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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尹, 北침투 KLO 첫 초청…노병들 "北바다가 대원들 무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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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가유공자 및 보훈가족 초청 오찬에서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을 하고 있다. 이날 행사엔 역대정부 처음으로 전 KLO부대 요원이 참석했다. 사진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가유공자 및 보훈가족 초청 오찬에서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을 하고 있다. 이날 행사엔 역대정부 처음으로 전 KLO부대 요원이 참석했다. 사진 대통령실

노병은 눈물을 흘렸다. 6·25전쟁 당시 미군 소속으로 북한 후방침투 작전을 맡은 KLO(Korea Liaison Office) 부대 기획 참모였던 이창건(94) 전 한국원자력학회장은 지난 14일 윤석열 대통령 초대로 ‘국가유공자 및 보훈가족 초청 오찬’에 참석했다. 그는 1950년 서울대 전기공학과 2학년 재학 중 참전했다.

비밀 부대로 군번조차 없어 잊혀왔던 KLO부대원들은 1993년 김영삼 정부가 돼서야 참전 용사로 인정돼 현충원에 봉헌됐다. 그럼에도 이날 대통령 오찬 행사에 초대되기까진 30여년의 세월이 걸렸다. 매년 열려온 보훈인사 관련 대통령 초청 행사에 KLO부대원이 참석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 전 회장은 15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대통령 초청 행사는 처음으로 참 감격스러웠다”라면서도 “북한 전선에서 동료들이 보내던 전문이 떠올라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고 울먹였다.

이 전 회장에 따르면 KLO부대는 휴전 일주일을 앞두고 북한에 수십 명의 후방 침투 대원을 보냈다. 부족한 정보력의 결과로 대원 대부분은 살아돌아오지 못했다. 이 전 회장은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진다”며 “그들의 비석은 북한의 바위와 나무, 바다, 그리고 찬바람 부는 비탈에 버려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회장은 2005년 KLO 부대원의 활약상을 담은『KLO의 한국전 비사』라는 책을 내놓기도 했다.

이 전 회장에 대한 초청은 “잊혀진 참전 용사를 기억해야 한다”는 윤 대통령의 지시와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의 건의에 따라 이뤄졌다고 한다. 이날 행사에 KLO부대원은 물론 역대 정부 최초로 대간첩작전 참전용사 유족과 제1연평해전 참전 장병도 초대됐다.

한국전 특수부대 KLO 요원 출신인 이창건씨가 2006년 중앙일보와 KLO부대와 관련해 인터뷰를 하던 모습. 이씨는 14일 대통령실 초청 오천 행사에 초대됐다. 중앙포토

한국전 특수부대 KLO 요원 출신인 이창건씨가 2006년 중앙일보와 KLO부대와 관련해 인터뷰를 하던 모습. 이씨는 14일 대통령실 초청 오천 행사에 초대됐다. 중앙포토

미국 극동군사령부 직할 비정규 첩보부대였던 KLO부대는 6·25 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과 장진호 전투에서도 혁혁한 공을 세웠다. 국방부는 지난 3월 인천상륙작전의 발판이 된 ‘팔미도 탈환작전’을 수행한 KLO부대원 출신 부부 고(故) 이철 씨와 고 최상령씨를 국가 공로자로 인정했다. 박민식 보훈부 장관도 지난해 7월 미국 버지니아 육군박물관을 방문해 KLO부대 참전 기념비에 고개를 숙이고 헌화했다.

이 전 회장은 대통령실에 초청을 받은 날 윤 대통령에 대한 감사 편지도 전했다고 한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 2월 역대 정부 중 처음으로 KLO부대원에게 공로금을 지급했다. 지원 관련 법률은 2021년 통과됐지만 KLO부대가 미군 소속이었다는 이유로 보상금 지급 절차가 지연돼왔다. 이 전 회장은 윤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에서 “6·25 사변 때 군번도 계급도 없이 북한에 드나들며 정보 수집에 헌신하던 저희 KLO대원들은 오랫동안 국가로부터 정당한 예우를 받게 되길 바랐다”며 “새 정부가 들어선 지난 2월 비로소 위로금을 받게 되어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체면을 세울 수 있게 돼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썼다. 윤 대통령은 한국 원자력기술의 원로로 과학기술 유공자이기도 한 이 전 회장에게 명절마다 선물도 보내고 있다.

지난해 7월 박민식 국가보훈부장관이 미국 버지니아 육군박물관을 방문하여 켈로부대 참전 기념비에 헌화를 하고 있다. 사진 국가보훈처

지난해 7월 박민식 국가보훈부장관이 미국 버지니아 육군박물관을 방문하여 켈로부대 참전 기념비에 헌화를 하고 있다. 사진 국가보훈처

1929년생인 이 전 회장은 통화에서 정정한 목소리로 “요즘은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내가 밥을 사고 다닌다”고 말했다. 혹시 ‘KLO 부대원과 관련해 더 전할 말은 없느냐’고 묻자 “어제 읽지 못했다”며 준비한 원고를 꺼냈다. “별이 내려다보는 밤이면 하늘을 향해, 이 민족을 향해 가슴에 대고 바람이 소리내어 말한다. 목숨을 부지한 나머지 대원들은 흰 장갑을 끼고 국립묘지 중앙탑 돌벽에 새겨진 그들의 이름 밑에 국화 한 송이를 놓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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