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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어부 말없이 라면 끓여줬다…투신 10대 살린 '기적의 사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16일 오전 5시쯤 경기도 고양시 행주대교 인근 한강 하구에서 물에 빠진 고교생을 10여분 간 사투 끝에 구조한 어부 김홍석씨. 17일 조업 모습. 사진 행주어촌계

지난 16일 오전 5시쯤 경기도 고양시 행주대교 인근 한강 하구에서 물에 빠진 고교생을 10여분 간 사투 끝에 구조한 어부 김홍석씨. 17일 조업 모습. 사진 행주어촌계

“손을 놓치면 안 되는 상황이어서 젖먹던 힘까지 다해 버텼어요. 목숨을 살려 기쁩니다.”

지난 16일, 물에 빠진 채 탈진해 있던 고교생을 구한 고양시 행주어촌계 소속 어부 김홍석(65)씨는 18일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김씨는 이날 오전 5시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한강 하류에서 장어 조업을 마친 뒤 자신의 0.7t짜리 어선을 타고 선착장으로 돌아오던 중 얼굴만 겨우 내놓은 채 그물에 설치한 부표에 매달려 있는 사람을 발견했다. 고교생 A군(17)이었다.

“10여분 양손으로 잡고 버티며 탈진 고교생 한강서 구조”  

김씨는 즉시 A군의 팔을 잡고 끌어올리려 했지만, 계속 실패했다. A군의 체격이 좋아 온 힘을 다해도 혼자 힘으로는 쉽지 않았다. 이미 A군을 양팔로 붙잡고 있는 상태라 휴대전화를 꺼내거나 주변에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A군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할 만큼 체력이 떨어지고 의식도 희미한 상태라 구조가 더 어려웠다. 자칫 잡고 있던 손을 놓치면 그대로 강물에 빠질 수도 있었다.

다급해진 김씨는 물과 가장 가까운 배 뒤편으로 조금씩 A군을 이동 시켰다. 배의 장비를 이용해 A군의 무게를 지탱하려 한 것이다. 작전은 성공했다. 김씨는 불룩 튀어나온 엔진 박스에 자신의 몸을 받친 채, 가까스로 A군을 배 위로 끌어 올렸다. 10여분의 사투가 끝난 순간 이었다. 구조 전까지 7시간가량 부표에 매달려 있던 A군은 저체온증 등으로 의식이 희미한 상태였다.

경기도 고양시 행주대교 일대 한강 하구에서 조업 중인 어부 김홍석씨가 18일 조업에 앞서 그물을 손질하고 있다. 사진 행주어촌계

경기도 고양시 행주대교 일대 한강 하구에서 조업 중인 어부 김홍석씨가 18일 조업에 앞서 그물을 손질하고 있다. 사진 행주어촌계

행주어촌계와 고양경찰서 등에 따르면 A군은 구조 전날인 15일 오후 10시쯤 서울의 한 다리에서 한강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1.5㎞가량을 떠내려가다 마침 어부가 쳐 놓은 그물에 걸린 뒤 스티로폼 부표를 붙잡고 밤새 버틴 것이다. 그는 구조 이후 김씨에게 “부모님이 이혼했다. 지금 부모님과 떨어져 서울의 한 청소년 쉼터 같은 곳에 살고 있다. 사는 게 힘들어서 그랬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바지선으로 A군을 옮긴 김씨 부부는 경찰이 도착할 때까지 그의 얘기를 들어주며 위로했다. 또한 탈진과 저체온증 증세를 보인 A군을 위해 라면을 끓여주고, 난로를 피워주며 응급 조치를 취했다. 멍이 든 곳에는 파스를 붙여주고, 물에 젖은 옷도 갈아 입게 했다.

김씨의 아내 김정림(66)씨는 A군이 경찰과 함께 떠나기 전 “너무 힘들면 언제든 놀러 와라. 열심히 살다 보면 분명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며 주머니에 들어있던 만 원짜리 2장을 꺼내 건넸고, A군은 “열심히 살겠다. 살려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며 연신 눈물을 훔쳤다고 한다.

김씨, 30여년간 변사체 20여 구 앞장서 직접 건져 수습

김씨는 “1988년부터 한강 하구에서 조업하면서 지금까지 20여 차례 강을 따라 떠내려 온 변사체를 발견한 적이 있다. 대부분 직접 건져 올려 경찰과 유족 등에 인계해줬다”며 “이번엔 시신 대신 어린 학생의 목숨을 살릴 수 있어 뿌듯하다”고 말했다.

현동용 고양경찰서 112치안종합상황실장은 “김씨는 한강 인명 구조활동을 하는 한국해양구조협회 행주구조대 대원으로 5년째 자원봉사 활동을 했고 이번엔 헌신적인 구조 활동으로 귀한 생명을 살렸다. 노고에 대해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 양우철 고양경찰서장이 오는 20일 감사장을 전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고양시 행주어촌계 어민 심화식(68)씨는 김씨에 대해 “변사체도 모른 채 않고 매번 직접 건져 올려 수습하는 등 궂은 일을 마다치 않은 마음씨 고운 어부”라며 “훈훈한 소식을 접한 김현옥 전 파주어촌계장이 감사를 전하고 싶다며 후원금을 보내오기도 했다”고 말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 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 전화 ☎1577-019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앱,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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