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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방미 타진?…블링컨·친강 '450분 만남' 기싸움 장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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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외교 수장으로는 5년 만에 중국을 방문한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왼쪽)이 18일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친강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회담 전 악수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미국 외교 수장으로는 5년 만에 중국을 방문한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왼쪽)이 18일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친강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회담 전 악수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솔직하고 실질적이며 건설적인 회담을 가졌다.”(미국 국무부)
“솔직하고 심층적이며 건설적인 의사소통을 했다.”(중국 외교부)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의 중국 베이징 방문 첫날인 지난 18일(현지시간) 블링컨 장관과 친강 중국 외교부장의 ‘450분 마라톤 협의’ 뒤 양국 정부가 내놓은 평가다. 두 사람은 이날 오후 2시 35분부터 베이징 댜오위타이(釣魚臺) 국빈관에서 약 5시간 반 동안 회담한 뒤 다시 2시간 동안 업무 만찬을 함께 하는 등 총 7시간 반 동안의 장시간 협의를 가졌다.

양측은 이번 회담에서 최소한의 충돌 방지를 위한 가드레일(안전장치)을 마련하는 방안을 논의했다고 한다. 미 국무부는 회담 후 보도자료를 통해 “블링컨 장관은 오해와 오판의 위험을 줄이기 위한 외교의 중요성과 열린 소통 채널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중국 외교부도 “양측은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양국 정상이 만나 이룬 중요 합의를 공동으로 이행하고 이견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며 대화와 교류·협력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고 알렸다. 당국 간 소통 채널을 열어두고 향후 민간 교류 등의 방식을 통해 양국 관계를 ‘상황 관리’할 필요성에 일정한 공감대가 이뤄졌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특히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지난 17일 “몇 달 내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나 대화하길 희망한다”고 한 가운데 블링컨 장관이 시 주석의 미국 방문을 타진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가 미 국무부 안팎에서 나온다. 계기는 오는 11월 미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다. 미·중 간 경쟁이 충돌로 확산돼선 안 된다는 최소한의 공감이 있는 만큼 미 측이 APEC 회의에 시 주석을 초청한다는 뜻을 전달하고 이를 계기로 한 양국 정상회담과 관련해 양측이 의견 교환을 하지 않았겠느냐는 관측이다.

블링컨 장관의 방중 직전 미 국무부는 이번 회담의 목표로 ①개방적이고 권한 있는 의사소통 채널 구축 ②미국의 가치·이익 대변 및 지역·세계 안보 문제 논의 ③기후 및 세계 거시경제 등에 대한 잠재적 협력 모색 등 세 가지를 제시한 바 있다. 블링컨·친강 회담 후 발표된 ‘양국 공동 워킹그룹 협의 추진’은 첫 번째 목표와 관련된 결과물로 볼 수 있다. 세 번째 목표로 제시한 ‘잠재적 협력 분야 모색’은 기후변화 등 개별 국가의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초국가적 문제를 놓고 양국 정상의 협력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런 만큼 블링컨·친강 라인에서 논의가 오갔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11월 14일(현지시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린 인도네시아 발리섬의 휴양지 누사두아에서 만나 확대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11월 14일(현지시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린 인도네시아 발리섬의 휴양지 누사두아에서 만나 확대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하지만 회담 곳곳에서 팽팽한 기싸움이 벌어졌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도 꽤 있다. 미국이 두 번째 목표로 거론한 지역·세계 안보 문제 등을 놓고서다. 미 국무부는 회담 후 “미국은 미국 국민의 이익과 가치를 옹호하고 동맹 및 파트너들과 협력해 자유롭고 개방적이며 국제 규칙에 기반을 둔 질서를 수호하는 세계에 대한 우리의 비전을 진전시킬 것임을 분명히 했다”고 밝혔다. ‘힘에 의한 현상 변경’을 반대하는 미국이 중국을 도전세력이자 경쟁 관계로 보는 기존 인식을 재확인하는 동시에 한국·일본 등 동맹국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반해 친강 부장은 “현재 중·미 관계는 수교 이래 최저점에 놓여 있다”면서 미 측에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이행할 것을 촉구했다고 한다. 친강 부장은 “대만 문제가 중국과 미국 간 관계에 가장 큰 위험요소”라고도 했다. 중국은 대만 문제와 관련해 ‘하나의 중국’ 원칙을 거듭 강조하며 내정 간섭 중단을 엄중하게 요구했을 가능성이 높다.

18일(현지시간)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미ㆍ중 외교장관 회담에 양측 인사들이 배석해 있다. AP=연합뉴스

18일(현지시간)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미ㆍ중 외교장관 회담에 양측 인사들이 배석해 있다. AP=연합뉴스

이런 가운데 톰 티파니(위스콘신주) 의원 등 미국 공화당 소속 하원의원 7명은 지난 15일 블링컨 장관에게 서한을 보내 “방중 기간 대만을 경유해달라”고 주문했다고 대만의 타이완뉴스가 19일 보도했다. 이들 의원은 블링컨의 대만 방문이 미국과 대만 양국 고위 공직자가 자유롭게 상대 국가를 방문할 수 있도록 한 대만여행법 취지와 일치한다는 주장을 폈다. 대만여행법은  2018년 3월 미 의회가 통과하고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이 서명한 것으로, 중국 정부가 ‘하나의 중국’ 원칙을 훼손한다며 반발하는 법안이다.

대만 문제뿐 아니라 남중국해 등에서 고조되는 긴장 등 지역 안보 현안도 블링컨·친강 회담장 분위기를 무겁게 짓눌렀을 것이라는 외신 보도가 나온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미 정부는 중국 주변 해역에서 중국군과의 아찔한 충돌에 점점 더 불안해하고 있다”며 “미국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중동 전역에 군사기지를 건설하려는 중국의 노력을 예의주시하고 있고 러시아에 군사 원조를 하지 말라고 중국에 경고했다”고 전했다.

미국의 반도체 첨단기술과 제조 장비의 수출 통제 조치에 대한 중국의 불만도 논의 테이블에 올랐을 것으로 관측된다. NYT는 “중국은 미국의 대중(對中) 수출 규제 조치가 양국을 대립으로 몰고 가는 ‘제로섬 경쟁’의 한 예로 본다”며 “첨단 반도체 칩에 대한 중국의 접근을 제한하려는 미국의 시도에 대해 실망감을 표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이밖에 중국에 구금·투옥되거나 출국 금지된 미국 시민들의 석방 및 일부 인적 교류를 재개하는 문제, 치명적 중독성이 있는 진통제 펜타닐의 제조에 필요한 물질의 수출을 제한하는 문제가 미국의 요구로 의제에 포함됐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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