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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없는 청년' 대책 악용…수십억씩 은행 등친 대출사기 수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대출·대부 필요하신 분 텔레그램 연락 주세요.” (페이스북)
“무갭 투자 시 100만원 드려요.” (네이버 카페)

14일 재판에 넘겨진 무주택 청년 전세자금 대출사기 일당이 지난해 가짜 세입자·집주인 등을 모집하기 위해 인터넷에 올린 광고글이다. 검찰 수사 결과 이들은 은행의 청년 전세지원금을 노리고 사례금 수백만 원가량을 지급하는 식으로 명의 대여자들을 꾀어낸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2019년 도입돼 대표적인 청년정책금융으로 꼽혔던 청년 맞춤형 전·월세 대출 제도를 악용한 대출사기 범죄가 전국에서 속속 심판대에 오르고 있다.

지난 2021년 11월 2022대선대응청년행동 회원들이 서울 중구 청계천 한빛광장에서 열린 분노의 깃발행동에서 당시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비판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기사 본문과 직접적 관계 없는 사진. 뉴스1

지난 2021년 11월 2022대선대응청년행동 회원들이 서울 중구 청계천 한빛광장에서 열린 분노의 깃발행동에서 당시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비판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기사 본문과 직접적 관계 없는 사진. 뉴스1

 서울서부지검 형사1부(부장 김상현)는 이날 지난해 2~8월 실거주 목적 없이 33건에 걸쳐 허위 임차인·임대인 명의로 전세계약을 가장해 시중은행들로부터 32억원을 편취한 일당 49명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등 혐의로 기소했다. 이중 총책 A씨(28)와 대출브로커 B씨(34), 임차인 모집책 C씨(26), 임대인 모집책 D씨(64)·E씨(32) 등 5명은 구속기소됐다. 특히 A씨는 고향 지인 등이었던 대출브로커와 모집책들을 직접 섭외하고, SNS에 ‘소득과 무관하게 고액대출 받을 수 있다’는 광고를 다수 올리는 등 전체 범행을 주도했다.

검찰 관계자는 “불구속 기소된 허위 임대인·임차인 40여 명도 직접 부동산 사무실에 찾아가 가짜 계약서를 작성하고 사례금을 받는 등 고의성이 있었기 때문에 기소했다”며 “가담 정도에 따라 차등을 둬서 구형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최근 전국 각지에서는 비슷한 수법으로 무주택 청년 지원제도를 악용한 대출사기꾼들이 잇따라 징역형을 선고받거나 수사기관에 적발되고 있다. 이날 서울동부지법은 강서구에서 허위 전세계약으로 1억원을 가로챈 20대에게 최근 징역 8개월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지난 4~5월에도 서울서부지법·대구지법·울산지법·춘천지법 등에서 여러 은행에서 수억~수십억 원을 가로챈 가짜 집주인 등이 1심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인천경찰청은 1월 수도권·경주·대구·대전·광주 등지에서 조직적 사기를 벌인 151명을, 경기북부경찰청은 2월 또다른 조직 17명을 검거했다. 대부분 해당 제도가 별도의 신용심사 절차 없이 비대면 서류 심사 위주인 점을 악용했다.

인천경찰청 광역수사대가 올 1월 특경법상 사기 등 혐의로 검거한 무주택 청년 전세지원 대출사기 일당 151명이 허위 전세계약에 사용한 서류들. 사진 인천경찰청

인천경찰청 광역수사대가 올 1월 특경법상 사기 등 혐의로 검거한 무주택 청년 전세지원 대출사기 일당 151명이 허위 전세계약에 사용한 서류들. 사진 인천경찰청

 무주택 청년 전·월세 지원 제도는 2019년 정부가 출시한 정책금융상품이다. 금융위원회 지원 하에 한국주택금융공사(이하 공사)의 전액보증으로 시중은행이 연소득 7000만원 이하 19~34세 무주택 청년들에게 저금리 대출을 제공하는 제도다. 전세 대란으로 전셋값이 폭등했던 지난 2021~2022년에 20만여 건이 집중 공급되며 사기 범죄의 타깃이 됐다. 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4월까지 해당 상품에 보증이 나간 건수는 30만5539건으로 전체 보증액은 17조7141억원에 달한다.

그러나 전체 범죄 피해규모는 추산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공사의 전세자금보증 심사에서 임대인의 개인정보를 취급하는 데 법적 난항이 있기 때문이다.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5월 공사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제도가 시작된 2019년부터 올해 4월까지 지난 5년간 이 제도 운영과정에서 발생한 원금연체·기한이익상실 등 금융사고는 3558건, 금액으로는 2030억원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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