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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역전 드라마 쓴 ‘팬텀 키즈’…스포츠영화 같은 감동 줄 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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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4호 19면

팬텀싱어4 우승팀 ‘리베란테’

최근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성과로 성악계가 떠들썩하다. 준결선에 진출한 남성 9명 중 8명이 한국인이었다니, 새삼 ‘가무의 민족’임을 실감한다. 최근 막 내린 JTBC ‘팬텀싱어’ 시즌4에서도 탄탄한 실력의 크로스오버 싱어가 여럿 배출됐다. 지난 2일 생방송으로 치러진 결승 2차전에서 대역전극 끝에 우승한 ‘리베란테’는 연세대 성악과 재학생 3명(테너 진원·정승원, 바리톤 노현우)과 성악을 전공한 뮤지컬 배우 김지훈이 뭉친, 평균 나이 26.7세의 역대 최연소 팀이다.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포기하고 출연

JTBC ‘팬텀싱어’ 시즌4 우승팀 ‘리베란테’. 왼쪽부터 바리톤 노현우, 테너 정승원, 뮤지컬배우 김지훈, 테너 진원. 최기웅 기자

JTBC ‘팬텀싱어’ 시즌4 우승팀 ‘리베란테’. 왼쪽부터 바리톤 노현우, 테너 정승원, 뮤지컬배우 김지훈, 테너 진원. 최기웅 기자

쟁쟁한 유학파 선배들을 제치고 왕좌에 오른 건 팬덤의 힘이 컸다. 결승 1차전에서 월드클래스 카운터테너 이동규가 이끈 ‘포르테나’가 압도적인 점수로 우승 문턱까지 갔지만, 리베란테 팬덤이 대국민 투표에서 화력을 과시했다. 신촌 유플렉스 전광판에 리베란테 투표 독려 광고가 걸렸을 정도다. “신촌 한복판에 우리 얼굴이 걸리리라곤 생각해 본 적도 없거든요. 팬들이 함께 마음 모아서 해 주신 것인 만큼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김) “지쳐가는 타이밍에 그 메시지들이 너무 큰 격려가 됐어요. 보답하기 위해서 열심히 하자는 마음을 가졌던 게 11개월 여정에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노)

리베란테는 좀 이상한 팀이다. 혼자 나와서 4중창 팀을 결성해 가는 콘셉트인 방송이니 웬만큼 일심동체가 아닌 이상 팀 구성이 오리무중인데, 이들은 한 명씩 더해 가는 과정이 마치 무적의 아이템을 장착해 가는 듯했고, 깨지지 않을 팀이란 게 뻔히 보였다. “‘MZ네 진지맛집’으로 처음 완전체가 됐을 때 마음가짐이 절대 안 변할 거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이 벅차오름은 한 번 느끼면 잊을 수 없는 감정이라는 걸 깨달았죠. 의리보다 더한 진심이 통했달까요.”(노) “처음에 원이와 ‘꼬제(Cose)’ 부르면서 가슴 속 뜨거움을 동시에 느꼈거든요. 승원이, 현우가 더해지면서 점점 뜨거워졌고요. 이 사람들과 함께 음악을 하면 이 뜨거움을 유지할 수 있겠다는 믿음이 있었어요.”(김)

13일 오후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 스튜디오에서 중앙SUNDAY가 팬텀싱어4 우승팀 리베란테를 인터뷰 했다. 최기웅 기자

13일 오후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 스튜디오에서 중앙SUNDAY가 팬텀싱어4 우승팀 리베란테를 인터뷰 했다. 최기웅 기자

