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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조치 9호' 피해보상금 받았어도…대법 "손배소 청구 가능"

중앙일보

입력

대법원이 ‘긴급조치 9호’로 입은 손해에 대해 국가의 배상책임이 인정된다는 판결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지난해 8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연장선상이다.

대법원 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김거성(64)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이 “긴급조치 9호로 옥고를 치른 정신적 손해에 대해 3100만원을 배상하라”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최근 원고 승소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김거성(64)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청와대사진기자단

김거성(64)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청와대사진기자단

긴급조치 9호는 1975년 유신헌법을 비판하거나 학생들이 집회에 참여하는 걸 금지한 특별조치다. 김 전 수석은 대학생이던 1977년 정권을 비판하는 내용의 선언서를 학내에 배포하다 구속기소돼 징역 단기 1년에 장기 1년 6개월과 자격정지 1년 6개월이 확정됐다. 구치소 내에서도 추가기소돼 징역 1년과 자격정지 1년이 선고됐지만 1979년 형집행정지로 석방됐다.

김 전 수석은 긴급조치 9호 피해자로 인정받아 2006년 국가로부터 약 2625만원의 보상금을 받았다. 2013년엔 재심을 청구해 무죄가 확정됐다.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도 냈지만 법원은 “보상금을 받은 건 재판상 화해와 같은 효력이 발생한다”며 각하했다.

대법 “그간 배상청구권 행사 못해…소멸시효 남았다”

대통령 긴급조치 9호 발령을 보도한 1975년 5월 13일자 중앙일보 1면. 중앙일보 DB

대통령 긴급조치 9호 발령을 보도한 1975년 5월 13일자 중앙일보 1면. 중앙일보 DB

상황이 바뀐 건 2018년 헌법재판소가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국가의 불법행위로 인한 정신적 손해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다”는 결정을 하면서다. 이에 김 전 수석은 다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1·2심 재판부는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행사는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 행위로, 대통령은 국민 개개인의 권리에 대응해 법적 의무를 지지 않는다”며 “당시 긴급조치 9호가 위헌·무효라고 선언되지 않았던 이상, 수사·판결 등의 행위가 그 자체만으로 공무원의 불법행위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김 전 수석의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한 것이다. 피해자가 손해를 안 날로부터 3년 이내에 배상청구를 해야 한다는 국가배상법에 따라 소멸시효도 지났다고 봤다.

하지만 대법원은 지난해 8월 전원합의체 판결을 들며 “긴급조치 9호로 개별 국민이 입은 손해에 대해 국가의 배상책임이 인정된다”며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소멸시효에 대해서도 민법상 소멸시효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부터 계산한다는 점을 들어 소멸시효가 남아있다고 판단했다. 기존 대법원 판례가 국가의 불법행위에 대한 배상청구권을 제한해 온 만큼 김 전 수석 등 피해자들이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대법원은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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