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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정개특위 13억 쓰고 '헛바퀴'...'답 없는 국회특위' 무용론 [존재감 없는 특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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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설계상의 오류 아니냐.”(국민의힘 박정하 의원)

지난 20일 열린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은 특위가 의뢰해 실시한 선거제 개편 공론조사가 편향적이라고 주장했다. 시민참여단(469명)을 대상으로 한 공론조사 결과 ‘비례대표를 확대해야 한다’는 70%, ‘의원정수를 줄여야 한다’는 37%로 나왔는데 “경도된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을 가능성이 있을 것 같다”(김상훈 의원)는 것이다. 국민의힘이 당론으로 추진 중인 의원 정수 30명 축소와 다른 방향의 결과가 나오자 시비가 걸렸다.

그러자 공론조사 발표자인 박원호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는 “적어도 연구를 진행했던 분들이 바이어스(편향성)가 있어서 한쪽으로 몰고 갔다고 평가하는 것에는 반대한다”고 반박했다. 특위 위원장인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앞서 여야 간사 협의를 통해 공론 조사 일정이나 발제 선정 관련 사안을 워킹그룹에 위임했다”며 “그 과정에서 어떤 치우침은 없었던 것으로 보고받았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이날 회의는 여야가 평행선을 그리다 끝이 났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이미 선거구 획정 시한을 넘긴 것은 물론, 위성정당 창당 방지 등 산적한 일이 많지만, 논의는 공전을 거듭할 뿐이었다. 국회 관계자는 “국회 때마다 정개특위의 선거제 지각·졸속 처리가 문제 됐다”며 “이번에도 상황은 다르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처럼 국회 특별위원회가 임무를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하면서 일각에선 ‘국회 특위 무용론’까지 제기된다. ‘특히 필요하다고 인정한 안건을 효율적으로 심사하기 위하여 본회의 의결’(국회법 44조)로 특위를 구성하곤 있지만, “특별히 꾸려서 추가 예산까지 지원해야 할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예컨대 정개특위가 의뢰해 실시된 공론조사에 투입된 예산만 11억원이다. 중앙일보가 국회 사무처로부터 받은 ‘21대 국회 비상설 특위 예산 배분 현황’(6월 1일 기준)에 따르면 정개특위는 이 비용을 포함해 총 12억2339만원을 배정받았다. 지난해 12월 외유성 논란을 일으킨 아일랜드ㆍ프랑스ㆍ독일 출장비는 특위용 예산이 아닌 국회 사무처 국제국 의원외교활동 사업 명목으로 별도로 받았다. 이 비용은 1억3630만원이다. 즉 2021년 11월 출범 후 19개월 동안 정개특위가 공전하며 배정받은 세금은 13억5969만원이다.

정개특위만의 문제가 아니다. 21대 국회에서 구성된 비상설 특위는 총 22개다. 이중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를 위해 일시 구성되는 인사청문특위 10개를 제한 12개 특위가 현안 대응을 위해 꾸려졌다. 정개특위를 비롯해 ▶국회 상임위 위원 정수에 관한 규칙 개정(활동 종료) ▶윤리 ▶언론·미디어 제도개선(활동 종료) ▶국회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지원 ▶형사사법체계개혁(활동 종료) ▶민생경제안정(활동 종료) ▶연금개혁 ▶용산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국정조사(활동 종료) ▶인구위기 ▶기후위기 ▶첨단전략산업 특위 등이다.

지난해 5월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언론ㆍ미디어제도개선 특별위원회 회의에서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교수가 자문위원회 중간보고를 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지난해 5월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언론ㆍ미디어제도개선 특별위원회 회의에서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교수가 자문위원회 중간보고를 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2021년 9월 설치된 언론·미디어 제도개선특위는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 배상을 골자로 하는 언론중재법 논의를 한다고 했지만, 지난해 5월까지 8개월 동안 11번 회의를 열고 아무 결론 없이 활동을 끝냈다. 이 기간 특위가 배정받은 세금이 4500만원이다. 지난해 7월 대중교통비 환급 등 법안을 처리하자며 설치된 민생경제안정특위도 석달간 5번 회의 열고 빈손으로 종료했다.

현재 운영 중인 특위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윤석열 정부의 3대 개혁 과제 중 하나인 연금 개혁을 다루겠다며 지난해 7월 출범한 연금개혁특위는 지난 3월 발표한 자문위 보고서가 연금개혁의 핵심인 보험료율ㆍ소득대체율 등에 대한 구체적인 숫자가 빠지고 “추가 논의한다”는 내용만 담겨 맹탕 논란이 있었다. 현재 연금특위에 투여된 예산은 2820만원이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지난해 11월 출범한 이태원참사국조특위(9438만원 배정)는 별다른 내용 없이 지난 1월 끝났다. 국조특위 출범을 추진한 민주당은 현재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밀어붙이고 있다. 1년간의 활동 끝에 지난 5월 빈손으로 사개특위가 종료했을 땐 위원장인 정성호 민주당 의원이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나고 말았다. 부끄럽고 참담하다”고 사과 기자회견까지 하는 일도 있었다.

지난해 12월 동시 발족한 인구위기ㆍ기후위기ㆍ첨단전략산업 특위는 반 년간 회의 횟수가 각각 3회에 불과했다. 그나마 인구위기특위는 예산을 받지 않았지만, 기후위기특위는 778만원, 첨단전략산업특위는 1100만원을 받아갔다. 이밖에 해외 출장 일정이 많은 박람회유치지원 특위(지난 1월 출범)가 4억1989만원을 썼다.

위원회 차원이 아닌 위원장 개인이 받는 별도의 활동비도 있다. 정치권에선 “위원장이 받는 쌈짓돈” 개념으로 보는 돈이다. 과거엔 집행 내역을 알기 힘든 특수활동비까지 나눠줬는데, 지금은 월 300만원 범위에서 실비를 청구해 집행한다. 집행 금액이 가장 많은 곳은 순서대로 ▶정개특위(3613만원) ▶박람회유치지원특위(3003만원) ▶언론ㆍ미디어 제도개선특위(2052만원) ▶연금개혁특위(1867만원) ▶민생경제안정특위(958만원) 순이다.

이런 '성과없는 국회 특위'에 대해선 여러 진단이 나온다. 대체로 특위에 입법권을 주지 않다 보니 특위는 상임위보다 후순위가 되곤 한다. 정개특위처럼 예외적으로 입법권을 부여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안건은 여야가 합의해서 올려야 하기에 한쪽이 제동 걸면 회의조차 열 수 없다.

일각에선 “특위 제도를 정비하지 않는 한 없애는 게 맞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국민의힘 중진 의원은 “과거에 특위는 사실상 중진 의원들 자리 나눠주기 용으로 만들어진 경우가 많았다”며 “하나 마나 한 특위를 만들기보단 관련된 상임위에서 공청회를 자주 여는 등의 방식으로 현안에 대응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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