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미선, 무용계 최고 권위 브누아드라당스 수상…韓 창작 발레 최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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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버설발레단의 수석 무용수 강미선(40)이 한국의 창작 발레로 세계 최고 권위의 무용상을 수상했다. 한국 무용수가 한국 안무가의 작품으로 이 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강미선은 20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에서 열린 무용계 최고 권위의 '브누아 드 라당스(Benois de la Danse)' 시상식에서 최고 여성무용수상을 받았다.

강미선은 유니버설 창작발레 레퍼토리 '미리내길'에서 죽은 남편을 그리워하는 아내를 연기했다. 한국 무용수가 유명 고전 발레가 아닌 순수 한국 창작 발레 작품으로 브누아 드 라당스 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유니버설 발레단 수석 무용수인 강미선(오른쪽)이 동료 이현준 수석무용수와 함께 '미리내길'을 공연 중인 모습. '미리내길'은 남편을 잃은 아내의 마음을 한국적인 감성으로 풀어낸 유니버설 발레단의 창작 작품이다. 사진 유니버설발레단

발레 '돈키호테'에서 주인공 키트리의 독무를 추고 있는 강미선. 사진 유니버설발레단

1991년 국제무용협회 러시아 본부가 만든 '브누아 드 라 당스'는 무용 분야에서 독보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상이다. 유명 발레단의 안무가, 지도자 등으로 구성된 국제 심사위원회가 매년 세계 정상급 발레단의 작품을 심사해 최고의 남녀 무용수, 안무가, 작곡가를 뽑는다. 실비 기옘, 줄리 켄트 등 세계적 발레 스타들이 이 상을 받았다.

유니버설 발레단의 수석 무용수 강미선. 장진영 기자

강미선은 역대 다섯번째 한국인 수상자다. 발레리나 강수진(1999년), 김주원(2006년), 발레리노 김기민(2016년), 발레리나 박세은(2018년)이 앞서 이 상을 받았다. 해외 발레단에 입단하지 않은 '국내파' 무용수가 이 상을 받은 것은 김주원 이후 두 번째다.

순수 한국 창작 발레 안무로 상을 받은 것은 강미선이 처음이다. 강수진은 '카멜리아레이디'의 마르그리트 역, 김주원은 '해적'의 메도라 역, 김기민은 '라바야데르'의 솔로르 역, 박세은은 '보석'의 다이아몬드 역으로 이 상을 받았다. 모두 조지 발란신, 존 노이마이어, 유리 그리고로비치 등 해외의 유명 안무가들이 만든 발레 작품이다.

발레 갈라 '코리아이모션' 공연 중인 강미선(왼쪽) 무용수. 사진 유니버설발레

강미선이 상을 받은 '미리내길'은 죽은 남편에 대한 아내의 그리움을 표현한 애절한 파드되 (남녀 2인무)다. 유병헌 유니버설발레단 예술감독이 안무해 2021년 처음 관객에게 선보였다. '코리아 이모션'이라는 제목의 발레 갈라(전막 발레와 달리 짧은 길이의 작품 여러 개를 선보이는 공연) 프로그램 중 하나로 선보인 '미리내길'은 한국인 고유의 정(情)과 한(恨)을 발레에 잘 녹였다는 평을 받았다. 음악과 안무, 의상에도 한국적 색채가 강하게 묻어난다.

유병헌 예술감독은 21일 본지와 전화통화에서 "강미선은 성실한 예술가의 표본"이라며 "'미리내길'은 처음부터 강미선을 염두에 두고 만든 작품이다. 과거 한국에서 선교사인 남편이 순교한 뒤 혼자 남은 아내들의 이야기를 읽고 영감을 받았다"고 했다. '미리내'는 은하수를 뜻하는 순 우리말이다.

강미선은 상을 받은 후 "후보들이 워낙 대단한 무용수들이어서 전혀 기대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파리 오페라 발레단 에투알 도로테 질베르, 볼쇼이 발레단 수석무용수 엘리자베타 코코레바, 마린스키 발레단 퍼스트 솔리스트 메이 나가히사 등 내로라하는 스타들을 제치고 올해 '최고의 여자무용수' 자리에 올랐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한국의 창작발레를 세계 무대에 알릴 수 있어 기쁘고 심사위원들이 한국 정서에 공감했다는 것이 뿌듯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무용수 출신의 정옥희 무용 평론가는 "'미리내길'은 한국적 색채가 강해 서구 주류 무용계에서는 낯설게 느낄 수 있는 작품"이라며 "그럼에도 이 작품이 그들의 가슴에 가 닿게 만들 만큼의 표현력과 테크닉을 강미선이 갖췄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국에서 만들어지고 국립극장에서 초연된 작품이 세계 무용계에서 '동시대의 발레'로 인정된 쾌거"라고 덧붙였다.

강미선은 국내에 몇 안 되는 '워킹맘' 무용수이기도 하다. 강미선은 2013년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인 동료 콘스탄틴 노보셀로프와 결혼한 뒤 2021년 10월 아들을 출산하고 5개월 만에 무대로 복귀했다. 선화예술중·고등학교를 나온 뒤 미국 워싱턴의 키로프 아카데미를 거쳐 유니버설발레단에 입단(2002)했고 근무와 드미솔리스트(2005∼2006), 솔리스트(2006∼2010), 시니어 솔리스트(2010∼2012)를 거쳐 2012년 수석무용수가 됐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