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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비판 기사 검색만 해도 간첩?…"中여행 유의하라" 무슨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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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중국이 다음달 1일부터 대폭 강화된 '반(反)간첩법'을 본격적으로 시행하면서 재중 교민과 기업인, 관광객, 유학생, 언론 등의 활동이 크게 제약을 받을 전망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22일 "아직 법 시행 전인 만큼 상황을 예단하지는 않겠지만 중국에서 여행하거나 체류할 때 상당히 유의해야 한다"며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지난해 10월 중국공산당 20차 전국대표대회 개막식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이 정치보고를 낭독하는 모습. AFP. 연합뉴스.

지난해 10월 중국공산당 20차 전국대표대회 개막식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이 정치보고를 낭독하는 모습. AFP. 연합뉴스.

"국가 안보 관련"→처벌 가능

중국의 반간첩법은 2014년 제정됐다. 그리고 9년만인 지난 4월 이를 개정했는데, 개정법에는 간첩 행위로 처벌할 수 있는 범위와 대상을 대폭 확대했다. 특히 법에 적용되는 규정 자체가 모호하기 때문에 중국 당국이 이를 자의적으로 해석해 판단할 경우 무분별한 처벌 가능성이 생길 거란 우려가 나온다.

개정 전 기존 법에는 간첩 행위의 적용 대상을 '국가 기밀·정보'를 빼돌린 행위로 국한돼 있었다. 하지만 개정된 법에 따르면 굳이 국가 기밀에 분류되지 않는 정보라도 "국가 안보 및 이익에 관한 경우"로만 간주한 간첩 행위로 처벌할 수 있다. 더구나 "국가 안보와 이익"이 정확히 무엇인지에 대한 명확한 개념 규정조차 없다.

또한 개정된 반간첩법은 "간첩 조직이나 대리인에게 의탁하는 경우"까지 간첩 행위에 포함시켰다. 중국 당국이 간첩으로 간주하는 세력과 접촉하기만 하더라도 이를 간첩 행위로 처벌할 수 있는 셈이다. 더 나아가 행정 당국이 간첩 행위 단속이라는 명목으로 데이터 열람, 재산 정보 조회, 출입국 금지 등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지난 3월 중국 제14기 1차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제3차 전체회의가 열린 베이징 인민대회당 모습. 개정된 반간첩법은 지난 4월 전인대 상무위원회 2차 회의를 통과했다. 연합뉴스.

지난 3월 중국 제14기 1차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제3차 전체회의가 열린 베이징 인민대회당 모습. 개정된 반간첩법은 지난 4월 전인대 상무위원회 2차 회의를 통과했다. 연합뉴스.

특히 중국 당국이 간첩 행위 조사에 나설 경우 "반드시 협조한다"는 의무 조항도 신설됐다. 간첩 수사 목적으로 당국이 증거를 수집할 때 거부할 수 없고, 이에 협조하지 않으면 역시 처벌 대상이 된다. 법을 위반한 외국인에 대해선 출국 내지 입국을 명할 수 있도록 규정했고, 만약 기한 내에 출국 명령을 따르지 않을 경우 추방도 가능하다. 추방된 외국인은 10년 내 중국 재입국이 불가하다.

정부, 공관 통해 주의 당부

정부는 반간첩법의 시행에 앞서 이달 말에 중국 내 한국 공관의 홈페이지 등을 통해 중국에 머무르는 교민, 관광객, 기업인, 유학생을 대상으로 구체적인 주의 사항을 공지할 예정이다.

2014년 반간첩법 제정 후 한국인에 대한 처벌 사례는 아직 없지만, 중국에 진출한 다른 나라의 기업인 등이 타깃이 됐다. 한·중 관계가 극도로 경색된 상황에서 반간첩법의 규정까지 모호해지면서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 등의 주의가 요구되는 상황이다. 특히 반간첩법은 처벌 수위를 별도로 규정하고 있지 않고 다른 법률로 처벌 수위를 정하도록 돼 있는데, 자칫 중국 당국이 이를 의도적 간첩 '낙인 찍기'로 악용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 공개된 자료라도 중국 당국이 국가 안전과 이익에 관련됐다고 자의적으로 판단할 경우 단순히 인터넷으로 검색하거나 저장하는 행위만으로도 중국 당국의 오해를 살 수가 있다. 경우에 따라 중국에 대한 비판적인 기사를 검색하거나 저장·가공하기만 해도 반간첩법 혐의를 씌울 수 있는 셈이다.

관광객도 예외가 아니다. 중국 내 관광객의 경우 중국 내 여행지에서 군사 시설, 방산 업체 등 사진 촬영을 자제해야 하며, 시위 현장 주변을 방문하거나 시위대를 직접 촬영하는 것도 반간첩법의 적용 대상이 될 수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지난 4월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중국 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 폐막식에서 당장 수정안 투표를 위해 손을 드는 모습. 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지난 4월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중국 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 폐막식에서 당장 수정안 투표를 위해 손을 드는 모습. 연합뉴스.

종교 활동 역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중국 내 한인 교회의 절반 이상인 약 57%는 현재 중국 당국의 허가를 받지 못한 상태다. 중국의 기준으로 대부분의 한인 교회가 '무허가 종교 시설'이 된다는 의미로, 여기서 활동하는 것 자체가 중국의 안보와 이익을 저해한다는 판단이 내려질 수도 있다.

중국 내 언론 활동도 위축될 우려가 있다. 중국의 접경 지역을 촬영 및 취재하거나 북한 등 민감한 현안과 관련해 학계 인사를 면담하는 것도 반간첩법 적용의 우려가 있다.

걸면 걸리는 반간첩법

중국 정부는 반간첩법 개정과 관련해 "현행법의 간첩 행위 범위가 좁고 안보·방범 제도가 미비해 행정 집행 권한이 부족했기 때문에 관련 법규를 보완했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중국이 행정상 이유로 보완했다는 다양한 반간첩법 법규가 사실상 자국민은 물론 외국인의 중국 내 활동과 권리를 옥죄는 '독소 조항'으로 작용할 거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중국의 개정된 반간첩법은 국가 안보, 이익에 위배되는 활동이라는 모호한 표현을 사용하고 적용 범위도 구체성이 떨어져 사실상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 법이라는 우려와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며 "중국 당국의 자의적 판단에 의해 법이 적용될 여지가 있어 자칫 한국 기업인, 학자, 지식인 중에서도 시범 케이스로 과도한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어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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