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위성실패 신랄 비판"…조급한 김정은, '강경파' 김영철까지 소환

중앙일보

입력

북한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당 중앙위원회 8기 8차 전원회의를 16~18일 당 중앙위원회 본부에서 진행했다. (앞줄 왼쪽부터) 이병철·조용원 정치국 상무위원, 김정은, 김덕훈 내각총리, 최용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노동신문, 뉴스1

북한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당 중앙위원회 8기 8차 전원회의를 16~18일 당 중앙위원회 본부에서 진행했다. (앞줄 왼쪽부터) 이병철·조용원 정치국 상무위원, 김정은, 김덕훈 내각총리, 최용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노동신문, 뉴스1

북한이 상반기 사업을 결산하는 회의에서 지난달 31일 자신들의 군사정찰위성 발사 실패를 '가장 엄중한 결함'으로 꼽았다. 그러면서 빠른 시일 내에 정찰위성이라고 주장하는 발사체를 다시 발사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발사의 실패를 야기한 구체적 기술적 결함이나 재발사 시점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신랄' 비판했지만…결론은 빠른 시일 재발사

19일 북한 관영 매체들은 지난 16일부터 사흘간 평양 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 청사에서 진행한 전원회의 확대회의에서 "위성 발사 준비사업을 책임지고 추진한 일꾼들의 무책임성이 신랄하게 비판됐다"고 보도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직접 참석한 회의의 결론이 '일꾼들의 무책임성'으로 귀결됐다는 의미로, 사실상 이번 회의를 통해 위성 발사에 관여한 인사들에 대한 문책이 논의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다.

노동당 정치국은 이날 보고에서 군사정찰위성 발사 실패를 비중있게 다뤘다. 북한 매체들은 "이번 발사 실패의 원인과 교훈을 철저히 분석해야 한다"며 "빠른 시일 안에 군사정찰위성을 성공적으로 발사함으로써 인민군대의 정찰정보 능력을 제고하고 우주개발 분야에서 더 큰 비약적 발전을 이룩하기 위한 지름길을 마련할 데 대한 전투적 과업이 제시됐다"고 전했다.

북한이 지난달 31일 북한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새발사장에서 쏜 첫 군사정찰위성 '만리경 1호'를 실은 위성운반로켓 '천리마 1형'을 발사하는 모습. 이 로켓은 엔진 고장으로 서해에 추락했다. 북한 국가우주개발국은 발사 후 2시간 30여분 만에 실패를 공식 인정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북한이 지난달 31일 북한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새발사장에서 쏜 첫 군사정찰위성 '만리경 1호'를 실은 위성운반로켓 '천리마 1형'을 발사하는 모습. 이 로켓은 엔진 고장으로 서해에 추락했다. 북한 국가우주개발국은 발사 후 2시간 30여분 만에 실패를 공식 인정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그런데 당 정치국은 이번 실패의 책임을 '일꾼들'에게 전가하면서도 그들에 대한 구체적인 문책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군사정찰위성 발사에 자신의 정치적 리더십을 사실상 '올인'했던 김정은 국무위원장 입장에선 위성 발사 준비에 관여한 실무자나 책임자에게 실패의 책임을 묻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다. 그러나 위성·발사체 관련 기술 인력풀이 두텁지 않은 북한의 상황을 미루어 짐작해 보면 이들을 처벌할 경우 발사 재발사 자체가 불가능해 질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분석된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중대한 계획이 실패한 것에 대한 책임을 묻지 못하는 배경은 이번 발사 실패의 원인이 단순한 결함 때문이 아니라 기술적 난관에 봉착했기 때문일 가능성을 의미한다"며 "만약 발사 실패가 단순한 실수였다면 기술적 문제를 제외한 단순 실수에 대해서는 강력한 책임을 물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8차 전원회의 확대회의가 지난 16일부터 18일까지 당중앙위원회 본부에서 열렸다. 사진은 회의에 참석한 김정은의 모습. 조선중앙TV캡처, 연합뉴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8차 전원회의 확대회의가 지난 16일부터 18일까지 당중앙위원회 본부에서 열렸다. 사진은 회의에 참석한 김정은의 모습. 조선중앙TV캡처, 연합뉴스

핵 증산 강조하며 대미·대남 강경노선 재천명

북한은 대신 한·미를 향한 강한 기존 적대 노선을 부각하며 협박의 수위를 높였다. 핵무기에 대한 '증산'까지 언급됐다.

