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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 코주름으로 신원 확인”…1600억원 가로챈 다단계 일당

중앙일보

입력

A회사 관계자의 차량을 경찰이 압수수색하고 있다. 경기남부경찰청

A회사 관계자의 차량을 경찰이 압수수색하고 있다. 경기남부경찰청

 테마파크와 암호화폐 코인 등 반려견 플랫폼 사업 투자를 내세워 다단계 영업을 한 이들이 경찰에 적발됐다. “반려견의 코주름(비문)으로 신원 추적이 가능한 기술을 개발했다”며 “적은 투자금으로 고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속여 2만2000여명이 피해를 봤다.

경기남부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는 사기, 방문판매법 위반, 유사수신행위법 위반 등 혐의로 A업체 대표 B씨(50대 초반)등 3명을 구속하고 이 회사 관계자 64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21일 밝혔다.

“반려견 사업한다” 2만2000여명에게 1664억원 가로채

 이들은 지난 2021년 2월부터 지난해 1월까지 반려견 플랫폼 업체를 운영한다고 속여 다단계 수법으로 1664억원의 투자금을 모집한 혐의를 받고 있다. A회사는 ‘반려견 코주름 인식’이라는 신기술을 내세워 회원들을 모았다. “개·고양이의 코주름을 각자 달라 사람 지문처럼 활용할 수 있다”며 “코주름 기술을 이용한 반려견 신원 확인 장비(리더기)를 개발하겠다”고 홍보했다. 이를 기반으로 서울과 경기 화성, 충북 천안 등에 반려견 테마파크 조성하고 PB상품 개발·판매, 암호화폐(코인) 대형거래소 상장 등을 추진하겠다고 현혹했다.

김현서 디자이너

김현서 디자이너

 이들은 전국에 62개의 지점을 만들어 다단계 방식으로 회원을 모았다. 100일간 투자하면 원금을 포함해 120~150% 수익을 자체 개발한 코인으로 보장해주고, 이 코인이 거래소에 상장되면 수십 배의 고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속여 투자를 권했다. 또 1단계에서 199단계로 판매원을 이용하는 다단계 영업을 해 총 5만여개 계정을 모집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사기를 의심하는 피해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다단계 판매 조직과 수익률 확인이 가능한 애플리케이션(앱)을 제공하는 치밀함을 보이기도 했다. 경찰은 이들이 후순위 투자자들의 투자금으로 선순위 투자자에게 수당을 지급하고, 다시 신규 회원을 끌어들여 투자금을 받는 ‘돌려막기’ 형태의 전형적인 폰지사기(다단계 금융사기)를 친 것으로 판단했다.

코주름 리더기는 상품가치도 없어

 그러나 수사 결과 A회사가 개발했다는 반려견 코주름 리더기는 블록체인 기술과 연계된 비문 식별 기능이 없어 상품 가치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과 경기 화성, 충북 천안에 짓겠다고 한 반려견 테마파크는 부지 확보하지 못했고, 수영장 등 건축물 시공이 불가능한 국가 소유 토지를 임대한 것이었다. 수당 등으로 지급하겠다고 한 코인도 블록체인 기술력을 확보하지 못한 A회사가 브로커에게 총 3억원의 주고 상장을 추진한 것으로 드러나는 등 주요 사업은 모두 허위였다. 경찰 관계자는 “이들이 개발해 특허를 받은 리더기는 코주름 사진 찍는 기능만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며 “투자자를 모으고, 성과처럼 보여주기 위해 리더기 특허를 받고, 테마파크용 부지를 임대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암호화폐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는 60세 이상의 노인과 가정주부 등으로 2만2000여명이 당했다. 일부 피해자는 퇴직금 등 노후대책자금은 물론 대출까지 받아서 A회사에 투자한 것으로 파악됐다. 지인이나 가족을 소개해 함께 피해를 본 사례도 있다고 한다.

피해자 편지. 경기남부경찰청

피해자 편지. 경기남부경찰청

 B씨는 투자금의 일부를 회사 운영비와 유흥비 등으로 사용하고 고급 외제 승용차를 구입하는 등 호화생활을 했다. 경찰은 이들의 범죄수익금을 총 83억원으로 특정, 기소 전 추징 보전 조처했다. 범행에 가담한 이들은 모두 혐의를 인정했는데, B씨만 끝까지 “합법적인 사업”이라며 혐의를 부인했다.

경찰 관계자는 “반려동물에 대한 관심과 가상자산 투자 열풍을 악용한 다단계 금융사기단을 일망타진한 사례”라며 “단기간에 원금·고수익 보장을 내세운 가상자산 투자는 범죄 피해로 연결될 수 있으니 투자 전 해당 업체를 면밀히 확인하고, 수상한 점이 발견되면 경찰 또는 금융감독원으로 신고해 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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