인도 끌어안기에 적극 나서는 주요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실제로 인도는 지난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서방이 주도하는 러시아 경제 제재에서 빠진 것은 물론 러시아산 원유와 석탄·비료 수입을 오히려 늘려 모스크바의 ‘전쟁 자금줄’ 역할을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지난해 유엔 긴급 특별총회에서 다섯 차례 통과된 대러시아 결의안에도 인도는 세 차례만 찬성하고 인권 문제나 보상 책임 등을 다룬 두 차례 결의안엔 기권했다.

하지만 모디 총리는 그런 가운데서도 ‘친러 지도자’로 불리는 건 극도로 경계해 왔다. 지난해 9월 열린 SCO 정상회의에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지금은 대화할 때지 전쟁할 때가 아니다”며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국제사회에선 모디 총리가 이 같은 외교적 입지를 바탕으로 향후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협상의 중재자로 나설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이날 바이든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우리는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되찾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든 완전히 기여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힌 것도 이런 맥락이란 분석이다.

채인택 전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tzschaei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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