당 정치국은 "적들이 의도적으로, 노골적으로 고취하는 군사적 긴장 격화 책동에 대항해 '행동 대 행동'의 원칙을 철저히 견지하며 항상 압도적이고 공세적인 대응 조치들을 지체 없이 강력히 결행해야 한다"며 "전원회의는 그 실행을 위한 구체적 방안들과 대응 방식들을 일치가결로 승인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방 부문에서 당중앙이 제시한 핵무기 발전방향과 핵 역량 증강노선을 일관하게 틀어쥐고 강위력한 핵무기 증산실적으로 주체혁명위업을 보위해 나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정대진 원주 한라대 교수는 하반기에도 대미·대남 분야에서 강대강 정면승부를 피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라며 "발사 실패에 대한 북한 내부의 부정적 평가를 한·미 등 외부에 대한 경계심으로 상쇄하려는 의도도 담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북한이 노동당 중앙위원회 8기 8차 전원회의를 16~18일 당 중앙위원회 본부에서 진행했다. 사진은 회의를 마치고 당 본부청사를 빠져나오는 참석자 들의 모습. 노동신문, 뉴스1

북한이 노동당 중앙위원회 8기 8차 전원회의를 16~18일 당 중앙위원회 본부에서 진행했다. 사진은 회의를 마치고 당 본부청사를 빠져나오는 참석자 들의 모습. 노동신문, 뉴스1

실제 북한은 미국의 움직임에 대해 "강도적인 세계 패권전략"이라고 주장하며 "이에 반기를 든 국가들과의 연대를 강화하는 것을 비롯해 대외 활동을 철저히 국권수호, 국익사수의 원칙에서 자주적으로, 보다 적극적으로 벌려나가기 위한 중대 과업들을 제기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전선을 '한·미·일 대 북·중·러' 구도로 규정하며 외교적 공간을 마련하는 동시에 대내적인 불안감을 줄이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강경파' 김영철 · '경제통' 오수용 복귀

김정은이 이번 회의를 통해 문재인 정부 때 진행됐던 남북 및 북·미 대화를 이끌었던 김영철 전 통일전선부장을 재기용 한 점도 눈에 띈다. 김영철은 대화 국면이 실패한 이후 사실상 좌천됐다가 이번 회의에서 당 정치국 후보위원이자 '통일전선부 고문'에 올랐다. 향후 한·미 관련 업무에 복귀할 가능성을 시사한 대목이다.

지난 16일부터 사흘간 열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8차 전원회의에서 통일전선부 고문 겸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임명된 김영철의 모습. 조선중앙TV 캡처, 연합뉴스

지난 16일부터 사흘간 열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8차 전원회의에서 통일전선부 고문 겸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임명된 김영철의 모습. 조선중앙TV 캡처, 연합뉴스

김영철은 특히 과거 천안함 폭침을 주도하는 등 대남 강경노선을 주도했고, 2019년 '하노이 노딜' 이후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2020년 6월)에 관여했던 인물이다. 김영철의 재기용 자체가 대미·대남 투쟁 전략을 공고화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김영철은 자타가 인정하는 대남 강경파라는 점에서 주요 정책결정회의 참석뿐만 아니라 대남 압박을 위한 성명전·비난전에 그를 재차 활용하고자 하는 의도를 내포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정은은 이와 함께 1944년생으로 팔순을 바라보는 오수용을 1년 만에 당 비서와 경제부장으로 복귀시키며 경제 부문을 맡겼다. 그는 김책공업대학을 졸업하고 금속기계공업성 부상, 전자공업상, 내각 부총리, 제2경제위원회 위원장(군수담당) 등을 역임한 '경제통'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오수용이 경제사령탑으로 복귀해 김정은 정권이 핵심 과업으로 꼽고 있는 식량 문제, 주요 기간 산업 재건 등 주요 경제 현안을 해결하는 역할을 담당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북한은 지난 16일부터 사흘간 열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8차 전원회의에서 당 경제부장을 전현철에서 오수용으로 교체했다. 그는 경제분야의 핵심 직책을 두루 거친 베테랑으로 꼽힌다. 노동신문, 뉴스1

북한은 지난 16일부터 사흘간 열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8차 전원회의에서 당 경제부장을 전현철에서 오수용으로 교체했다. 그는 경제분야의 핵심 직책을 두루 거친 베테랑으로 꼽힌다. 노동신문, 뉴스1

홍민 실장은 "극심한 식량난에 봉착한 북한의 입장에서 베테랑을 기용하며 변화를 꾀한 것"이라며 "특히 올해 들어 북·중 교역이 일정 수준 정상화되고 대외 경제교류 활성화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경제회복에 대한 비중을 강화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통일부는 이날 '전원회의 평가 자료'를 통해 이날 공개된 북한의 회의 결과에 대해 "난관의 원인을 외부‧하부단위에 미루는 것으로 보아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 이행이 부진하며 만회에 대한 자신감도 감소되고 있음을 시사한다"는 해석을 내놨다. 실제 김정은은 이번 회의에서 별도 연설을 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구병삼 통일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열린 브리핑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연설을 하지 않은 이유를 정확하게 예단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정찰위성 발사가 실패했고 경제 성과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내세울 성과가 없다는 점에서 직접 나서기가 좀 어려웠던 측면이 있지 않았을까 추정해본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