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쿵쿵쿵 종일 울리는 빌딩…이 바닥선 '층간소음' 확 줄었다는데

중앙일보

입력

현대건설의 H 사일런트 랩에서 연구원이 임팩트볼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있다. 현대건설

현대건설의 H 사일런트 랩에서 연구원이 임팩트볼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있다. 현대건설

“쿵! 쿵! 다다 다닥다닥!”
지난 12일 오전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 기술연구단지 안에 있는 현대건설의 ‘H 사일런트 랩’에선 끊임없이 큰소리가 났다. 층간소음 전문 연구시설인 이곳에서 연구원들이 임팩트볼(배구공 크기의 무게 2.5㎏ 고무공)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뛰어다니길 반복해서다.

아래층 거실 천장과 벽에 설치된 소음 그래프는 요동을 쳤다. 하지만 연구원들이 현대건설의 복합 소재 완충재가 설치된 다른 실험 공간에서 같은 실험을 반복했더니 소음 그래프는 1등급 기준인 37㏈을 밑돌았다. 단일 소재 중심의 일반 완충재가 설치된 공간에서 고스란히 전해졌던 소음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 수준이었다.

H사일런트 랩을 이끄는 현대건설의 안계현 상무는 “소음 민원의 70%가 아이들 뛰는 소리와 발걸음 소리 등의 중량충격음”이라며 “바닥에 가해진 충격이 바닥과 벽 등을 진동시키고 그 진동이 공기 중으로 전달되면서 감지되는 소리가 층간소음인데 랩에선 원천요인인 진동을 잡기 위한 연구를 하고있다”고 설명했다.

현대건설 H 사일런트 랩 전경. 현대건설

현대건설 H 사일런트 랩 전경. 현대건설

지상 4층, 총 7가구 규모의 H 사일런트 랩은 일반 아파트와 같은 모습을 한 실험실이다. 세대별로 슬래브와 온돌층, 완충재를 달리해 바닥 구조에 따른 층간소음 성능뿐만 아니라 벽체를 통해 전달되는 소음 문제도 연구한다.

국내 아파트 대부분은 벽체 위에 슬래브를 얹어 층을 올리는 벽식 구조로 짓는다. 이 구조는 다른 집에서 나는 소리가 벽을 타고 전해지는 단점이 있다.
공동주택에서의 소음이 층간소음으로 통칭하지만 실제로는 윗집이 아니라 더 위층의 집이나 옆집, 아래층에서 발생하는 소음도 전달된다. H 사일런트 랩은 벽체 조건에 따라 소음이 전파되는 특성 연구와 함께 관련 기술도 개발하고 있다.

현대건설은 지난해 8월 고성능 완충재를 적용한 ‘뜬 바닥 구조’로 LH품질시험인정센터의 바닥충격음 성능등급 평가에서 경량·중량충격음 모두 1등급을 받았다. 뜬 바닥 구조는 고밀도 특화 몰탈과 특수소재를 사용한 고성능 완충재를 적용한 시공법이다.

바닥충격음 성능등급 평가에서 1등급 인정서를 확보한 것은 현대건설이 처음이다. 기존엔 콘크리트 슬래브나 온돌층으로 구성된 바닥 두께 중가를 통한 소음감소가 일반적이지만, 현대건설의 바닥구조는 기존 바닥 두께를 유지하면서 1등급 성능을 확보한 것이 장점으로 꼽힌다.

현대건설은 이 바닥 구조의 시공방법을 표준화해 올해 안에 상용화 준비를 마친다는 계획이다.

안 상무는 “바닥 두께를 두껍게 하거나 층고를 높이는 것도 층간소음에 효과적이지만 비용이 많이 든다”고 말했다.

층간소음으로 인한 범행을 목격한 뒤 경찰관들이 계단을 뛰어 내려가는 모습. '인천 층간소음 흉기난동' 피해자 측 제공

층간소음으로 인한 범행을 목격한 뒤 경찰관들이 계단을 뛰어 내려가는 모습. '인천 층간소음 흉기난동' 피해자 측 제공

층간소음 문제가 폭행·살인 등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면서 건설사들은 해법 찾기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정부도 지난해 8월부터 시공을 마친 아파트를 대상으로 층간소음 수준을 평가하는 ‘층간소음 사후 확인제’를 실시해 관련 기준을 강화했다.

과거엔 공사를 시작하기 전 시공사가 준비한 바닥구조 시험체를 평가하는 방식이었는데 2019년 감사원 감사 결과 시공사들이 시험체의 성능을 과도하게 부풀린 실태가 드러나면서 사후 확인제가 도입됐다.

사후 확인제는 30가구 이상의 공동주택에 적용되는데, 완공 후 무작위로 추출된 2~5%를 대상으로 정부가 지정한 ‘바닥충격음 차단구조 성능등급 인정기관’의 평가를 받게 하는 것이다. 대상은 지난해 8월 4일 이후 사업승인을 받은 아파트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이 지난해 서울 중랑구 LH 주택에서 입주민들과 층간소음 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이 지난해 서울 중랑구 LH 주택에서 입주민들과 층간소음 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형 건설사들은 층간소음 저감기술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고중량 바닥 패널과 스프링을 활용한 층간소음 저감 기술로 바닥충격음 차단 성능 등급 평가에서 경량·중량충격음 모두 1등급 인정서를 받았다. 산업현장에서의 고성능 장비 진동제어 기술에서 착안했는데 충격흡수 성능을 개선한 데다가 모듈러 방식이라 시공이 쉽고 균일한 차단 성능을 확보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대우건설은 2021년 개발한 스마트 3중 바닥구조를, GS건설은 5중 바닥 구조를 개발해 1등급 기준에 맞춘다는 계획이다.
DL이앤씨는 지난 2월 경기도 화성시에 건설 중인 아파트 현장에 자체 개발한 바닥구조를 시공하고 중량 충격음 저감 1등급 성능을 인정받았다. DL이앤씨는 또 거실과 실내 벽면에 설치된 센서를 통해 일정 수준 이상의 진동이 감지되면 월패드와 모바일 기기로 알림을 보내주는 층간소음 알리미 기술도 개발했다.

건설사 관계자는 “층간소음 저감기술이 아파트의 가치를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 됐다”며 “재건축이나 재개발 수주 경쟁에서도 관련 기술의 성능에 따라 성패가 갈릴 수 있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