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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노조, 회사와 협상할 ‘창구’ 열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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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LG전자 ‘사람 중심 사무직 노조’(이하 사무노조)가 설립된 건 2021년 2월이었다. 이후 수개월 동안 회사에 만남을 요청했다. 회사는 묵묵부답이었다. 유준환 사무노조 위원장은 당시 “무시 전략이었다”고 말했다. 사무노조가 생기기 전에는 사무직이 기존 노조에 가입할 수도 없었다. 노조가 생산직 중심이어서 안 된다는 것이었다. 사무직 근로자로선  의사를 회사에 전달하고, 불합리한 관행을 개선할 방법이 없었다. 기존 노조에 가로막혀 봉쇄된 셈이다.

이들이 사무노조를 설립해도 마찬가지였다. 기존 거대 노조가 대표권과 교섭권을 갖고 있어 회사와 얘기를 나눌 수 없었다. 사무노조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교섭 분리를 신청했다. “생산직과 사무직은 인사와 정년, 휴가, 복리후생, 임금, 직급과 승진체계, 징계규정 등이 모두 다르므로 사무직은 별도로 교섭할 수 있도록 교섭권을 분리해 부여해 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노동위원회는 분리신청을 기각했다. ‘교섭 창구 단일화’ 규정 때문이다.

앞으로는 MZ노조가 회사와 협상할 길이 열린다. 부분근로자 대표제를 활용할 수 있어서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당정은 이런 내용을 담은 ‘근로자대표제 개선 방안’을 마련해 추진하기로 했다. 국민의힘 노동개혁특별위원회는 15일 6차 회의를 열고 근로자 대표의 지위와 책임을 명확히 하고, 부분근로자 대표를 활성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근로자 대표 개념은 1997년 도입됐지만 선출 절차와 활동, 지위, 권한, 책임 등에 관한 규정이 마련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일선 산업현장에선 노조가 없으면 근로자와 사용자 간의 협상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거나 사용자에 의해 설립된 어용노조로 근로자 대표가 대체되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당정은 이에 따라 근로자 과반수가 참여하는 직접·비밀·무기명 투표로 근로자 대표를 선출하도록 절차를 새로 만들었다. 근로자 대표를 선출할 때 사용자가 개입하거나 방해하면 형사처벌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또 근로자 대표의 활동에 사용자가 개입하지 못하게 하고, 근로자 대표에 대한 불이익 처우도 금지했다. 근로자 대표의 활동시간은 근로시간으로 인정하고, 필요한 자료를 회사에 요청할 수 있게 했다.

대신 근로자 대표에 대한 책임과 의무도 부과했다. 역할을 태만하거나 독단적으로 결정하지 못하도록 성실 협의 의무와 권한 남용 금지 의무를 부여했다. 특히 직무상 알게 된 경영상 기밀이나 개인정보 등의 누설을 금지하는 의무도 부여했다.

이 방안이 도입되면 열악한 노사관계에 놓인 소규모 기업에서 근로자와 사용자 간의 대화와 협상이 활성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어용 근로자 대표를 막을 수 있어 중소규모 사업장에 근무하는 근로자의 실질적인 근로조건 개선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MZ노조의 목소리를 회사에 전달할 수 있는 길도 열린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탄력적·선택적 근로시간제, 직무나 직군형 임금체계 등을 도입하기 위해선 사용자가 근로자 대표와 서면 합의를 해야 한다. 그런데 직군이나 직무와 상관없이 근로자 대표(현재는 대부분 생산직 중심의 노조)가 반대하면 도입할 수 없다.

정부는 이런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부분근로제를 활성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하기로 했다. 교섭단위를 분리하지 않고, 회사와 직접 협상할 수 있는 길을 열겠다는 것이다. 근로자 대표가 정당한 이유 없이 부분근로자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으면 부분근로자가 노동위원회에 이의를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이의신청이 받아들여지면 부분근로자가 회사와 직접 협의할 수 있게 된다. 사실상 교섭단위 분리 효과를 낼 수 있다. 이 제도가 현실화하면 MZ노조에 의한 독립적인 의사 결정을 가능하게 할 것으로 기대된다. 부분근로제가 도입되면 일부 직무·직군 근로자에 한정해 유연근로제 도입이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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