2라운드 진원·김지훈의 ‘진지맛집’부터 탄탄하게 구축된 서사가 있었다. 듀엣 결성을 위해 서로를 탐색하는 장에서 지훈이 원에게 다가가 “빛나게 해 주고 싶다”며 끈질기게 구애(?)하는 과정이 생생히 전파를 탔다. 이후 한 명씩 더해질 때마다 아빠미소를 지으며 모두가 빛나는 무대를 만들어가는 지훈의 모습은 마치 마에스트로 같았다. “중창 팀에서 제가 메인이 될 사람은 아니란 걸 일찌감치 깨닫고, 그렇다면 내가 정말 좋은 사람들 모아 멋진 팀을 꾸려보자고 한 거죠. 빛나게 해 주겠다고 했지만 제가 도움 받은 게 더 많아요. 팀원들이 아이디어가 훨씬 많고, 저는 그저 정리하고 조율하는 역할만 하고 있어요.”(김) “혼자 무대에 서는 것과 교감하면서 노래하는 건 정말 다르더군요. 한 명이 늘어날 때마다 달라지는데, 지훈이 리더로서 음악에 빠질 수 있게 분위기를 잘 만들어줘서 좋은 무대가 나올 수 있었어요.”(진)

그런 지훈도 혼자는 어려웠다. ‘음색깡패’의 면모를 처음 과시한 프로듀서 예심 때는 사실 컨디션 난조로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전날 밤을 꼴딱 새고 새벽에 갔더니 목이 꽉 잠겨 버린 거예요. 시작하는 순간까지 극심한 공포감에 시달렸죠. 준비했던 것 하나도 못 보여드렸어요.”(김) “제가 같은 조라 다 목격했어요. 유독 긴장을 많이 하는 사람이 있더라고요.(웃음) 안절부절 못하고 굉장히 불안해 하길래 안쓰러웠죠.”(정)

2016년 시작된 ‘팬텀싱어’는 음악계를 어느 정도 바꿔놨다. 중장년층 여성 위주로 성악가들에게 대중적 팬덤이 생겨났고, 공연 시장의 판도까지 달라졌다. 최근 비중이 부쩍 커진 클래식 공연 중 티켓파워 상위권을 차지하는 건 크로스오버 공연들이다. 역사가 짧은 크로스오버가 당당히 클래식의 한 축으로 떠올랐고, 성악가들의 활동반경도 넓어졌다. 실제로 남자 성악도 상당수가 팬텀싱어 도전을 고민한다고 한다.

13일 오후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 스튜디오에서 중앙SUNDAY가 팬텀싱어4 우승팀 리베란테를 인터뷰 했다. 최기웅 기자

13일 오후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 스튜디오에서 중앙SUNDAY가 팬텀싱어4 우승팀 리베란테를 인터뷰 했다. 최기웅 기자

“노래하는 남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고민할 걸요. 무대에 대한 간절함이 있으니까요.”(진) “성악도들은 콩쿠르유학파와 팬텀싱어파로 나뉘는데, 중간에서 고민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아요. 유학파인 줄 알았던 승원이 형이 나올 줄은 전혀 예상 못했거든요.”(노) “사실 저는 어린 시절 싸이가 ‘챔피언’ 부르는 모습에 반해 노래를 시작했어요. 부모님 권유로 성악으로 돌려 순탄하게 노래를 해 왔는데, 뭔가 인생에 첫 도전을 해보고 싶던 차에 팬텀싱어가 타이밍이 잘 맞았죠. 근데 초반엔 참 어렵더군요. 나를 내려놓는 방법을 몰랐으니까요. 아무에게도 선택받지 못하고 남겨졌을 때 ‘진지맛집’을 만났는데, 운명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부터 고민이 사라지고 정말 많은 걸 배울 수 있었죠.”(정)

