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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2050 탄소중립, 정치 아닌 공학으로 풀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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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영오 서울대 공과대학 교수·과실연 명예대표

김영오 서울대 공과대학 교수·과실연 명예대표

‘서울대-KAIST 공동 탄소중립 혁신기술 인재양성 포럼’이 얼마 전 있었다. 두 대학 총장은 물론 장·차관급 정부 관계자들까지 토론에 참여해 고무적이었지만, 무엇보다 세계적 수준의 과학기술인들이 동일한 키워드로 이어간 진지한 발표가 반가웠다. 과학기술만이 기후변화 문제와 탄소중립 사회 실현의 해법임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2020년 10월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2050년 탄소중립 선언’을 국제 사회에 천명하면서 대한민국의 ‘탈탄소 정책’이 공식화했다. 지구를 살리자는 탄소중립 선언의 당위성에 반대하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 즉 실행 계획에 있다. 신재생 발전, 수소환원 제철, 친환경 자동차, 이산화탄소 포집 및 저장 등 수 많은 아이디어가 쏟아져도 과학기술적 타당성 검토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정부 탄소중립위원회(탄중위) 위원 100여 명 중 과학기술 전문가는 20명도 안 됐다. 그래서 과학기술적 분석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끊임없이 받아왔다. 탄중위의 전신인 ‘2050 저탄소 사회 비전 포럼’에 참여한 과학기술 전문가 숫자보다 절반 이상이나 줄었기에 더 빈약해 보였다.

기후위기는 인류 생존의 문제
원전 이슈에 밀린 탄소중립위
정치 이념 논쟁에서 벗어나야

김지윤 기자

김지윤 기자

탄중위 실행계획에서 과학기술이 실종됐음을 지적한 사례를 하나 들어 보자. ‘바른 과학기술사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과실연)’이란 시민단체는 이슈 페이퍼(‘과학기술 33인의 목소리: 2050년 탄소중립 실행안의 실현 가능성을 진단하다’)에서 탄중위의 실행계획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예산이 충분히 확보되더라도 2050년 탄소중립 실현 가능성은 평균 60% 정도로 나왔다. 송전망 등 주요 비용이 누락돼 최대 수천조 원까지 비용이 필요할 수도 있으며, 무리하게 추진할 경우 단계적 산업 전환이 오히려 붕괴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2050년 탄소중립만큼은 실현하겠다고 말했지만 새 정부의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탄녹위)도 여러 우려에 휩싸여 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지난 1년은 원전만 들썩거렸고, 탄소중립은 관심을 받지 못했다. 탄소중립이라는 커다란 원주 안에서 논의해야 할 원전이 더욱 정치이념화한 탓이다. 탄소중립이 산업에 부담을 주면 안 된다는 대통령의 발언이 퍼지면서 주무부처인 환경부는 존재감을 잃었다.

과학기술계는 정권의 부침과 무관하게 자기 역할을 해야 하는데 정권교체와 함께 탄소중립이 요동치니 안타깝다. 그 와중에 과학기술인이 나선 서울대-KAIST 공동포럼은 공무원들이 정치권 눈치를 보며 흔들릴 때 민간, 특히 대학이 나서겠다는 선언처럼 보였다.

이번 공동포럼에서는 이산화탄소 변환 기술, 수소화학산업, 전기자동차, 태양전지, 탄소 제거, 포집 및 저장 기술 등 온실가스 감축(mitigation) 관련 다양한 첨단 기술들이 소개됐다. 앞으로 정부는 야심 차게 선정한 ‘탄소중립 100대 기술’을 중심으로 연구와 투자를 확대하고 지속함과 동시에 창의적 기술이 다양하게 진작되도록 유도해야 할 것이다. 특히 대학이 개발하고 있는 선도적 감축 기술들의 확산과 실증이 중요한 만큼 산·학 연계 체계를 공고히 하길 기대한다.

온실가스 감축 기술의 효과가 한반도 온난화를 당장 낮추지는 못할 것이다. 이미 전 세계가 100년 이상 배출해 누적된 온실가스의 영향이 수십 년 이상 지속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장기적 관점에서 꾸준한 투자와 관심이 중요함을 이해해야 한다.

감축과 함께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또 다른 축이 적응(adaptation)이다. 205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가는 수십 년간 지금 세대는 당장 내일 커다란 기후재난 앞에 망연자실할지 모른다. 감축과 달리 적응 기술은 즉시 효력을 내야 하기에 긴급하다. 새로운 백신을 개발하고, 재배 농작물을 전향적으로 교체하며, 폭염과 홍수에 대처하는 노력이 적응의 영역이다.

수동적 순응을 넘어 능동적으로 뉴 노멀의 기회를 찾는 적응 문제도 과학기술로 풀어야 한다. 기후변화와 탄소중립은 인류 생존의 이슈다. 서울대와 KAIST 소속 과학기술인의 소명에 찬 목소리가 정치 이념을 넘어 더 큰 메아리를 만들길 기대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영오 서울대 공과대학 교수·과실연 명예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