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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방송법 허찔린 野…정청래가 세운 변호사, 장제원이 해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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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5월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5월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국민의힘이 더불어민주당의 방송법 개정안 본회의 직회부에 반발해 헌법재판소에 제기한 권한쟁의심판에 돌발 변수가 생겼다. 이 헌법 소송의 피청구인인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지난달 30일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에서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으로 교체되면서 사실상 청구인과 피청구인이 모두 국민의힘인 상황이 됐다. 여권 안팎에선 “거야(巨野)의 입법 독주에 제동을 걸 기회가 생겼다”는 기대감이 흘러나왔다.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달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 당선 후 의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달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 당선 후 의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19일 복수의 국회 관계자에 따르면, 장제원 의원은 신임 국회 과방위원장으로 선출된 직후인 지난 14일 기존 정청래 위원장 체제에서 국회 과방위원장 측 법률 대리인으로 선임된 법무법인 한결을 해임했다. 당초 15일로 예정됐던 방송법 권한쟁의심판의 첫 공개 변론일을 하루 앞두고 단행된 조치였다. 익명을 요구한 국회 관계자는 “공식적으론 기존 변호인이 사임했다고 알려졌지만, 장 위원장에 의한 사실상의 해임”이라고 했다. 국회는 앞서 지난달 30일 본회의에서 정청래 의원이 사임한 과방위원장 자리에 장제원 의원을 선출했다.

장 의원의 변호인 해임 조치 직후, 청구인인 국민의힘 측은 “최근 피청구인인 국회 과방위 위원장이 정청래 의원에서 장제원 의원으로 변경됐고, 과방위 위원장의 변호인도 사임해 변론기일에 정상적인 진행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한다”며 변론기일 연기를 신청했고, 헌재는 이를 받아들였다.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가운데)과 전주혜 의원(왼쪽), 장동혁 의원이 4월 1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방송법 등 본회의 직회부(부의 요구) 법률안에 대한 권한쟁의심판청구 효력정치가처분신청을 위해 민원실로 이동하고 있다. 뉴스1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가운데)과 전주혜 의원(왼쪽), 장동혁 의원이 4월 1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방송법 등 본회의 직회부(부의 요구) 법률안에 대한 권한쟁의심판청구 효력정치가처분신청을 위해 민원실로 이동하고 있다. 뉴스1

이번 권한쟁의심판은 지난 4월 14일 국민의힘 법제사법위원회 위원들이 “법사위에서 논의 중인 방송3법 개정안을 ‘60일 이내 심사를 마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국회 과방위가 본회의에 직회부 결정을 한 것은 국회법 위반”이라며 ▶국회 과방위원장 ▶국회의장을 상대로 청구한 헌법소송이다. 앞서 과반 의석의 민주당은 지난 3월 21일 정청래 위원장 체제의 국회 과방위에서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변경하는 내용의 방송 3법을 본회의에 단독 직회부했다. 국민의힘은 “방송법 개정안은 현 야당에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을 영구화하겠다는 의도”라며 야당의 법 개정 시도에 반발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이뤄진 장 의원의 기존 변호인 해임 조치에 대해 국민의힘 관계자는 “정청래 위원장 체제에서 선임된 변호인은 당연히 민주당 측에 기울어진 변론을 준비해왔을 텐데, 청구인과 피청구인이 사실상 국민의힘이 된 현 상황에서 장 위원장은 새 변호인을 통해 변론을 원점부터 새로 검토할 것”이라고 했다.

여당 지도부 소속 의원도 “권한쟁의심판이 국민의힘에 다소 유리해진 상황이 된 것은 맞다”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만약 국민의힘이 청구한 방송법 권한쟁의심판이 헌재에 의해 인용될 경우, 방송3법의 본회의 직회부는 없었던 일이 되면서 민주당의 단독 처리가 어려워진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5월 15일 국회 최고위에 참석해 정청래 최고위원과 대화하고 있다. 중앙포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5월 15일 국회 최고위에 참석해 정청래 최고위원과 대화하고 있다. 중앙포토

민주당은 허를 찔렸다. 당 관계자는 “장 위원장이 꼼수를 썼다”면서도 그동안 민주당 지도부가 이 문제에 무신경했다는 점을 인정했다. 장 의원이 새 과방위원장에 선출되는 건 여야 합의에 따른 기정사실이었는데, 원내대표들간 협의 과정에서 방송법 권한쟁의 심판 문제에까지 신경을 쓰지 못했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해 4월 여당 법제사법위원들이 당시 박광온 국회 법사위원장(민주당 소속)을 상대로 청구한 ‘검수완박’ 권한쟁의심판에선 여야가 미리 ‘교통정리’를 했다. 같은 해 7월 여야 원내지도부가 21대 후반기 원 구성에 합의할 당시, 민주당 주도로 “본회의를 통과한 검찰청법과 형사소송법 관련 권한쟁의 심판사건에 대한 국회의 법률적 대응은 국회의장과 전반기 법제사법위원장이 수행하며, 후반기 법제사법위원장은 이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합의문에 적시했다. 21대 국회 후반기부터 법사위원장직이 민주당에서 국민의힘으로 넘어가는 상황에서 이번 방송법과 같은 상황이 벌어질까 민주당이 우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단서 조항이 이번엔 빠지면서 상황은 더 복잡해졌다.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재판관들이 3월 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에 대한 권한쟁의심판 선고를 위해 대심판정에 자리해 있다.  헌재는 이날 국민의힘 유상범·전주혜 의원이 법사위원장과 국회의장을 상대로 낸 권한쟁의 심판 사건에서 재판관 5대4 의견으로 법사위원장에 대한 부분을 인용 결정했고,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검사 6명이 국회를 상대로 낸 권한쟁의 심판 사건은 5대 4 의견으로 각하했다. 뉴스1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재판관들이 3월 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에 대한 권한쟁의심판 선고를 위해 대심판정에 자리해 있다. 헌재는 이날 국민의힘 유상범·전주혜 의원이 법사위원장과 국회의장을 상대로 낸 권한쟁의 심판 사건에서 재판관 5대4 의견으로 법사위원장에 대한 부분을 인용 결정했고,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검사 6명이 국회를 상대로 낸 권한쟁의 심판 사건은 5대 4 의견으로 각하했다. 뉴스1

법조계 일각에선 방송법 권한쟁의심판 결과를 두고 “예상을 뒤엎고 국민의힘이 이길 수도 있겠다”는 전망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법조인은 중앙일보에 “통상 여야가 맞서는 정치색 짙은 이슈에 대해선 헌법재판소가 각하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검수완박 권한쟁의를 각하했던 것도 같은 이유”라며 “그런데 지금은 청구인과 피청구인이 같아진 꼴이라 결과를 쉽게 예측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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