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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부터 달려왔제"…5수 끝에 모셨다, 산청 내과 전문의 첫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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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첫 진료를 시작한 경남 산청군보건의료원 내과 전문의 진료실 앞에 환자들이 기다리고 있다. 산청군보건의료원은 지난해 4월 공중보건의가 전역하면서 1년 넘게 내과 전문의 자리가 공석이었다. 5차례 채용 공고 끝에 최근 내과 전문의를 채용했다. 안대훈 기자

지난 12일 첫 진료를 시작한 경남 산청군보건의료원 내과 전문의 진료실 앞에 환자들이 기다리고 있다. 산청군보건의료원은 지난해 4월 공중보건의가 전역하면서 1년 넘게 내과 전문의 자리가 공석이었다. 5차례 채용 공고 끝에 최근 내과 전문의를 채용했다. 안대훈 기자

“내과 선생님 오셨다길래 바로 진료 봐달라켔지.”

지난 12일 오전 9시쯤 경남 산청보건의료원. 1층에 있는 소아청소년과ㆍ재활의학과ㆍ외과ㆍ응급실 중에서 내과 진료실 앞에 유독 대기 환자가 많았다. 1년 넘게 공석이던 내과 전문의가 최근 채용, 이날 첫 진료를 시작했다. 산청의료원을 찾는 환자는 하루 평균 200명으로, 이 중 60~70%가 혈압ㆍ당뇨ㆍ감기 등 내과 환자다.

산청의료원 관계자는 “오전에 10분 정도 내과 선생님 진료를 보셨는데, 자기 차례를 기다리다 시간 때문에 다른 선생님께 가신 분이 20명이나 됐다”고 전했다. 이어 “아직 선생님이 병원 시스템에 익숙지 않아 진료 시간이 더디지만, 금방 적응하실 것”이라고 했다.

지난 12일 첫 진료를 시작한 경남 산청군보건의료원 내과 전문의 진료실. 산청군보건의료원은 지난해 4월 공중보건의가 전역하면서 1년 넘게 내과 전문의 자리가 공석이었다. 5차례 채용 공고 끝에 최근 내과 전문의를 채용했다. 안대훈 기자

지난 12일 첫 진료를 시작한 경남 산청군보건의료원 내과 전문의 진료실. 산청군보건의료원은 지난해 4월 공중보건의가 전역하면서 1년 넘게 내과 전문의 자리가 공석이었다. 5차례 채용 공고 끝에 최근 내과 전문의를 채용했다. 안대훈 기자

1년 넘게 공석…12일 정상 진료 시작

산청의료원을 20년째 찾는 '단골' 최삼옥(82) 할아버지도 이날 오후 새로 온 내과 전문의에게 진료를 받았다. 고혈압을 앓고 있어 두 달에 한 번은 의료원을 찾아 약 처방을 받았는데, 이날도 약만 타려다 새 내과 선생님이 왔단 말에 진료까지 받았다. 최근 왼쪽 발등이 부었는데, 원인을 몰라 걱정하고 있었다고 한다.

최 할아버지는 “지금 묵는(먹는) 약 알레르기 때문인 것 같다고 자세히 가르쳐 주데예(주더라)”며 “선생님이 진료 안 봐줬음 아들 불러가꼬(불러가지고) 진주 시내까지 나갈 뻔했다”고 했다. 옆에 있던 아내 한성숙(75) 할머니는 “참 든든해예(해요)”라며 “예전에 계셨던 선생님도 우릴 잘 챙겨주셨는데, 그분 생각이 나데예(나더라)”고 말했다. 진료를 대기하던 한 주민은 "내과 선생님이 오셨다는 말을 듣고 새벽에 일어나 달려왔제"라고 했다.

지난 12일 오후 경남 산청군보건의료원에서 내과 진료를 받은 최삼옥(82) 할아버지가 부은 발등을 보여주고 있다. 안대훈 기자

지난 12일 오후 경남 산청군보건의료원에서 내과 진료를 받은 최삼옥(82) 할아버지가 부은 발등을 보여주고 있다. 안대훈 기자

5번 공고 끝에 채용…“봉사 활동한단 마음으로”

산청의료원은 지난해 11월부터 5차례 채용 공고를 낸 끝에 최근 내과 전문의 유모(69)씨를 채용했다. 연봉 3억6000만원에 하루 8시간씩 주 5일 근무 조건이다. 계약 기간은 2년으로 1년 단위로 연장할 수 있다. 업무는 외래ㆍ입원 환자 진료와 건강상담 등이다.

유씨는 충북 청주에서 운영하던 내과 전문 개인병원을 정리하고 지난 8~9일 아내와 함께 경남 산청에 집을 얻어 이사 왔다. 그는 연봉 3억6000만원에도 ‘지원 문의’조차 없단 소식을 접하고 지원했다고 한다. “의료 취약지에서 봉사 활동하는 것처럼 일하고 싶다”며 이곳에 왔다고 병원측은 전했다. 4차 채용 공고 이후 이승화 산청군수와 면담까지 했다.

하지만 유씨는 지난 4월 갑자기 ‘가기 어렵겠다’고 산청의료원에 연락했다. 당시 ‘노예 계약이다’ ‘휴일 없이 격무에 시달린다’ ‘공무원이 진료에 관여한다’ 등 산청의료원 관련 악성 루머 때문이었다.

“우리 의료원 와달라”…170㎞ 달려가 ‘읍소’

그의 마음을 되돌린 데엔 산청군 공무원 노력이 컸다. 지난달 중순 권순현 보건정책과장은 산청의료원에서 170㎞ 떨어진 청주 유씨 병원을 찾아가기도 했다. 미리 연락하면 만나주지 않을 것 같아, 환자인척하며 진료실로 들어갔다. 권 과장은 “악성 소문은 절대 사실이 아니다”며 “저를 믿고 6개월만 일해보면 아신다. 우리 의료원으로 와주시라”고 읍소하다시피 사정했다고 한다.

유씨가 내과 전문의로 오면서 산청의료원 다른 전문의도 “한숨 돌렸다”는 반응이다. 지난해 4월 공중보건의 전역 후 내과 전문의 자리가 비면서, 일반의 또는 마취통증의학과ㆍ소아청소년과ㆍ외과 등 다른 전문의 몇 명이 내과 환자를 분담 진료해왔기 때문이다. 경증 환자는 진료 가능했지만, 중증 당뇨ㆍ혈압 등 전문적인 내과 진료는 어려웠다.

산청의료원 관계자는 “고혈압이나 당뇨 조절이 안 되는 분이 오시면 내과 선생님이 있어야 안심하고 잘 볼 수 있다”며 “그간 다른 선생님들이 빈자리를 메우며 버텼는데, 이제 한숨 돌렸다”고 했다.

경남 산청군 산청읍에 있는 산청군보건의료원. 사진 산청군

경남 산청군 산청읍에 있는 산청군보건의료원. 사진 산청군

내과 전문 진료 가능…“질 높은 의료서비스 받도록 지원”

첫 진료를 시작한 유씨는 산청의료원에 적응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었다. 정식 출근 전인 지난 주말에 의료원을 찾아 진료 기록을 입력하는 병원 프로그램을 다뤄보는 등 열의를 보였다고 한다. 기자가 인터뷰를 요청하자 유씨는 “시스템을 익히고 적응하느라 정신없다”며 “다음에 말씀드릴 기회가 있을 것”이라며 고사했다.

권 과장은 “지난해 4월 내과 공중보건의가 전역하면서 의료 공백이 생겨 주민 불편이 컸다"며 "군민이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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