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제11회 삼성화재배 세계 바둑 오픈' 결사항전의 한 수를 찾아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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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제11회 삼성화재배 세계 바둑 오픈'

<8강전 하이라이트>

○ . 위빈 9단 ● . 백홍석 5단

자신을 스스로 사지(死地)에 빠뜨리는 배수진은 고도의 심리전이고 전쟁의 9단들만이 선택할 수 있는 극약처방이라 할 수 있다. 이를 반대로 해석하면 100%의 승리를 꿈꾸는 것은 위험하다. 퇴로를 터주고 공격해 90%의 승리를 도모하는 게 안전하다.

장면도(43~48)=흑의 도발이 허공을 그으면서 바둑은 급속히 백의 페이스로 흘러간다. 백홍석 5단은 43으로 공격의 불씨를 살리려 애쓰지만 44, 46으로 백은 스르르 공격권에서 멀어졌고 흑이 오히려 목숨을 구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백홍석은 눈물을 머금고 47로 패망선을 달린다. 7분이나 생각하며 다른 수단을 찾았으나 밑으로 기는 수 외엔 없었다. 승전 무드에 젖어 있던 위빈(兪斌) 9단이 이때 흑을 아예 지옥으로 밀어넣는 수를 찾아냈으니 바로 48이다.

사실은 '참고도1' 정도로 도배를 해도 A가 남아 있는 만큼 백이 충분했는데 그는 내친김에 끝장을 보고 싶은 유혹을 떨치지 못했다.

48을 당한 백홍석의 입에서 신음 소리가 저절로 터져나온다. 실리파인 그는 일단 귀의 한 점을 내주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따라서 '참고도2' 흑1로 받긴 받아야 하는데 이건 백 2, 4를 선수로 당하고 이같이 도배당하는 것은 자진해 목을 내주는 것과 같다. 길이 막힌 흑이 망연자실해 있는 동안 점심시간이 됐다. 모래를 씹듯 밥알을 삼키며 결사항전을 연구하던 백홍석의 머리로 문득 섬광같이 한 수가 떠올랐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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