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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15년형 기술 유출, 90%는 집유…'솜방망이' 처벌 손댄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020년 9월 대전지검 특허범죄조사부는 자율주행차량 라이다(LIDAR) 기술 연구자료를 중국 대학에 유출한 혐의로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 A씨를 구속기소했다. 1심 재판부는 A교수가 유출한 자료 덕에 중국 연구원들의 지식이 급속도로 올라갔다고 인정하면서도 “개인적으로 얻은 이익의 규모가 크지 않다”며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지난해 12월 창원지법 형사5단독은 “울음소리가 잠을 방해한다”며 한 식당 주인이 돌보던 고양이를 16차례나 담벼락에 내리쳐 죽인 20대에 대해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범행이 잔인하고 고양이 주인이 정신적 충격을 받고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면서도 “범죄 전력이 없고 반성하고 있다”며 실형을 선고하지는 않았다.

기술유출 실형 10.6%…양형기준 손질

지난 2020년 12월 21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모습. 뉴스1.

지난 2020년 12월 21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모습. 뉴스1.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12일 기술유출·동물학대 범죄를 비롯해 마약·스토킹·성·사기·전자금융거래법위반 범죄 등에 대한 양형(형벌의 정도를 결정하는 것) 기준을 손보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들 범죄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이자는 여론을 고려한 것이다.

 양형위가 내년 4월까지 수정하기로한 기술유출 범죄의 경우 양형 기준이 크게 올라갈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기술유출 범죄는 ‘영업비밀 침해행위’(해외 유출 기준)의 경우 감경 요소가 있으면 징역 10월~1년6개월, 기본 1년∼3년 6개월이다. 최근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중국에 그대로 복제하려 시도가 적발되기도 하는 등 천문학적 수준의 피해가 초래되는 범죄임에도 가중 사유를 반영했을 때의 최대 형량은 6년에 불과하다.

 또한 검찰 분석에 따르면 2019~2022년 기술유출 사건 관련 재판에서 실형이 선고된 건 총 445건 중 47건으로 10.6%에 그쳤다. 검찰은 “부정경쟁방지법상 영업비밀 해외유출의 법정형이 최대 징역 15년인 점을 고려하면 실제 처벌 수위(2022년 기준 평균 14.9개월)는 미약했다”고 지적했다.

“동물학대, 대인 범죄에 연관”돼 양형기준 마련…성범죄도 기준 신설

경남 창원시 대방동의 한 식당에서 돌보던 고양이 ‘두부’가 2022년 1월 26일 이웃에 의해 살해됐다. 사진은 두부의 생전 모습. 동물권행동 카라.

경남 창원시 대방동의 한 식당에서 돌보던 고양이 ‘두부’가 2022년 1월 26일 이웃에 의해 살해됐다. 사진은 두부의 생전 모습. 동물권행동 카라.

 사기 범죄와 전자금융거래법위반죄의 양형 기준도 2011년 이후 12년 만에 수정된다. 보이스피싱·전세사기 등 조직적 사기 범죄가 고도화하는 등 우리 사회의 경제적 변화를 반영하기 위한 것이다. 양형위는 “이들 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 요구가 높다”고 설명했다.

 마약 범죄에 관한 양형기준은 보다 체계화할 예정이다 .마약범죄 양형기준의 유형 분류를 새로 하고, 권고 형량 범위도 바꾸기로 했다. 양형 인자 및 집행유예 기준도 다각도에서 새로 검토하기로 했다. 강남 학원가 마약 음료 사건 등 새로운 유형의 범죄가 등장하면서 경찰 등 수사기관에서는 마약범죄 양형기준을 정비할 것을 촉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별도 양형기준이 없던 스토킹 범죄와 일부 성 범죄, 동물학대 범죄 등에 대해서는 그간 축적된 판례를 토대로 양형 기준을 마련하기로 했다. 양형위는 “스토킹 범죄는 자유형(징역·금고)뿐만 아니라 벌금형에 대한 양형기준도 설정할 것”이라고 했다. 공중밀집장소에서의 추행,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 피감독자·피보호자간음죄 역시 양형 기준을 새로 설정하기로 했다. 성범죄 중 주거침입강제추행죄는 지난 2월 법정형 하한(7년)이 지나치게 높게 설정됐다는 이유로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이 선고된 점을 감안해 법률이 개정된 이후 양형기준을 정비할 방침이다.

 동물 학대 범죄도 양형기준을 새롭게 만든다. 양형위는 “많은 연구에서 동물 학대와 폭력 등 대인범죄와의 연관성이 보고됐다”며 “동물보호에 대한 높아진 사회적 인식을 반영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동물 학대범죄군 역시 징역·금고형 뿐만 아니라 벌금형 양형 기준 설정을 진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양형위는 상반기(2023년 4월~2024년 4월)엔 기술유출 등 지식재산권범죄·스토킹범죄·마약범죄 양형기준 수정작업을 진행하고, 하반기(2024년 4월~2025년 4월)에 동물학대·사기·전자금융거래법위반·성범죄 양형 기준을 수정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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