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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딩플레이션 비명…“예식비 선방한 게 3765만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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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지난 11일 오후 2시 인천 연수구의 한 예식장. 하객의 환호 속에 신랑 채모(38)씨와 신부 이모(32)씨가 입장했다. 이날 채씨가 걸친 턱시도는 99만원, 신부의 웨딩 드레스(대여)는 100만원이었다. 여기에 양가 어머니 한복을 빌리는 데 186만원, 화장에 70만원, 도우미 인건비로 35만원이 더 들어갔다. 가장 부담이 큰 예식장 대관료는 320만원, 하객 식대는 1590만원(5만3000원×300명)이었다. 채씨는 “2018년 결혼한 친구와 비슷한 조건으로 준비했는데 비용은 갑절로 들었다”며 “‘예식비는 오늘이 가장 싸다’는 말을 실감했다”고 털어놨다.

“예식비, 오늘이 가장 싸다는 말 실감”

웨딩-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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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식 당일도 부담이지만 준비하는 과정도 만만찮았다. 예비 신랑신부 필수 코스인 ‘스드메(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에 360만원을 썼다. 스냅·스튜디오 촬영, 앨범 제작에 215만원이 들어갔다. 촬영 당일 옵션(선택사항)을 주문했더니 45만원을 추가로 내야했다. 미국 하와이로 떠나는 신혼여행(6박7일 항공료+숙박비) 예약에 700만원을 썼다. 고민 끝에 예물은 생략했다. 채씨는 “결혼하기까지 들어간 비용을 따져보니 3765만원이었다”며 “그나마 1년 전부터 이곳저곳 비교해가며 준비한 덕분에 ‘선방’했다”고 말했다.

채씨의 하소연은 엄살이 아니다. 예비 신랑신부가 올해 4~6월 ‘결혼 시즌’을 맞아 결혼 물가가 급등하는 ‘웨딩플레이션(결혼+인플레이션)’에 시름하고 있다. 12일 서울 청담동의 A예식장에서 내년 6월 예식을 예약하려면 2500만원(대관료+식대×최소 보증인원)이 든다. 3년 전인 2021년 6월(1500만원)과 비교해 60% 올랐다. 강남의 한 결혼준비 업체에 문의한 결과 “서울 강남권의 번듯한 예식장의 경우 대관료·식대에 2000만원, ‘스드메’에 300만원은 쓸 생각을 해야 한다. 각종 부대비용과 신혼여행까지 고려하면 최소 3000만원은 든다. 1년 전보다 1000만원 이상 올랐다고 보면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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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은 여러가지가 작용했다. 먼저 코로나19가 확산한 2020~2022년 결혼을 미뤘던 예비 신랑신부가 결혼하기 시작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3월 기준 지난해 1만5316건까지 떨어졌던 혼인 건수가 1년 만에 1만8192건으로 늘었다.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전인 2019년 3월 혼인 건수(1만9549건)에 가까워졌다. 임영일 통계청 인구동향과장은 “코로나19로 주춤했던 혼인 건수가 지난해 8월부터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예식장은 줄었다. 역시 3월 기준으로 2019년 935곳이었던 전국 예식장 수가 올해 743곳으로 감소했다. 코로나19 기간을 버티지 못하고 폐업한 경우가 늘면서다. 인기 많은 예식장의 골든 타임(토요일 낮 12시~오후 3시)을 대관하려면 최소 1년 전에 예약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서울 강서구의 한 예식장 관계자는 “예전엔 봄·가을 성수기만 예약하기 어려웠는데 요즘은 황금 시간대는 1년 내내 계절을 가리지 않고 예약이 꽉 찬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여기에 고물가 파고까지 덮쳤다. 지난해 물가 상승률(5.1%)은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단적으로 예식장 식대가 직격탄을 맞았다. 대전 유성구의 B예식장 대표는 “식재료값이 너무 많이 올랐다. 인건비까지 고려하면 식대를 올릴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인터넷 결혼 준비 카페에선 웨딩플레이션에 대처하기 위해 ▶최대한 미리 발품을 팔고 ▶대관료가 싸고 식대도 줄일 수 있는 비수기 주중이나 일요일 오전에 식을 올리고 ▶다른 예비 신랑신부와 같은 날 웨딩 촬영을 진행하고 ▶예식엔 생화 대신 조화를 쓰고 ▶SNS에 업체 후기를 올려 할인받는 등 팁을 공유하는 경우가 많다.

남녀 300명 “적정 축의금 7만9000원”

신랑신부만큼이나 하객 부담도 늘었다. 축의금만 내면 5만~10만원, 식사까지 할 경우 10만~20만원을 내는 경우가 많다. 최근 ‘적정 축의금’을 두고 논란이 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지난해 성인 남녀 300명을 설문한 결과 적정 축의금은 7만9000원으로 조사됐다. ‘5만원(48%)’이 가장 많았고 ‘10만원(40%)’이 뒤를 이었다. 지난달 결혼식에 두 번 다녀온 직장인 지영철(38)씨는 “예식장 식대가 1인당 5만원이 넘는다는 걸 뻔히 알기 때문에 축의금으로 10만원씩 냈다”며 “5월처럼 결혼식이 몰릴 땐 차라리 결혼식에 불참하고 축의금 5만원만 전하는 게 낫다고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보통 1년 전부터 결혼을 준비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내년 결혼 비용은 더 오를 수 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상품이라면 결혼식은 반복해 구매할 수 없기 때문에 전형적인 공급자 우위 시장”이라며 “각종 인플레이션 요인도 있지만, 코로나19 기간 극심한 피해를 봤던 예식업계가 그동안 손실을 만회하려 각종 요금을 보복 인상한 영향이 크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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