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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끓는 도둑보다 무섭다"…'무인 아이스크림' 5배 급증한 까닭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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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주택가에 있는 한 무인 아이스크림 판매점. 세종=나상현 기자

세종 주택가에 있는 한 무인 아이스크림 판매점. 세종=나상현 기자

대전에서 6년째 24시간 무인 아이스크림 판매점 운영하는 김모(43)씨는 끊이지 않는 절도 사건에 고심이 크다. 김씨는 “무인 운영이다보니 실시간으로 매장을 감시하기 어려운데, 간혹 적발돼도 ‘실수다’, ‘몰랐다’고 발뺌하면 풀려나기 일쑤라 막기 어렵다”며 “발각된 것만 한달에 십수건에 달하고, 알게 모르게 훔쳐가는 경우는 더 많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관리가 쉽지만은 않은데도 오랜 기간 영업을 이어온 이유에 대해 김씨는 “사실 아무리 절도로 인한 로스율(손실률)이 크더라도, 높은 인건비에 비할 바는 아니다”라며 “인건비가 오를수록 앞으로 무인 점포도 같이 늘어날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도심이나 주택가를 오가며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무인 아이스크림 판매점. 특히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이같은 무인점포들이 우후죽순으로 늘어났다. 어려워진 경영 상황과 더불어 급등한 인건비 부담이 맞물린 결과로 분석된다.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13일 공정거래위원회 가맹사업거래 정보공개서를 통해 주요 무인 아이스크림 판매점 프랜차이즈(더달달·응응스크르·픽미픽미아이스)의 가맹·직영점 신고 추이를 분석한 결과, 2018년 267곳에 불과했던 점포 수는 2019년 425곳, 2020년 1178곳, 2021년 1405곳으로 빠르게 불어났다. 3년새 5배 이상 급증한 것이다. 여기에 소규모 프랜차이즈나 개인 창업까지 더하면 점포 수는 훨씬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빙과업계 관계자는 “공식적으로 집계된 통계는 없지만, 전체적인 무인 점포 규모도 비슷한 추세를 보일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세종의 한 무인 아이스크림 판매점에 경고 문구가 붙어 있다. 세종=나상현 기자

세종의 한 무인 아이스크림 판매점에 경고 문구가 붙어 있다. 세종=나상현 기자

문제는 무인 점포가 늘어나는 만큼 절도 범죄도 기승을 부린다는 점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2021년 3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무인 점포 절도 피해 사례는 6344건으로, 일평균 13건꼴로 발생했다. 특히 상주해서 지키는 사람이 없다 보니 청소년들의 손쉬운 먹잇감이 되기 일쑤였다. 지난달 말엔 부산 해운대구 일대에서 10대로 추정되는 일당이 복면을 쓰고 새벽 시간에 무인 편의점 5곳에서 절도 행각을 벌이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세종에서 무인 점포를 관리하는 이모(26)씨는 “아예 강도처럼 현금통을 뜯어가는 사례도 있지만, 초등학생들이 아이스크림을 먹고 가버리거나 한두개 몰래 훔쳐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밝혔다.

무인 점포 특성상 크고 작은 절도 위험에서 벗어나는 것이 어려운데도 점포 수는 점점 늘어나는 이유는 결국 ‘인건비 부담’ 때문이다. 2019년부터 올해까지 최저임금은 8350원에서 9620원으로 약 15% 올랐다. 서울에서 무인 아이스크림 판매점을 운영하는 이모(37)씨는 “원래 아르바이트생을 쓰는 유인매장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아무리 계산해봐도 인건비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아 무인 점포로 돌렸다”며 “비록 절도 문제를 신경 쓰느라 정신적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지만, 지금 인건비 수준을 생각하면 유인으로 돌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이같은 추세는 ‘나홀로 사장님’ 통계에서도 엿볼 수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 수는 426만7000명으로, 세계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446만7000명) 이후 가장 많았다.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는 혼자 일하거나 임금을 받지 않는 가족과 함께 운영하는 사업체로, 무인 점포도 여기에 해당된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경영 상황이 어려워진 데다 최저임금 인상까지 겹치면서 고용 자체를 줄인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최저임금위원회에선 업종별로 최저임금을 구분 적용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음식점업이나 숙박업 등 지불 능력이 떨어지는 업종은 상대적으로 낮은 최저임금을 적용하는 것이 골자다. 경영계는 직원을 줄이거나 폐업까지 고민하는 소상공인을 위해 구분 적용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만 노동계에선 최저임금 제도 도입 취지에 어긋난다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어 실제 적용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임금이 지나치게 올라가면 신규 고용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최근 무인 점포와 키오스크가 급격히 늘어나는 것이 단적인 예”라고 밝혔다. 이어 “최저임금을 결정할 때 물가 인상에 따른 근로자의 생계 유지 어려움도 중요하지만, 과도한 인상에 따른 고용 기피 우려도 고려해야 한다. 업종별 혹은 지역별 최저임금 구분 적용에 대해서도 실효성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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