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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하반기 역전세 위험 58%, 전세대출 악용 갭투자만은 막아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전국 102만6000가구가 역전세 위험에 노출돼

DSR 규제완화 불가피…임대차시장 정상화해야

부동산 시장 침체가 이어지면서 전세 시장이 몸살을 앓고 있다. 전세 시세가 기존 전세 보증금보다 낮은 ‘역전세’가 심화하고, 지역에 따라선 매매 시세가 전세보증금보다 낮은 ‘깡통전세’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상반기에 전세 계약을 맺은 서울 아파트 중 54%(2만304건)가 2년 전보다 전셋값이 하락한 ‘역전세’라고 한다. 이 때문에 집주인이 계약갱신 또는 신규 계약을 하면서 기존 임차인에게 돌려준 돈이 평균 1억152만원으로 조사됐다. 이 수치는 ‘5% 전·월세 상한제’가 적용된 재계약을 포함한 것이다. 신규 계약만 보면 서울 강남권 등에선 전셋값이 수억원 내린 곳도 적지 않다.

이런 역전세는 하반기에 더 심화할 전망이다. 2년 전 부동산 폭등기에 전셋값도 함께 뛰면서 2021년 12월 역대 최고를 기록했는데, 현재 전세 시세는 그때보다 크게 하락해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R114는 현재의 전셋값 수준이 유지된다 해도 하반기 전세 계약의 58%가 역전세 위험에 노출될 것으로 예측했다.

한국은행 분석도 유사하다. 한은은 최근 ‘깡통전세·역전세 현황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전국의 잔존 전세계약 중 역전세 위험 가구 비중이 지난해 1월 25.9%(51만7000호)에서 올 4월 52.4%(102만6000호)로 크게 늘어났다고 밝혔다. 깡통전세 위험 가구 비중도 같은 기간 2.8%(5만6000호)에서 8.3%(16만3000호)로 급증했다.

이들 통계는 한국의 임대차 시장이 지난 정권 부동산 실정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시장 원리를 외면한 임대차 3법으로 단기간에 폭등했던 전셋값이 이후 금리 인상과 경기 침체로 대폭 하락하며 역전세난이 덮친 것이다. 결국 전국 임차인의 절반가량이 보증금을 제대로 돌려받지 못할까 봐 밤잠을 설치고 있고, 집주인은 돌려줄 보증금 차액을 구하느라 전전긍긍하고 있다. 깡통전세 상황에 부닥친 세입자들의 고통은 상상 이상이다.

정부가 역전세에 처한 집주인이 은행 돈을 빌려 보증금 차액을 돌려줄 수 있도록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완화를 검토 중인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보증금 미반환 사태로 전세제도가 갑자기 흔들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정부가 임대차 시장 정상화에 적극적으로 임해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다. 특히 전세 시장에 대해선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기가 됐다. 부동산 급락기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역전세 현상이 국민 주거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오랫동안 중산층과 서민의 주거 사다리 역할을 해 온 전세의 순기능도 세밀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전세 대출을 갭투자의 디딤돌로 악용하고 임차인에게 피해를 전가하는 임대차 시장의 맹점만큼은 반드시 수술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