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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랑GO] 6·25 전세 뒤집은 그 작전, 인천상륙작전기념관서 살펴봐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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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심심해~”를 외치며 꽁무니를 따라다닌다고요? 일기쓰기 숙제하는데 ‘마트에 다녀왔다’만 쓴다고요? 무한고민하는 대한민국 부모님들을 위해 ‘소년중앙’이 준비했습니다. 이번 주말 아이랑 뭘할까, 고민은 ‘아이랑GO’에 맡겨주세요. 이번엔 인천상륙작전기념관에서 6·25전쟁 당시 전세를 뒤바꾼 인천상륙작전에 대해 알아볼까요.

인천에서 시작된 6·25전쟁의 반전

인천상륙작전기념관에서 우리 군이 북한군에 맞서 어떻게 녹색·적색·청색해안에 상륙해 서울 수복의 길을 마련했는지 디오라마와 영상을 통해 알아볼 수 있다.

인천상륙작전기념관에서 우리 군이 북한군에 맞서 어떻게 녹색·적색·청색해안에 상륙해 서울 수복의 길을 마련했는지 디오라마와 영상을 통해 알아볼 수 있다.

1950년 6월 25일 발발한 6·25전쟁(한국전쟁)은 올해 73주년을 맞았고, 1953년 7월 27일 맺은 정전 협정도 70년이 흘렀다. 6·25전쟁은 분단의 아픔은 물론, 국군 약 62만 명, 유엔군 약 16만 명, 민간인 약 99만 명 등 수많은 인명피해를 냈다. 아직도 남북은 휴전 중이며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쟁의 긴장감 속에서 대치 중이다.
대한민국은 전쟁이 일어난 지 3일 만에 북한에 수도 서울을 빼앗기고 부산까지 밀려났다. 당시 나라를 구한 계기가 된 것이 바로 인천상륙작전이다. 인천상륙작전의 역사적 사실을 기념하고 보존하기 위해 1984년 인천상륙작전기념관(인천 연수구)이 개관했다. 처음으로 전쟁사기념관을 찾은 소중 학생기자단을 맞이한 김선미 해설사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이념 대결이 생겼어요. 이른바 ‘냉전체제’라고 하죠. 김일성이 이끄는 북한은 소련(현재 러시아), 중공(중국 공산당)의 지원을 받으며 대한민국의 공산화라는 목적을 세웠어요. 이를 위해 1950년 6월 25일 새벽, 불법 기습 남침을 개시했죠”라고 6·25전쟁이 일어난 이유를 설명했다.

소중 학생기자단에게 맥아더 장군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김선미(맨 왼쪽) 해설사.

소중 학생기자단에게 맥아더 장군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김선미(맨 왼쪽) 해설사.

김 해설사를 따라 전시실에 들어가자 입구부터 빼곡히 사진과 글로 인천상륙작전 진행된 과정이 시간 순서대로 나타났다. “전쟁이 일어날 당시 북한의 병력은 19만8380명, 남한은 10만5752명이었어요. 특히 항공기(전투기)는 북한이 226기, 남한이 22기였죠. 6월 27일, 유엔이 우리나라에 파병을 결정했고 7월 3일, 미군이 투입됐지만 국군과 미군은 북한군의 공격에 최후의 저지선이었던 낙동강 방어선까지 밀려나게 돼요.”

유엔(UN)군 사령관인 더글러스 A 맥아더(1880~1964) 장군은 인천상륙작전(암호명: 크로마이트 작전·Operation Chromite)을 구상하고 직접 지휘한 인물이다. 8월 28일 미국 합동참모본부가 인천상륙작전 계획을 승인하며 9월 15일로 작전 실행을 확정했다. 총 병력 7만5000여 명이 편성됐고, 이들의 임무는 인천항 확보와 해안교두보 점령, 김포 비행장 확보, 한강 도하와 서울 탈환, 서울 근교 진지 점령이었다. “인천상륙작전 실시에는 지리적으로 어려운 점이 있었어요. 인천 앞바다는 조수간만의 차가 평균 7m로, 간조 시 갯벌이 드러나 상륙할 수 있는 날이 한정적이었죠. 또 상륙해안 대부분이 4~5m 해벽(해안 보호를 위해 물가에 쌓은 돌담이나 벽)으로 이뤄져 사다리가 필요했어요.”

6·25전쟁에서 북한군이 사용한 AK-47소총(위)과 구경 7.62mm 수다예프 기관단총 PPS-43.

6·25전쟁에서 북한군이 사용한 AK-47소총(위)과 구경 7.62mm 수다예프 기관단총 PPS-43.

60mm 박격포탄은 포병용 포탄보다 포탄 두께가 얇다. 같은 양의 화약을 넣었을 경우, 포병용 포탄보다 그 용기가 여러 조각으로 파괴돼 더 위력적이다.

60mm 박격포탄은 포병용 포탄보다 포탄 두께가 얇다. 같은 양의 화약을 넣었을 경우, 포병용 포탄보다 그 용기가 여러 조각으로 파괴돼 더 위력적이다.

