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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 아동용 아니네?…日 애니 잡기 나선 韓소녀들의 로맨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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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원 감독의 애니메이션 '그 여름'. 최은영 작가의 동명 소설을 온라인 시리즈에 이어 극장용 장편으로 스크린에 옮겼다. 사진 판씨네마

한지원 감독의 애니메이션 '그 여름'. 최은영 작가의 동명 소설을 온라인 시리즈에 이어 극장용 장편으로 스크린에 옮겼다. 사진 판씨네마

소설가 최은영(39)이 쓴 첫사랑의 언어가 한지원(34) 감독의 감성적인 그림을 입었다.
7일 개봉한 애니메이션 ‘그 여름’은 『쇼코의 미소』 『내게 무해한 사람』 등으로 이름난 최 작가가 2017년 젊은작가상을 받은 동명 소설이 토대. 제목처럼 열여덟 고등학생 이경과 수이가 첫사랑에 빠진 그 여름의 이야기부터 졸업 후 함께 상경하기까지 성장담을 그렸다. 고교 축구 선수인 수이가 찬 공에 맞은 이경이 부러진 안경을 고쳐 쓰며 처음 본 수이에게 첫눈에 반하는 순간이 생생하다.
“손가락 하나 잡지 않고도, 조금도 스치지 않고도 수이 옆에 다가서면 몸이 반응했다. 철봉에 거꾸로 매달린 것처럼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렸다.”
“사람이 사람을 이렇게 오래 바라볼 수 있구나. 모든 표정을 거두고 이렇게 가만히 쳐다볼 수도 있구나….”
흐리멍덩했던 세상이 연둣빛 잎사귀처럼 또렷하게 빛나는 소설 속 감각을 스크린에 고스란히 되살렸다. 아동용이 대다수인 한국 애니메이션에서 이례적인 시도다.

7일 개봉 '그 여름' 한지원 감독&최은영 작가

日독주 막을까, 선댄스 초청 최연소 극장애니 감독  

애니메이션 '그 여름' 연출을 맡은 한지원 감독. 사진 판씨네마

애니메이션 '그 여름' 연출을 맡은 한지원 감독. 사진 판씨네마

스물여섯에 옴니버스 장편 ‘생각보다 맑은’(2015)을 개봉하며 역대 한국 최연소 극장 애니메이션 감독이 된 기대주 한 감독이 올 초 신작 단편 ‘마법이 돌아오는 날의 바다’로 선댄스 영화제에 초청된 데 이어 선보인 작품이다.
2021년 애니메이션 전문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라프텔’에 출시한 동명의 7부작 숏폼 시리즈를 극장용 장편으로 확장했다. 온라인 출시 당시 7부작 영상, 제작기 단행본이 크라우드펀딩 목표액 273%를 달성하며 호응을 얻어서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 ‘스즈메의 문단속’ 등 극장가의 일본 애니메이션 독주를 멈춰 세울 한국 애니메이션으로 꼽히는 이유다.
8년 전 소설을 스크린으로 다시 만난 최 작가는 “한 감독의 기존 작업을 찾아보고 제 이야기의 결과 잘 맞는다는 믿음이 있었다”면서 “잊고 있던 감정들이 다시금 기억나고 그 인물들과 가까이 만난 기분이 들어 신기했다”고 했다.
그와 함께 e메일로 인터뷰한 한 감독은 “『쇼코의 미소』로 최 작가 팬이 됐는데 숏폼 제안을 받고 읽은 ‘그 여름’ 원작도 작가 특유의 문장과 투명하면서도 날카로운 정서가 아름다웠다”면서 “나도 저런 20대를 보냈다는 공감도 있었고 자신을 돌아보는 이경의 복잡한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이런 것을 담은 애니메이션은 흔치 않다. 제가 느낀 걸 관객한테도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애니메이션 '그 여름' 원작 소설을 쓴 최은영 감독. 사진 판씨네마, ⓒ김경환

애니메이션 '그 여름' 원작 소설을 쓴 최은영 감독. 사진 판씨네마, ⓒ김경환

-‘나로서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란 주제로 수이와 이경의 이야기를 떠올린 계기는.

최은영 작가(이하 최)=“처음엔 간호사 은지의 이야기가 먼저 떠올랐고 은지를 바라보게 되는 이경이 두 번째였다. 이경이 은지를 사랑하는 이야기를 쓰려했는데 이경의 예전 애인 수이를 떠올리자마자 너무도 제 마음 가까이 와닿았다. 결국 다른 글을 쓰기 시작했고 ‘그 여름’ 원작이 됐다.”

