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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치는 설탕·원두값…돌아온 엘니뇨, 세계 식량 시장 흔든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엘니뇨가 발생하면서 적도 태평양 부근의 온도가 상승했다. 붉은색이 진할수록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높다는 뜻이다. NOAA

엘니뇨가 발생하면서 적도 태평양 부근의 온도가 상승했다. 붉은색이 진할수록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높다는 뜻이다. NOAA

“올해는 위험을 감수할 수 없습니다.”

인도의 고위 정부관리가 12일(현지시각)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설탕 수출을 제한하는 이유에 대해 그는 “작년에는 비가 잘 내렸는데도 설탕 생산량이 감소했다. 올해는 엘니뇨로 인해 수출을 조기에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인도 정부가 엘니뇨를 ‘위험’으로 인식하고 벌써부터 설탕 생산 감소에 대비한다는 얘기다. 인도는 수출을 위해 할당한 610만t(톤)이 이미 소진되면서 설탕 수출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4년 만에 긴 공백을 깨고 돌아온 엘니뇨(El Nino) 등의 영향으로 세계 식량 시장마저 흔들리고 있다. 미국 해양대기청(NOAA) 산하 기후예측센터는 최근 “현재 엘니뇨 현상이 나타나고 있으며 겨울까지 점차 강해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밝혔다. 2019년 11월~2020년 3월에 발생한 이후 약 4년 만에 엘니뇨 귀환이 사실상 공식화한 것이다. 엘니뇨는 동태평양의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0.5도 높게 유지되는 기후 현상을 말한다. 기후예측센터에 따르면, 엘니뇨 감시 구역의 해수면 온도는 평년보다 0.8도 높은 상태다.

슈퍼 엘니뇨 발달 가능성 “지구 기온 경신할 수도”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엘니뇨는 여름이 지나면서 점차 강해지겠고 겨울에는 이른바 ‘슈퍼 엘니뇨’로 발달할 가능성도 있다. 슈퍼 엘니뇨란 감시 구역의 해수면 온도가 1.5도 이상 높은 강력한 엘니뇨 현상이다. 기후예측센터는 올해 11월에서 내년 1월 사이에 슈퍼 엘니뇨로 발달할 가능성이 56%라고 예측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엘니뇨는 지역에 따라 다르게 영향을 미친다. 한국의 경우 남쪽에서 많은 양의 수증기가 유입되면서 여름철에 남부 지방을 중심으로 예년보다 많은 비가 내릴 가능성이 크다. 전지구적으로는 엘니뇨가 발생하면 기온이 0.2도가량 상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기상기구는 “지난 3년 동안 라니냐로 인해 지구 기온 상승에 일시적인 제동이 걸렸는데 엘니뇨가 발생하면 지구 기온 기록을 경신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폭염과 가뭄, 홍수 등 극단적인 기상 현상을 더 악화시킬 수도 있다. 과거 슈퍼 엘니뇨가 발생할 때마다 전 세계는 이상기후로 인해 큰 피해를 입었다.

엘니뇨 발표에 설탕 가격↑…인도 수출 제한

한 농부가 인도 북동부 지역에서 설탕의 원료인 사탕수수를 수확하고 있다. 신화통신=연합뉴스

한 농부가 인도 북동부 지역에서 설탕의 원료인 사탕수수를 수확하고 있다. 신화통신=연합뉴스

최근 설탕 등 식량 가격이 오르는 것도 엘니뇨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국제 설탕 가격은 지난달에 1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이후 소강상태를 보이다가 엘니뇨 보고서가 나온 직후에 다시 4.5%가량 급등했다. 엘니뇨로 인해 설탕의 원료인 사탕수수 수확량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슈거플레이션(설탕+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S&P의 설탕 시장 분석가인 기리쉬침왈은 CNBC와 인터뷰에서 “아시아의 강우량에 따라 설탕 시장의 변동성이 매우 커질 수 있다”며 “생산 전망에 대한 엘니뇨 리스크는 가격을 훨씬 더 높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세계 2위 설탕 수출국인 인도는 엘니뇨의 여파에 대비하고 있다.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인도 정부는 적어도 내년 상반기까지 설탕 수출을 허용하는 것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엘니뇨가 강우량을 줄여서 설탕 생산량을 감소시킬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인도는 과거 엘니뇨가 발생할 때마다 극심한 가뭄을 겪어왔다.

인스턴트 커피 원두 가격 역대 최고

베트남의 한 커피 로스팅 공장에서 원두를 확인하는 모습. AFP=연합뉴스

베트남의 한 커피 로스팅 공장에서 원두를 확인하는 모습. AFP=연합뉴스

커피 원두 가격도 요동치고 있다. 특히, 인스턴트 커피의 원료로 쓰는 저렴한 원두 품종 중 하나인 로부스타 가격은 역대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런던 커피 선물시장에서 로부스타 가격은 t당 2790달러까지 올라서 15년 전 계약이 시작된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엘니뇨는 베트남과 인도네시아를 포함한 주요 로부스타 재배 지역을 더 뜨겁고 건조하게 하기 때문에 원두 수확량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블룸버그는 “비료 비용 상승과 가뭄으로 인해 원두 작물 수확량이 감소했고, 이로 인해 전 세계 커피 시장은 2023~24년에 연속 적자를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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