맥아더 장군 흉상 앞에서 김 해설사는 “맥아더 장군은 인천이 서울로 접근할 수 있는 최단거리 항구이며, 서울을 탈환해 북한군에게 심리적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이유를 들며 많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작전 실행을 밀어붙였어요”라고 했다. 인천상륙작전 실행 전 북한군의 전투력은 모두 낙동강 전선에 투입돼, 인천 지역 병력은 약 2000여 명이었다. 국군과 미군은 상륙지역에 북한군을 고립시키기 위해 9월 4~15일 공중폭격을 진행했고, 13일부터는 항공모함 4척, 구축함 6척, 순양함 5척이 인천만 어구에 들어서 월미도를 포격했다.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을 어떻게 성공적으로 진행했는지 맥아더 장군 흉상 옆에 있는 디오라마와 영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디오라마에 설치된 버튼을 누르면 녹색(인천 중구 월미도)·적색(인천 중구 북성동)·청색해안(인천 미추홀구 용현동)에 상륙해 북한군에 맞섰던 우리 군의 위치가 빛을 낸다. 이 작전으로 국군과 유엔군은 약 4000여 명의 사상자를 냈고, 북한군은 1만4000여 명이 사살, 7000여 명이 포로가 됐다. “인천상륙작전은 9월 28일 서울을 수복하고 낙동강 전선에 몰려있던 북한군을 고립시켜 전세 역전의 발판이 됐죠.”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유엔 총사령관, 북한군 최고사령관, 중공인민지원군 사령관이 6·25전쟁 중단을 위해 서명한 휴전협정문.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유엔 총사령관, 북한군 최고사령관, 중공인민지원군 사령관이 6·25전쟁 중단을 위해 서명한 휴전협정문.

디오라마를 지나면 당시 사용한 무기를 살펴볼 수 있다. 북한군은 AK-47소총, 우리 군은 카빈소총을 주로 사용했다. AK-47소총은 소련군 제식소총(기본소총)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무기’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바 있다. 카빈소총은 미군의 표준화기였으며 6·25전쟁에서 미 육군과 해병대, 국군의 제식소총으로 사용됐다. 소총 이외에도 60mm 박격포 등 각종 무기, 휴전협정문 등 6·25전쟁과 관련된 문서도 전시됐다.

야외전시장에는 인천상륙작전에 사용된 대형 군사 장비가 모여 있다. 그중 해상에서 육상으로 병력·장비를 수송하는 데 사용한 LVT(Landing Vehicle Tracked) 상륙장갑차는 길이 7.97m, 폭 3.25m, 무게 13.7톤, 최대 속도 육상 32km/h·해상 11km/h를 자랑하며 25명을 수송할 수 있다. 6·25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과 서울 수복을 위한 한강 도하 작전에 사용됐다. LVT 상륙장갑차 옆에 있는 3inch/50 함포는 근거리 대공용 함포로, 최대 사거리 1만2984m, 유효 사거리 5852~6400m다. 6·25전쟁 당시 우리 해군 구잠함과 경비함에 설치돼 인천상륙작전을 비롯한 각종 해상작전에 사용됐다.

인천상륙작전과 서울 수복을 위한 한강 도하 작전에서 병력·장비 수송용으로 사용된 ‘LVT(Landing Vehicle Tracked) 상륙장갑차’(위 사진)와 6·25전쟁에서 주로 정찰과 포병관측임무에 사용한 2인승 관측기 ‘O-1 항공기’.

인천상륙작전과 서울 수복을 위한 한강 도하 작전에서 병력·장비 수송용으로 사용된 ‘LVT(Landing Vehicle Tracked) 상륙장갑차’(위 사진)와 6·25전쟁에서 주로 정찰과 포병관측임무에 사용한 2인승 관측기 ‘O-1 항공기’.

LCM(Landing Craft Mechanized)은 길이 17m, 폭 4.7m, 무게 28톤의 상륙주정으로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해 수륙양용 탱크, 차량 등을 운반했다. 뒷부분에 자체 방어용 기관총이 부착돼 적의 공격에 대응해 안전하게 병력과 장비를 수송할 수 있었다. 길이 7.8m, 최대 속도 243km/h, 무게 982kg인 O-1 항공기는 전후방 조종석의 2인승 관측기로써, 6·25전쟁에서 주로 정찰과 포병관측임무에 사용됐다. 조종석 전후좌우를 유리로 제작, 새를 사냥하는 개처럼 시야가 넓다고 해 버드독(Bird Dog)이라는 애칭이 붙었다.

김도경(왼쪽)·노주하 학생기자가 인천 상륙작전기념관 자유수호의탑 앞에서 6·25전쟁 참전 장병의 넋을 기렸다.

김도경(왼쪽)·노주하 학생기자가 인천 상륙작전기념관 자유수호의탑 앞에서 6·25전쟁 참전 장병의 넋을 기렸다.

기념관 가장 높은 곳엔 참전 UN장병과 국군장병의 넋을 기리는 자유수호의탑이 있다. 6·25전쟁 전투부대 파견국(그리스·남아프리카공화국·네덜란드·뉴질랜드·룩셈부르크·미국·벨기에·에티오피아·영국·오스트레일리아·캐나다·콜롬비아·태국·터키·프랑스·필리핀)과 의료 지원국(노르웨이·덴마크·독일·스웨덴·이탈리아·인도)의 이름이 적혀있다. 다가오는 6·25전쟁일을 맞아 인천상륙작전기념관에서 인천상륙작전에 대해 알아보고, 자유수호의탑에서 6·25전쟁에 참여한 장병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해보는 건 어떨까.

인천상륙작전기념관

장소: 인천 연수구 청량로 138
이용시간: 화~일 오전 9시~오후 6시(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개관, 1월 1일·설날 및 추석 당일 휴무)
전시해설: 인천광역시 문화관광해설사 운영관리시스템 홈페이지(culture-tour.incheon.go.kr) 신청, 해설 예약 전화 문의(032-440-4104)
관람료: 무료
문의: 032-832-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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