파바로티의 화려한 발성을 닮은 승원이 의외로 싸이로 인해 노래를 시작했다면, 진원과 노현우는 팬텀싱어로 인해 노래를 하게 된 ‘팬텀 키즈’들이다. 진원은 시즌1 우승팀 ‘포르테 디 콰트로’ 손태진의 사촌으로 유명한데, 무려 5수 끝에 성악과에 입성했다. 아이돌 같은 외모에 테너 치고 묵직한 발성이 반전인데, 알고 보니 바리톤으로 시작했다고. “형 때문에 어려서부터 부모님의 권유가 있었는데, 고3 때 노래를 시작해 재수까지는 억지로 했어요. 3수 때부터 조금씩 애정이 생겼고 발전도 있었지만 시험운이 없었죠. 막판에 선생님 권유로 성부를 바꿨는데, 테너로서는 운 좋게 4개월 만에 들어갔네요.”(진) “저도 인문계 고등학생일 때 엄마가 챙겨 보시던 팬텀싱어를 중간에 우연히 보게 됐어요. 따라할 수도 없는 소리로 노래하고 화음 맞추는 것에 두근거림이 있었고, 저도 모르게 성악하겠다고 고집을 부렸죠. 팬텀싱어 무대에 서는 꿈을 품고 노래를 시작한 건데, 막상 나와 보니 너무 힘들었어요. 바리톤 솔로는 더 울림 있고 질감 있는 소리를 내기 위해 훈련하는데, 중창에서 튀지 않고 묻어나는 법을 모르겠더라고요. 근데 이 팀에서는 잘하고 있다고 칭찬을 해 주고, 신나게 하다 보니 어느새 묻어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됐어요.”(노)

‘MZ네 진지맛집’ 으로 완전체 구축

지난 2일 결승 2차전에서 우승이 확정되자 기뻐하는 리베란테 멤버들. [사진 JTBC]

지난 2일 결승 2차전에서 우승이 확정되자 기뻐하는 리베란테 멤버들. [사진 JTBC]

엄청난 성량의 동굴저음과 카운터테너 뺨치는 극고음을 겸비한 노현우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본선에 올랐지만, 팬텀싱어 일정과 겹쳐 과감히 콩쿠르를 포기했단다. 팬텀싱어가 되기 위해 성악을 시작했기에 당연한 선택이었지만, “언젠가 오페라에도 도전하고 싶다”고 했다. “팬텀싱어가 오페라나 성악계에도 긍정적인 작용을 한다고 생각해요. 팬텀싱어를 통해 음악을 사랑하게 된 저같은 학생도 있고, 오페라계에서도 크로스오버까지 할 수 있게 된 세상이 왔으니까요. 초창기엔 오해와 의심의 말들도 있었지만, 팬텀 출신이라고 오페라에 도전 못하는 세상도 아니고, 오페라를 한다고 팬텀에 도전 못하는 세상도 아니라 생각합니다.”(노)

13일 오후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 스튜디오에서 중앙SUNDAY가 팬텀싱어4 우승팀 리베란테를 인터뷰 했다. 최기웅 기자

13일 오후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 스튜디오에서 중앙SUNDAY가 팬텀싱어4 우승팀 리베란테를 인터뷰 했다. 최기웅 기자

3명이 대학생이라 기말고사 보느라 바쁘다는 ‘리베란테’ 청년들은 순수 그 자체였다. “음악 하는 사람들도 가지각색이지만, 신기하게 결이 같은 사람들이 모였다”(정)는 게 이들의 말이다. 선배 팬텀싱어들처럼 각자 완성된 예술가는 아니지만, 서로 부족함을 채워가며 합을 내는 모습이 훈훈하다. 제법 커진 크로스오버 시장에 막 뛰어든 ‘팬텀 키즈’들은 이제 흰 도화지를 어떤 색깔로 채워 나갈까.

“계속 듣고 싶은 음악을 하고 싶어요. 4중창은 직관적으로 자극시켜 줄 수 있는 힘이 있지만, 편안하게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음악, 가장 대중적인 크로스오버 팀이라는 말을 듣고 싶거든요. 자체 콘텐트도 만들고 여러 가지 모습 보여드리면서 대중에게 가깝게 다가가겠습니다.”(김) “4중창은 하나의 레이스 같아요. 노래 한 곡이 끝날 때까지 집중력을 절대 잃지 않고, 같은 감정과 같은 생각으로 하나도 어긋나지 않게 음을 맞춰 가는 과정이죠. 다양한 사람이 팀으로 모여 협력해서 역전승을 거두는 짜릿한 스포츠영화 같은, 그런 감동을 드리고 싶습니다.”(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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