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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평생 주민번호 없이 산 60대, 소주 훔쳤다 신원 되찾은 사연

중앙일보

입력

소주병. 사진 pixabay

소주병. 사진 pixabay

일평생 주민등록번호도 없이 살아온 60대가 소주를 훔쳤다가 검찰의 도움으로 자신의 신원을 찾았다.

22일 수원지검 인권보호부(부장 장윤태)에 따르면 지난 2월 4일 오전 5시10분쯤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의 한 식당 앞에 놓인 박스에서 1만원 상당의 소주 2병을 훔치다가 경찰에 붙잡힌 A(64)씨는 검찰에 송치됐다.

검찰은 A씨에 대한 단순생계형 절도 사건 기록을 검토하던 중 A씨 신원에 이상이 있는 점을 발견했다.

앞서 경찰은 A씨가 신분증을 소지하고 있지 않고 주민등록 조회도 되지 않자, 지문 조회를 통해 그의 예전 범죄 전력에서 특정된 인적 사항으로 A씨를 검찰에 넘겼다.

하지만 A씨는 검찰에 "자신은 실종 선고를 받은 상태며, 주민등록상 나온 생년월일과 자신의 것은 일치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검찰이 A씨의 제적등본과 가족관계증명서를 확인한 결과, 실제 그는 실종선고 후 사망한 것으로 간주돼 있었다.

서울가정법원은 2013년 10월쯤 오래 전 실종신고된 A씨에 대해 '1988년 3월부로 사망한 것으로 본다'는 선고를 내렸다.

경찰이 A씨의 인적 사항이라고 특정한 주민등록번호도 애초 발급된 적 없었으며, A씨의 생년월일과도 달랐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출생 후 20여년이 지난 시점에 부친에 의해 출생신고가 되기는 했으나, 알 수 없는 이유로 주민등록번호를 발급받지 못했다고 한다.

수원지검 전경. 중앙포토

수원지검 전경. 중앙포토

A씨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확인한 검찰은 주민등록번호도 없이 일평생 살아온 그의 신원을 찾기 위한 작업에 나섰다.

검찰은 A씨에 대한 실종선고를 청구했던 이가 이복남동생이라는 점을 알아냈고, 동생의 구강 상피를 채취재 이들의 DNA를 비교 분석했다.

약 한 달간의 신원확인 절차 끝에 검찰은 A씨와 이복동생들의 친부가 동일하다는 분석 결과를 받았다.

이에 검사는 A씨 신원 회복을 위해 직접 수원가정법원에 실종선고 취소 청구를 했다.

또 A씨가 저지른 소주 절도 사건은 평생 주민등록번호를 발급받지 못해 사회복지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한 점, 그로 인해 생계형 절도 범행에 이른 점 등을 고려해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상담과 취업 교육을 조건부로 기소유예 처분했다.

A씨가 과거 미납한 벌금도 분납하도록 해 일상생활에 신속하게 복귀하도록 도왔다. 현재 A씨는 정상적으로 분납을 이행하고 있다.

검찰은 향후 법원의 실종선고 취소 심판이 확정되면 피의자 주민등록번호 신규 발급, 지자체에 기초수급자 신청, 검찰·경찰 관리 전산 시스템에 피의자 신규 주민등록번호 수정 등록 통보 등 지속적으로 지원할 방침이다.

검찰 관계자는 "피의자는 별다른 소득이나 가족이 없이 극심한 생활고와 건강 악화를 겪어 사회 복지 지원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었지만, 주민등록 없이 실종 선고된 사망 간주자라 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며 "앞으로도 검찰은 공익의 대표자로서 사건 관계인의 인권 보호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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