-원작을 영상화하며 가장 고민한 부분은.

한지원 감독(이하 한)=“동성애 코드가 있지만, 순수문학인 원작의 복잡한 결을 섬세하게 살리는 게 목표였다. 최 작가에게 이경과 수이가 살았을 법한 시골 마을과 둘의 서울 생활 배경인 종로 일대를 물어보고 답사했다. 2000년대 초반 저와 주변의 여러 추억을 모아 주인공들이 실제 그 시대에 존재한 소녀들인 것처럼 전하고 싶었다. 2021년도 판에서 바뀐 부분은 거의 없다. 한 호흡으로 걸리는 것 없이 볼 수 있도록 편집에 신경 썼다.”

최은영 "소설에 없던 우유갑 속 꽃 장면, 선물같아" 

-소설의 묘사가 가장 잘 살아난 장면이라면.  

최=“고등학교 때 같이 스쿠터를 타고 다니고, 둘이 강물을 내려다보는 장면이 제게 중요했다. 그 애들의 눈에 보이는 풍경이 그들의 내면이기도 했다. 영상이 아름답더라. 수이가 준 딸기 우유갑에 이경이 꽃을 꽂아 놓는 모습은 소설에 없었는데 이경이라면 그랬을 것 같은 장면이라 저에게 선물처럼 느껴졌다.”
한=“원작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최 작가에게 질문을 많이 했다. 수이가 이경에게 빌려주는 음악 CD가 무엇일까 물으니 ‘신해철과 카펜터스’라고 답한 게 기억난다. 아이들이 학창 시절을 보낸 고향으로 장호원을 생각하며 쓰셨다고 해서 가보니 실제 예쁜 고등학교와 작품에 나왔을 법한 다리가 있더라.”

최 작가는 “사랑에 실패하는 인물들을 많이 그려왔다. 사랑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데 그러기 어려운 인물들을 마주할 때 제 안의 결핍이 공명되며 슬퍼진다”면서 주인공 수이와 이경을 돌아봤다.
성소수자란 정체성 탓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의 사랑에 대해선 “소설이 나온 과거와 비교해 지금도 세상의 태도가 그렇게 많이 바뀌지 않았다. 도리어 적극적인 혐오가 심해졌다”면서 서울시가 퀴어문화축제의 서울광장 사용 신청을 불허한 최근 사례를 들었다.

애니메이션 '그 여름'.사진 판씨네마

애니메이션 '그 여름'.사진 판씨네마

코로나 때 애니 부상…韓창작 애니 확장할 것

한 감독은 한국 애니메이션으로선 드물게 20~30대 관객 눈높이에 맞춘 작품이자, 소녀들의 사랑 이야기라는 점이 조심스럽기도 했다고 말했다.
“원작이 동성애를 다루지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범인류적인 이야기라고 느꼈다”면서 “동성애 묘사에서 조심해야 할 부분도 사전 조사했다”고 설명했다. “‘그 여름’은 스즈메와 슬램덩크에 반격을 가하기엔 작은 작품이지만, 그 나름의 맛이 있다”고도 했다.
“한국 애니메이션은 아직 영유아‧교육용이 많은데 청장년층 타깃 애니메이션 지원을 늘리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판도를 바꿀 열쇠를 저희 같은 창작자들이 쥐고 있는 것 같아 어깨가 무거운 시기”라면서다.
“코로나 시기에 실사 영화보다 애니메이션 수요가 많아져 전화위복이 됐죠. 지원 사업 외에 창작 애니메이션을 꿈꿀 수도 없었던 시절에서, 다양한 콘텐트를 원하는 OTT 시대를 맞아 조금씩 다양한 수요가 생기고 있다는 게 고무적입니다.”

한지원 감독의 애니메이션 '그 여름'. 사진 판씨네마

한지원 감독의 애니메이션 '그 여름'. 사진 판씨네마

한지원 감독의 애니메이션 '그 여름'. 사진 판씨네마

한지원 감독의 애니메이션 '그 여름'. 사진 판씨네마

한지원 감독의 애니메이션 '그 여름'. 사진 판씨네마

한지원 감독의 애니메이션 '그 여름'. 사진 판씨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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